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포스코 제철소에서 포스코의 지시를 받아 일했다면, 근로계약서에 적힌 회사가 협력업체라도 포스코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다시 나왔다. 특히 이번에는 포스코와 직접 계약하지 않은 2차 하청업체 노동자들까지 처음으로 포스코의 근로자로 인정됐다.

대법원 2부는 16일 포스코 사내 협력업체 노동자 379명이 포스코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2건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 정년을 넘긴 노동자와 냉연제품 포장 업무를 맡은 일부 노동자 등 5명을 제외한 374명을 포스코가 직접 고용해야 할 대상으로 봤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계약서상 소속보다 현장에서 실제로 누가 일을 지휘하고 통제했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데 있다. 노동자들은 협력업체에서 월급을 받았지만 포항·광양제철소에서 크레인 운전, 롤 가공, 제강공정, 설비 유지보수 등 포스코의 철강 생산공정에 투입됐다. 작업 내용과 순서, 인력 배치 등도 사실상 포스코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이들이 협력업체에 고용된 뒤 포스코의 지휘와 명령을 받아 포스코를 위해 일한 만큼 실질적인 근로자 파견관계에 있었다고 본 원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협력업체와 도급계약을 맺었다고 하더라도 원청이 노동자들에게 직접 구체적인 작업 지시를 내렸다면 합법적인 도급이 아니라 불법 파견으로 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업계에서는 특히 2차 하청업체 시오엠테크 소속 노동자 18명이 포스코 근로자로 인정된 점을 주목한다. 시오엠테크는 코크스를 생산하는 가열로의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업체로 포스코와 직접 계약한 1차 협력업체로부터 다시 업무를 하청받은 재하청 회사다. 대법원은 하청 단계가 한 번 더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포스코가 사용자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고 명확히 했다. 이에 따라 불법파견의 판단 기준이 1차 협력업체를 넘어 다단계 하청 구조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제철소 내 모든 협력업체 노동자가 포스코 근로자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철강제품 포장 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포스코엠텍 관련 노동자 4명의 근로자 지위는 인정되지 않았다. 포스코가 냉연 포장 작업을 직접 수행한 적이 없고, 해당 노동자들에게 구체적인 지휘와 명령을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지난 4월에도 같은 취지로 포스코엠텍 소속 노동자 7명에 대한 원심을 파기환송한 바 있다. 업무가 포스코의 생산 공정에 얼마나 밀접하게 편입되었는지에 따라 법리적 판단이 엇갈린 셈이다.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소송은 2011년 시작됐다. 첫 대법원 판결은 2022년 7월 나왔는데 노동자 55명이 포스코를 상대로 승소하면서 포스코의 직접 고용 의무가 처음 확정됐다. 현재까지 금속노조 소속 314명이 추가로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았으며, 1심이 진행 중인 1177명을 포함해 관련 소송 참여자는 총 2667명에 이른다.

금속노조는 이날 대법원 판결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사건을 대리한 정준영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노동자들이 7~8년의 시간 동안 법정에서 포스코와 증거를 가지고 싸워 얻어낸 당연한 결론”이라며 “포스코가 철강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공정에 대해 불법 파견이 인정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노조는 포스코가 올해 4월 협력업체 노동자 7000여명을 직접 고용하기 위해 별도 직군인 조업시너지(S) 직군을 신설하는 방안을 발표한 것에 대해서는 강도 높게 비판했다. S직군에는 기존 현장 직원 대비 평균 70% 이상 수준의 임금 체계가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속노조와 포스코사내하청지회는 반쪽자리 직고용이라며 강력히 반발하면서 회사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S직군 채용이 사업장 내 또 다른 신분 차별과 이중 구조를 고착화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박근서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장은 기자회견에서 “오늘 대법원 판결이 났지만 사내하청 직고용 대상자들은 사실 행복하지 않다”며 “반쪽자리 직고용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하루빨리 S직군을 철회하고 정상적인 직고용을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승필 포스코 사내하청 포항지회장도 “S직군이라는 꼼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영원히 2등 정규직 틀 안에 가두려는 비겁한 면피책”이라며 “차별 없는 온전한 일터를 쟁취할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조는 포스코 측이 당사자인 노동조합과 어떠한 대화나 절차적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제도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상만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이제 법적인 싸움은 소모전일 뿐”이라며 “장인화 회장이 직접 원청 교섭 테이블에 나와 노동 조건과 직접 고용 방식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사측의 책임있는 대화를 촉구했다.
포스코 측은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법원의 판결 결과를 존중하며 후속 절차를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포스코 관계자는 “원하청 구조의 획기적인 개선과 현장 안전 관리 체계 혁신을 위해 철강 생산 공정에서 조업과 직접 연관된 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협력사 현장 직원의 직고용을 결정한 것”이라며 “제철소의 안전 확보와 기존 조업 체계와 원활한 통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승소 원고들을 대상으로 순차적인 후속 절차를 밟아 나가겠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