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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욱의 나쁜골프
반바지 논쟁으로 본 골프장 드레스코드의 이해

‘니커보커스’ 등 영국 귀족 복식에서 점차 실용적인 기능성 의류로 변화

[비즈한국] 폭염이다. 미디어에서는 야외 활동을 가급적 자제하라고 한다. 그럼에도 골퍼들은 필드로 향한다. 어떤 골퍼는 혹서기라 그린피가 저렴하다며 “이때 안 치면 언제 치냐”고 강하게 주장한다. “반바지 입고 얼음주머니 챙겨 가면 칠 만해.” 폭염보다 뜨거운 열정을 가진 열혈 골퍼의 말이다. 여기서 반바지는 사실 라운드 중 허용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여름에 어떻게 긴바지를 입고 라운드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골퍼들은 드레스 코드가 엄격했던 이전의 골퍼들보다 행운이라고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골프의 드레스 코드는 스코틀랜드 목동들의 두꺼운 일상복에서 출발해 영국 귀족들의 재킷과 넥타이, 니커보커스를 거쳐 가볍고 기능적인 현대 골프웨어로 변화해 왔다. 사진=생성형AI

골프는 15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되었다. 그게 정설이다. 초기에는 양을 치던 목동들의 놀이였기 때문에 특별한 복장 규정이 없었다. 다만 스코틀랜드의 매서운 칼바람과 비를 막기 위해 두꺼운 트위드(tweed) 재킷이나 울 소재의 일상복을 입고 골프를 했다. 하지만 18~19세기에 들어 영국 왕실과 귀족들이 골프를 적극적으로 즐기기 시작하면서 골프 옷은 완전히 바뀐다. 당시 귀족들에게 골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사교 활동이자 사회적 활동이었다. 그들은 젠틀맨의 체통을 지키기 위해 깃을 빳빳하게 세운 셔츠에 넥타이 혹은 보타이를 매고, 두꺼운 재킷과 무릎 아래까지 오는 바지, 즉 니커보커스를 입었다. 여성 골퍼들은 온몸을 꽁꽁 감싼 긴 드레스와 코르셋을 착용하고 골프를 쳐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윙하기에 얼마나 불편했을까 싶지만, 당시에는 기능보다 품위 유지가 먼저였다.

1929년 경제 대공황이 몰아닥쳤다. 골퍼들은 무릎까지 오는 양말인 값비싼 니삭스를 사서 갖출 여유가 없었다. 니삭스와 하나의 세트였던 니커보커스는 그렇게 골프 코스에서 사라졌다. 1930년대 들어 골퍼들은 드디어 넥타이를 벗어 던졌다. 무거운 트위드 재킷 대신 가벼운 소재의 상의와 팬츠를 입기 시작했다.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화학섬유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나일론의 발달로 가볍고 신축성 있는 옷들이 쏟아졌다. 무채색에서 벗어나 핑크, 그린, 옐로 등 화려한 원색을 입은 골퍼들이 필드를 누비기 시작했다. 1970년대의 필드는 골프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컬러풀한 골프 패션의 시대였다.

골퍼들은 넥타이만 벗어 던진 게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고수했던 플랫캡, 일명 헌팅캡도 벗어 던졌다. 깃이 있는 폴로셔츠에 야구 모자를 쓰는 모습이 골퍼들의 전형적인 복장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프로 선수들이 모자에 스폰서 브랜드를 붙이기 시작한 것도 넓은 면을 가진 야구 모자로 바뀌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엄격하고 고집스러웠던 골프의 드레스 코드도 유연해지기 시작했다. 타이거 우즈는 셔츠의 깃 대신 둥근 깃이 살짝 올라온 모크넥 셔츠를 입었다. 당시에는 이 셔츠를 허용해야 하는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많은 선수와 주말 골퍼들이 타이거 우즈를 따라 모크넥 셔츠를 입기 시작했다.

골프의 드레스 코드는 코스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클럽하우스에 입장할 때도 어느 정도 잘 갖춰진 복장을 요구받았다. 재킷을 입어야 했고 청바지를 입어서는 안 됐으며, 캐주얼한 신발 역시 드레스 코드라는 관점에서는 에티켓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최근에 골프를 시작한 골퍼들에게는 옛날 옛적 엄격했던 시대의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골퍼들에게 오랫동안 반바지가 금지된 이유는 간단했다. 반바지는 어린아이만 입는 옷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골퍼들이 반바지를 입어도 되느냐를 둘러싼 논쟁도 논쟁 중의 논쟁이었다. 국내 골프장 중에는 반바지를 입더라도 무릎까지 오는 니삭스를 신게 해 무릎 아래 종아리가 보이는 것을 금기시한 곳도 있었다.

하지만 기존 관습에 비교적 관대한 LIV 골프는 2022년부터 반바지를 허용했다. DP 월드투어와 아시안투어도 반바지 착용을 허용했고, 비교적 엄격한 투어인 PGA 투어는 정규 대회에서는 아니지만 대회 전에 치러지는 프로암 대회에서 반바지를 허용했다. KPGA는 2024년 군산CC에서 열린 군산CC 오픈에서 반바지 라운드를 허용했다.

이제 골프 코스의 풍경은 더 이상 근엄하지 않다. 골퍼들의 복장도 더 이상 형식적이지 않다. 골프가 대중화되면서 골프의 드레스 코드도 바뀌었다. 시대가 코드를 다시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지켜야 할 선은 있다. 그 선은 골프 코스에서 자신의 복장으로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선이다. 적어도 골프 코스에서는 멋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강찬욱 작가

광고인이자 작가.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현재는 영상 프로덕션 ‘시대의 시선’ 대표를 맡고 있다. 골프를 좋아해 USGTF 티칭프로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글쓰기에 대한 애정으로 골프에 관한 책 ‘골프의 기쁨’, ‘나쁜골프’, ‘진심골프’, ‘골프생각, 생각골프’를 펴냈다. 유튜브 채널 ‘나쁜골프’를 운영하며, 골프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을 독자 및 시청자와 나누고 있다.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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