[비즈한국] 이재명 정부가 ‘생산적 금융’ 확대에 드라이브를 거는 가운데 국내 은행의 대출 연체율이 9년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정부는 부동산·담보대출에 쏠린 은행권 자금을 기업과 첨단산업, 벤처·중소기업으로 돌리겠다는 방침이지만, 정작 기업대출 연체율이 빠르게 오르면서 은행권의 건전성 관리 부담이 커지고 있다. 생산적 금융 확대가 금융권의 새 과제로 떠오른 동시에, 부실 위험을 얼마나 정교하게 관리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0.67%로 전월 말(0.61%)보다 0.06%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2016년 10월(0.81%)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0.03%포인트 올랐다. 코로나19 이후 유동성 지원과 저금리 효과로 눌려 있던 연체율이 고금리 부담, 내수 부진, 기업 실적 악화와 맞물려 다시 상승하는 모습이다.
중소기업대출 연체율 1% 돌파
연체율 상승을 이끈 것은 기업대출이다. 5월 말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0.84%로 전월 말보다 0.10%포인트 올랐다. 가계대출 연체율 상승폭(0.03%포인트)보다 컸다. 기업대출 가운데 대기업대출 연체율은 0.27%로 전월 말보다 0.05%포인트 상승했다. 1년 전(0.15%)과 비교하면 0.12%포인트 높아졌다.
중소기업대출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5월 말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1.00%로 전월 말(0.90%)보다 0.10%포인트 올랐다.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이 1%대에 올라선 것은 2015년 5월 이후 11년 만이다. 중소법인 대출 연체율은 1.11%로 전월 말(0.98%)보다 0.13%포인트 상승했고,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도 0.84%로 전월 말(0.78%)보다 0.06%포인트 올랐다.
가계대출도 안심하기는 어렵다. 5월 말 가계대출 연체율은 0.45%로 전월 말보다 0.03%포인트 상승했다.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0.31%로 0.01%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지만, 신용대출 등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가계대출 연체율은 0.90%로 전월 말보다 0.07%포인트 올랐다. 기업대출만큼은 아니지만 고금리와 자산시장 변동성이 개인 차주의 상환 능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신규 부실 늘고 정리 속도는 둔화
문제는 새로 발생하는 부실이 늘어나는 반면, 은행권의 연체채권 정리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5월 중 신규연체 발생액은 3조 3000억 원으로 전월(2조 9000억 원)보다 4000억 원 증가했다. 반면 연체채권 정리 규모는 1조 5000억 원으로 전월(1조 6000억 원)보다 1000억 원 줄었다. 신규연체율도 0.13%로 전월보다 0.01%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은행권이 부실채권을 상각하거나 매각하는 속도보다 새로 연체되는 대출이 더 빠르게 늘고 있다는 의미다. 연체율은 통상 분기 말에 은행들이 부실채권 정리를 집중적으로 하면서 일시적으로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5월 수치가 분기 말 효과가 없는 시점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기업대출 연체율 상승폭이 크다는 점은 부담이다.
여기에 기업대출 자체도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말 예금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1408조 3000억 원으로 전월보다 10조 6000억 원 증가했다. 기업대출 잔액이 커진 상황에서 연체율까지 오르면 은행권의 대손충당금 부담과 자본관리 압박도 커질 수밖에 없다.
생산적 금융 확대, 선별 능력이 관건
정부는 은행권 자금이 부동산과 가계대출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과 기업으로 흘러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생산적 금융은 첨단전략산업, 수출기업, 중소·벤처기업 등에 자금을 공급해 실물경제 성장을 뒷받침하겠다는 구상이다. 금융위원회도 올해 금융정책 방향에서 생산적 금융, 포용적 금융, 신뢰받는 금융을 축으로 한 금융 대전환을 내세웠다.
방향성 자체는 금융권에서도 대체로 공감대가 있다. 은행권 수익이 주택담보대출과 이자이익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업대출이 가계 담보대출보다 경기 변동과 업종 리스크에 더 민감하다는 점이다. 특히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는 내수 부진, 인건비 상승, 원가 부담, 금리 상승에 동시에 노출돼 있어 상환 능력이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
생산적 금융이 단순히 대출 공급액을 늘리는 방식으로 추진될 경우 은행권 건전성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을 선별해 자금을 공급하는 것과, 정책 목표를 맞추기 위해 기업대출 총량을 확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은행 입장에서는 산업 이해도와 신용평가 역량을 높여야 하고, 금융당국은 공급 목표와 건전성 규제 사이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금감원도 이 같은 위험을 의식하고 있다. 금감원은 생산적 금융 본격화에 따른 기업대출 증가와 금리 상승 등 여건 변화를 감안해 연체율 상승세 확대 가능성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은행권에는 적극적인 부실채권 상각·매각과 충분한 자본·대손충당금 적립 등 손실흡수능력 확충을 유도할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