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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새로운 스타트업 허브로 떠오르는 독일 함부르크

베를린, 뮌헨 이은 제3의 도시로…항구도시 맞게 물류 그린에너지 분야 몰려

[비즈한국] 올 상반기에만 독일에서 3000개가 넘는 스타트업이 새로 태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일 독일스타트업협회가 발표한 보고서 ‘Next Generation’ 에 따르면 올해 1~6월 사이 독일 내에서 총 3053개의 스타트업이 창업했다. 이는 집계를 시작한 2019년 이래 반기 기준 최다 기록이다. 또 직전 반기인 2025년 하반기 대비 52% 증가, 2024년 한해 전체보다도 많은 숫자다.

베레나 파우스더 독일스타트업협회장은 “이런 창업 역동성은 지금까지 독일에서 없었던 일”이라며 고무적으로 평가했다.

수많은 신생 스타트업의 등장 외에 눈에 띄는 것은 또 있었다. 베를린과 뮌헨이 대부분을 차지했던 독일 내 스타트업 소재지의 변화다. 특히 주요 도시 비교에서 독일 최대 해상물류도시 함부르크에서 새로운 스타트업 허브 탄생의 조짐이 보인다.

독일 함부르크 항구의 랜드마크 ‘도크 11(Dock 11)‘과 그 뒤로 늘어선 컨테이너 크레인. 독일 최대 해상물류도시 함부르크가 새로운 스타트업 허브로 올라설 조짐이 보인다. 사진=pixabay

베를린-뮌헨 양강 구도

독일은 지역별 산업 특화가 뚜렷한 나라다. 프랑크푸르트는 금융, 슈투트가르트와 뮌헨은 자동차, 에센은 에너지, 쾰른은 미디어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수도인 베를린은 2000년대 초반까지 연방정부와 예술가들만 있을 뿐 이렇다 할 대표산업이 없는 도시였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백지 상태’가 맨땅에서 뭔가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됐다. 여기에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와 국제적인 인재 유입도 영향을 미쳤다. 2007년 잠버(Samwer) 삼형제가 베를린에 설립한 글로벌 벤처 빌더인 ‘로켓 인터넷’도 베를린을 유럽 최고의 스타트업 허브로 성장시킨 밑거름이 됐다. 로켓인터넷은 2007년 이후 잘란도(Zalando), 헬로프레시(HelloFresh), 딜리버리히어로(Delivery Hero) 같은 카피캣 모델을 찍어내며 인재들의 ‘사관학교’ 역할을 했고, 이곳을 거친 인재들이 다시 창업하는 순환구조를 만들었다.

연도별 독일 스타트업 설립 추이. 자료=독일스타트업협회

이번 리포트에서도 베를린은 429개 신규 창업으로 여전히 부동의 절대 1위 자리를 지켰다. 다만 증가율은 21%로, 전국 평균(52%)에 크게 못 미쳤다.

뮌헨의 무기는 탄탄한 산업 기반이다. BMW, 지멘스 같은 대기업 본사와 애플·구글의 독일 거점이 몰려 있어 딥테크 스타트업이 첫 대기업 고객을 확보하기가 유럽 어느 도시보다 쉽다. 뮌헨공대(TUM)와 루드비히막시밀리안대(LMU)가 공동 운영하는 창업 특화 프로그램(CDTM)이 매년 꾸준하게 기술 인재를 배출하고, 지역 기반 패밀리오피스들이 든든한 후속 투자층을 이룬다. 그 결과 인구 10만 명당 창업 밀도는 24.6개로 독일에서 가장 높다.

빈틈 파고드는 함부르크

이 양강 구도에 균열을 만들고 있는 것은 함부르크다. 함부르크는 올 상반기 212개 신규 창업으로 건수 자체는 베를린의 절반에 못 미치지만, 증가율이 83%에 달하면서 208개에 그친 뮌헨을 수년 만에 추월했다.

독일 도시·주별 스타트업 설립 건수 및 증가율. 자료=독일스타트업협회

함부르크는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항구가 있는 도시다. 그래서 물류 회사도 많고, 물류업 종사자도 많다. 물류가 발달했으니 물류 문제를 IT로 풀려는 스타트업도 자연스럽게 이 도시에 모였다. 풀어야 할 비효율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함부르크시는 2017년 옛 창고 건물 하나를 스타트업 사무실 단지로 바꾸고, ‘디지털 허브 로지스틱스’라고 명명했다. 현재 85개 스타트업들이 입주했다. 대표적으로는 선박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계산해주는 소프트웨어 회사인 제로44(Zero44), 선박 관련 서류 작업을 디지털로 바꿔주는 노틸러스로그(NautilusLog) 등이 이곳 출신이다.

항구의 탈탄소화라는 필요에 따라 그린테크도 피어나고 있다. 함부르크 항구 한복판 폐쇄된 석탄화력발전소 부지에 셸·미쓰비시중공업 등이 참여하는 그린수소 허브가 들어서고 있다. 북해 해상풍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만들고, 이를 항만 중공업과 대형 선박 연료로 쓴다는 계획이다. 항만운영사 HHLA은 하역장비의 전원을 수소연료전지로 바꾸는 중이다.

함부르크시는 연구 인프라를 유치해 스타트업들을 끌어들이고도 있다. 시는 국책연구시설인 DLR 양자컴퓨팅 혁신센터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시 자체 예산도 2023년부터 2028년까지 3410만 유로(약 580억 원)를 별도로 투입하기로 했고, 올해 초에는 1200만 유로(약 200억 원)를 추가 편성했다.

독일 주요 도시·주별 인구 10만 명당 스타트업 설립건수. 자료=독일스타트업협회

그 결과 이온트랩 방식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엘렉트론(eleQtron)은 본사가 있는 지겐(Siegen)에 이어 함부르크를 제2거점으로 정했다. 엘렉트론은 지난 5월 시리즈 A로 5700만 유로를 조달했다. 전 세계 양자컴퓨팅 분야 역대 최대급 시리즈A 중 하나다.

또 뮌헨 소재의 양자 아키텍처 전문 스타트업인 패리티QC(ParityQC)를 비롯해 양자컴퓨팅 관련 스타트업인 쿠도라(QUDORA), 유니버설 퀀텀(Universal Quantum) 등도 혁신센터로 향하고 있다. 하나의 정책 인프라를 중심으로 여러 기업이 경쟁하고 협업하는 생태계 자체가 형성된 것이다.

폭발적 스타트업 창업, AI 발달 추이와 정비례

물론 이런 창업 붐이 함부르크만의 특수 요인은 아니다. AI로 인해 창업 문턱이 낮아지는 세계적인 현상으로 읽힌다.

이번 보고서에서도 신규 스타트업 3개 중 1개 꼴(34%)인 1038개가 AI를 비즈니스 모델로 장착했다. 2022년 이전 6~7% 대에서 2023년 13.8%, 2024년 18.3%, 지난해 27.4%등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협회는 “AI 기술 덕분에 창업가들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더 적은 비용을 들여서도 더 빠르고 쉽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고도 짚었다.

독일 주요 도시 스타트업 신규 설립 건수. 자료=독일스타트업협회

글로벌 벤처투자 데이터업체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전 세계 벤처투자의 약 80%가 AI 기업으로 흘러갔다. 전년 동기(55%)보다도 뚜렷이 높아진 수치다. 2분기에도 AI 기업이 전체 투자의 70% 이상을 가져갔다.

그러나 함부르크시의 그린테크·물류·양자컴퓨팅 특화에 대한 방향 설정과 정책 드라이브가 이 흐름을 가속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건강해진 스타트업 생태계

단순히 신규 스타트업이 늘어나는 것 뿐만 아니라 질 자체도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올해 상반기에만 독일 내 기존 스타트업 중 6곳이 유니콘에 등극했다. 유니콘은 기업가치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을 뜻한다. 이런 스타트업을 만나는게 유니콘을 보는 것만큼이나 극도로 희귀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로 인해 독일 전체 유니콘은 36곳(베를린 16곳, 뮌헨 10곳, 나머지 지역 10곳)으로 늘었다. 2020년 말 기준 독일 전체 유니콘은 11개와 비교하면 5년 새 3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유니콘만 900여 개에 달하는 미국과는 아직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2026년 상반기 업종별 스타트업 순위. 자료=독일스타트업협회

보고서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6곳의 유니콘은 △ESG·공급망 규제 대응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오사피엔스(Osapiens) △서버·클라우드 시스템의 이상 징후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AI로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대시제로(Dash0) △석유화학 부산물 등으로 배터리를 만드는 CMBlu 에너지(Energy) △레이저로 핵융합을 일으키는 기술을 개발하는 포커스드 에너지(Focused Energy) △협동·휴머노이드 로봇 제조사인 노이라 로보틱스(Neura Robotics) △자동차 구독 플랫폼인 핀(Finn)으로 보인다.

생태계가 건강해지고 있다는 또 다른 신호는 폐업률의 감소다. 올 상반기 폐업한 스타트업은 117곳으로 전년 동기(167곳)와 비교하면 확연히 줄었다.

독일 스타트업 생태계는 이제 질과 양, 그리고 지역적 다변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며 차세대 혁신의 중심지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필자 이정우는 17년간 언론사 기자로 자동차, 2차전지, 중공업 등 주요 산업을 비롯해 국방, 외교, 환경, 교육, 보건복지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담당했다. 특히 모빌리티 및 에너지 전환과 지속가능성 중심의 산업 구조 변화를 현장에서 취재했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123팩토리’의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이정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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