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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쥐 없는 바이오
① “죽음의 동물실험 걷어치워라” 전 세계 규제 한목소리

‘생쥐 대신 AI·장기 칩으로’ FDA가 쏘아 올린 ‘비동물’ 혁명…EU 전면 퇴출 결의·중국도 규제 전환

편집자 주
인간의 안전을 위해 다른 생명의 희생을 당연시해온 동물실험 체계가 한계에 다다랐다. 동물과 인간의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신약 후보물질 상당수가 임상에서 탈락하는 가운데, AI·오가노이드·장기 칩은 윤리와 정확성을 함께 요구하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비즈한국은 글로벌 규제 변화와 국내 산업의 현실을 통해 ‘실험쥐 없는 바이오’가 구호를 넘어 뉴노멀이 될 수 있을지 그 당위성과 가능성을 짚어본다.

[비즈한국] 굳게 닫힌 제약·바이오 연구소의 문 뒤에서는 매년 거대한 숫자의 생명이 사라진다. 재단법인 생명과학 연구윤리서재가 집계한 ‘2024년도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운영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총 459만 2958마리의 동물이 각종 실험에 동원됐다.

이 중 설치류가 406만 7518마리로 전체의 88% 이상을 차지하며 가장 많이 희생됐다. 뒤를 이어 인간과 생물학적 구조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동원되는 영장류가 3961마리, 온순한 성격으로 독성 실험의 단골 타깃이 되는 개도 1만 5934마리가 좁은 철창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는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에서 매년 1억 마리 이상의 동물이 인간의 안전이라는 명분 아래 의약품과 화학물질 개발을 위해 희생되고 있다. 수십 년간 제약 산업을 지탱해온 ‘동물실험’이라는 이 거대한 쳇바퀴에 글로벌 규제 당국이 마침내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AI의 급격한 발달과 3D 프린팅, 오가노이드(장기유사체) 등이 등장하면서 동물실험을 대체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80년 만에 원칙 변경…FDA 현대화법과 NIH의 대규모 투자

동물실험 축소 움직임에 불씨를 당긴 것은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이다.

2022년 말 미국 의회는 ‘신약 승인 신청 전 반드시 동물실험을 거쳐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삭제한 ‘FDA 현대화법 2.0’을 상·하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1938년 연방 식품·의약품·화장품법이 제정된 이후 84년 만의 변화로 동물을 쓰지 않는 새로운 접근 방법(NAMs)의 데이터만으로도 신약을 승인하는 프로세스를 마련한 것이다. FDA는 단클론항체를 비롯한 신약 개발에서 동물실험 요구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로드맵까지 연이어 내놨다.

동물실험의 시대가 저무는 갈림길에서, 규제·기술·산업·소비가 함께 써 내려가는 ‘비동물’ 혁명이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사진=생성형AI

여기에 더해 지난 2024년 ‘FDA 현대화법 3.0’까지 발의돼 제도 개선의 시계를 더욱 앞당기고 있다. FDA 현대화법 2.0이 동물실험의 법적 의무를 없앴다면, 3.0은 FDA가 동물대체시험법을 평가하고 승인하는 명확한 공식 절차를 의무적으로 마련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는 동물실험을 통과했음에도 신약 후보 물질의 90%가 실제 인체 임상에서 탈락하는 구조적 비효율의 원인을 인간과 동물의 종간 차이로 보고 과학기술로 극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미국은 규제 완화에 그치지 않고 신시장을 열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오가노이드, 장기 칩,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 동물대체시험법 연구에 수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NIH 산하 국립중개과학연구센터(NCATS)는 ‘약물 스크리닝을 위한 조직 칩’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지난 10여 년간 장기 칩 기술 개발 및 상용화에만 2억 5000만 달러(3755억 원) 이상을 투입했다. 최근 알츠하이머, 암 등 희귀·난치성 질환의 오가노이드 모델 개발과 AI 독성 예측 플랫폼 구축에도 연간 수천만 달러의 펀딩을 추가 배정한 상태다.

EU, 단계적 폐지 방침…아시아도 동물대체시험법 바람

미국이 쏘아 올린 신호탄은 전 세계 주요 규제 기관들에 도미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일찌감치 화장품 동물실험을 전면 금지하며 윤리적 소비를 주도해온 유럽연합(EU)은 의약품을 포함한 모든 산업군에서 동물실험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로드맵을 가동 중이다. 2021년 유럽의회는 모든 연구, 규제, 교육 목적의 동물 사용을 종식하기 위한 실행 계획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비동물 과학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뒀다. 아울러 유럽 최대 연구 혁신 프로그램 ‘호라이즌 유럽’을 통해 혁신적 동물대체시험법 실용화 프로젝트에 600만 유로(103억 원) 이상을 배정하는 등 기술 상용화에 힘을 쏟고 있다.

한국동물보호연합, 동물의목소리, 동물실험폐지연대, 한국채식연합, 한국비건연대는 지난 11일 성명서를 통해 ‘동물대체시험법 활성화’를 촉구했다. 사진=한국동물보호연합 홈페이지

서구를 넘어 아시아에서도 동물실험 대체법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일본은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와 일본의료연구개발기구(AMED)를 중심으로 동물대체시험법 가이드라인 제정과 기술 상용화를 서두르고 있다. 특히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기술을 활용한 독성 평가 모델이 두각을 보인다.

가장 보수적인 국가로 평가받는 중국도 변화의 물결을 받아들였다.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은 지난 2021년 수입 일반 화장품에 대한 동물실험 의무를 사실상 폐지했다. 생산 기업이 소재한 국가의 정부가 공식 발급한 우수화장품제조기준(CGMP) 인증서를 제출하고 자체적인 안전성 평가 보고서로 제품의 안전성을 충분히 입증하면 영유아·어린이용 제품이나 모니터링 중인 신원료가 포함된 경우를 제외하면 동물 독성 시험을 하지 않도록 변경했다.

중국은 신약 허가 과정에도 동물대체시험법을 확대 적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일부터 NMPA 산하 약품평가센터(CDE)가 NAMs 연구 및 응용 시범사업(파이오니어 프로그램)에 대한 공개 의견수렴을 시작하며 오가노이드, AI 기반 예측 기술 등의 사용 확대에 나섰다. 5년간 운영되는 이 시범사업은 신약 후보물질 비임상 평가에 동물대체시험법 데이터를 적용하고 이를 의약품 허가 신청 시 증빙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규제 전환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기존 동물실험 모델로는 더 이상 혁신 신약 개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3년 9월 1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동물대체시험법 활성화 법안 입법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정애 의원 공식 홈페이지

국내서도 입법 발의 잇달아…부처 칸막이 깨고 생태계 육성 나서

글로벌 패러다임이 격변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법적·제도적 인프라 구축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핵심은 부처별로 흩어진 칸막이를 허물고 범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를 세워 국가적 생태계를 육성하는 것으로 이를 위한 입법 논의가 활발하다.

지난해 8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강서구병)의 안을 시작으로 같은 당의 송옥주 의원(경기 화성시갑)이 12월, 남인순 의원(서울 송파구병)이 올 2월 등 연이어 ‘동물대체시험법 개발·보급 및 이용 활성화(촉진)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동물용의약품·농약(농림축산식품부), 화학물질(환경부), 의약품·화장품(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소관 부처별로 개별법에 따라 대체시험법 업무를 분산 수행하고 있어 범정부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발의된 제정안들은 공통적으로 소관 중앙행정기관들이 공동 운영하는 동물대체시험법협의체를 구성하고 5년마다 국가 차원의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여기에 국내에서 개발된 오가노이드, 장기 칩 등 첨단 기술을 검증하고 국제 가이드라인으로 제안할 ‘한국동물대체시험법검증센터(KoCVAM)’ 설치 근거는 물론, 흩어진 기술과 지식재산권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산·학·연 교류를 돕기 위한 통합 정보시스템 구축 내용도 담겼다.

한정애, 남인순 의원 등은 법안 발의를 통해 “부처별로 분산된 가이드라인을 통합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윤리적·과학적 대체시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입법 취지를 밝혔다.

실험쥐 없는 바이오
  • ① “죽음의 동물실험 걷어치워라” 전 세계 규제 한목소리
    ① “죽음의 동물실험 걷어치워라” 전 세계 규제 한목소리
최영찬 기자

제약바이오 분야 출입하고 있습니다. 많이 듣고 많이 공부해 정확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chan111@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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