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캐나다의 차세대 잠수함 수주전은 한국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최종적으로는 독일의 티센크루프 마린 시스템즈(ThyssenKrupp Marine Systems, TKMS)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고, 한국의 한화오션(Hanwha Ocean)이 예비 공급자로 남았다. 캐나다 정부는 2026년 7월 캐나다 순찰 잠수함 프로젝트(Canadian Patrol Submarine Project, CPSP)를 위해 최대 12척의 잠수함 도입 협상을 TKMS와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협상이 결렬될 경우 한화오션이 우선협상대상자가 될 여지는 남겼다.
이번 수주전은 단순한 잠수함 성능 경쟁이 아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방산은 다시 전 세계 산업정책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각국은 무기를 사면서 동시에 자국의 생산기반, 정비역량,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우주, 센서, 사이버보안 생태계를 함께 키우려 한다.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은 바로 이 변화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이제 방산 수출은 “좋은 무기를 파는 일”을 넘어, 그 무기를 수십 년 동안 운용하고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술생태계를 함께 제안하는 일이 됐다.

독일이 캐나다에 제안한 생태계: NATO형 공동 플랫폼
독일 TKMS가 캐나다에 내세운 핵심 카드는 Team 212CD였다. Team 212CD는 독일, 노르웨이, 캐나다를 하나의 잠수함 파트너십으로 묶는 구상이다. 중심에는 HDW Class 212CD(Howaldtswerke-Deutsche Werft Class 212 Common Design)가 있다. 이 잠수함은 독일과 노르웨이가 공동 개발한 재래식 잠수함으로, 기존 212A 플랫폼을 바탕으로 더 큰 선체, 저피탐 설계, 수소 연료전지 기반 공기불요추진(Air Independent Propulsion, AIP)을 적용한 모델이다.
독일의 제안은 “독일 잠수함을 캐나다에 팔겠다”는 단순한 방식이 아니었다. 캐나다가 독일·노르웨이가 이미 함께 진행 중인 잠수함 프로그램에 합류하고, 같은 플랫폼을 쓰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파트너들과 훈련, 정비, 물류, 업그레이드 체계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캐나다처럼 북극, 대서양, 태평양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국가에는 이 점이 매우 중요했다. 잠수함은 한 번 도입하면 수십 년을 운용하기 때문이다.
이 생태계에는 캐나다 기술기업들도 들어갔다. 시스팬 조선소(Seaspan Shipyards)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와 빅토리아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캐나다 조선·수리·정비 기업이다. 현재 캐나다 해군의 빅토리아급 잠수함 정비에도 참여한 기업으로, TKMS와 함께 캐나다 내 장기 정비 역량을 구축하는 파트너로 제시됐다. 이는 캐나다가 독일에 계속 의존하는 구조가 아니라, 자국 안에 잠수함을 오래 운용할 수 있는 기반을 남기겠다는 메시지였다.
마르멘(Marmen)은 퀘벡주 트루아리비에르에 기반을 둔 정밀 제조기업이다. 1972년 설립된 이 회사는 풍력, 항공우주, 원자력, 방산, 대형 산업설비 분야에서 고정밀 구조물과 복잡한 조립품을 제작한다. TKMS는 마르멘과 212CD 잠수함의 일부 구간과 복잡한 부품을 캐나다에서 생산하는 협력을 추진했다. 방산 전문기업이 아니더라도 정밀 제조 역량을 가진 기술기업이 해양 방산 공급망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CAE(옛 Canadian Aviation Electronics)는 1947년 몬트리올에서 설립된 캐나다의 대표 훈련·시뮬레이션 기업이다. 항공기 조종 시뮬레이터로 유명하지만, 방산 분야에서도 승조원 훈련, 미션 리허설, 디지털 학습 시스템을 제공한다. TKMS는 CAE와 잠수함 승조원 훈련 및 시뮬레이션 협력을 추진했다. 현대 잠수함 전력은 선체와 무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승조원이 복잡한 상황을 반복적으로 훈련하고, 실제 작전 전에 임무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상징적인 기술기업은 코히어(Cohere)다. 코히어는 2019년 토론토에서 설립된 기업용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이다. 소비자용 챗봇보다 보안이 중요한 기업·정부 환경에서 쓸 수 있는 대규모 LLM과 검색증강생성(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RAG) 기술에 집중해 성장했다. TKMS는 코히어와 잠수함 운용을 위한 AI 기반 의사결정 지원, 온보드 정보관리, 훈련 환경, 보안형 해군 인터페이스 협력을 발표했다. 잠수함 안에서 AI가 승조원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방대한 센서와 운용 데이터를 정리하고 판단을 보조하는 역할이다.
오에스아이 매리타임 시스템즈(OSI Maritime Systems)도 주목할 만하다. OSI는 브리티시컬럼비아 기반의 해군 항법·전술 시스템 기업으로, NATO 및 동맹국 해군에 전자해도, 통합 브리지, 잠항 항법 솔루션을 공급해왔다. 노르웨이의 콩스버그(Kongsberg)는 TKMS와 함께 212CD의 전투체계인 오르카(ORCCA Combat System)를 제공하는 파트너인데, OSI와의 협력을 통해 캐나다 항법 기술을 NATO형 전투체계 안에 통합하는 그림을 만들었다.
독일의 제안은 결국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된다. 캐나다에 잠수함을 팔겠다기보다, 캐나다를 NATO형 잠수함 생태계 안으로 초대하겠다는 것이었다.
한국이 제안한 생태계: KSS-III를 중심으로 한 캐나다 산업협력
한국도 잠수함만 제안한 것은 아니었다. 한화오션이 제안한 케이에스에스-III 캐나다 순찰 잠수함(KSS-III Canadian Patrol Submarine, KSS-III CPS)은 한국 해군의 최신 재래식 잠수함 계열을 캐나다 요구에 맞춘 모델이다. KSS-III는 리튬이온 배터리와 AIP, 장거리 작전 능력, 대잠전·대함전·정보감시정찰(Intelligence, Surveillance and Reconnaissance, ISR) 역량을 앞세웠다. 한화오션은 1973년 설립 이후 거제 옥포조선소를 기반으로 성장한 한국의 대표 조선·해양 방산 기업으로, 한국 해군 잠수함과 수상함 건조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의 전략 역시 분명했다. KSS-III라는 플랫폼을 중심에 두고, 캐나다의 철강, 우주, 위성통신, AI, 센서 기업을 묶는 방식이었다. 이는 한국 방산이 이제 완제품 수출만이 아니라 현지 기술생태계와 함께 가는 제안을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대표적인 파트너가 알골마 스틸(Algoma Steel)이다. 알골마는 온타리오주 수세인트마리에 기반을 둔 캐나다 철강기업으로, 12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북미 철강산업의 주요 기업 중 하나다. 한화오션은 알골마와 캐나다 철강 공급 협력을 추진했다. 잠수함 건조와 정비 인프라에 필요한 철강을 캐나다 현지 산업과 연결하겠다는 메시지였다. 방산 조달에서 철강은 단순 소재가 아니다. 지역 일자리, 공급망 회복력, 산업주권을 상징한다.
우주·통신 분야에서는 텔레샛(Telesat)과 엠디에이 스페이스(MDA Space)가 등장했다. 텔레샛은 1969년 캐나다 의회에 의해 설립된 위성통신 기업으로, 저궤도 위성망 텔레샛 라이트스피드(Telesat Lightspeed)를 추진하고 있다. MDA는 캐나다의 대표 우주기업으로, 캐나다암(Canadarm)으로 상징되는 우주 로보틱스와 위성, 우주 인프라 분야에서 잘 알려져 있다. 한화시스템(Hanwha Systems)은 이들과 보안형 저궤도 위성통신, 국방 우주기술, 데이터 복원력, 지휘통제 역량 협력을 추진했다.
센서 분야에서는 피브이 랩스(PV Labs)가 참여했다. PV는 온타리오주 벌링턴에 기반을 둔 전자광학/적외선(Electro-Optical/Infrared, EO/IR) 센서 기업이다. 항공 및 이동 플랫폼용 안정화 광학 시스템을 개발했고, 한화시스템과 전술 전자광학 시스템 개발, 현지 통합, 생산, 기술 이전, 글로벌 수출 협력을 논의했다.
흥미로운 점은 코히어(Cohere)가 한국 쪽에도 등장했다는 것이다.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은 코히어와 AI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협력 범위는 잠수함 운용뿐 아니라 스마트 조선소, 설계·생산·운영 효율화까지 포함했다. 같은 AI 기업이 독일과 한국 양쪽 제안에 모두 등장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현대 방산에서 AI 스케일업은 더 이상 주변 기술 공급자가 아니라, 대형 플랫폼을 미래형 전력으로 보이게 만드는 핵심 파트너가 되고 있다.

한국의 제안은 독일과 문법이 달랐다. 독일이 NATO 공동 플랫폼이라는 동맹형 생태계를 제시했다면, 한국은 KSS-III를 중심으로 캐나다 기술기업과 산업을 연결하는 확장형 생태계를 제안했다. 최종 선택은 독일이었다. 하지만 한국이 단순히 잠수함의 성능과 가격, 납기만을 앞세운 것은 아니었다. 한화는 캐나다 기술기업들과 함께 “한국 방산이 캐나다 산업과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만들었다.
방산 기술에서 협업생태계가 중요해지는 이유
이번 수주전의 핵심은 한국이 독일에 졌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방산 수출의 공식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제 방산은 무기를 파는 산업이면서 동시에 기술생태계를 파는 산업이 됐다.
잠수함 한 척을 생각해보자. 선체와 추진체계, 무장도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 전력은 그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승조원을 훈련시키는 시뮬레이션 기업, 작전 데이터를 정리하는 AI 기업, 항법과 전투체계를 통합하는 소프트웨어 기업, 위성통신을 제공하는 우주 기업, 센서를 만드는 광학 기업, 수십 년간 정비를 담당할 조선소, 핵심 부품을 생산하는 정밀 제조 기업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독일은 이 점을 잘 보여줬다. TKMS는 212CD라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시스팬, 마르멘, CAE, 코히어, OSI, 콩스버그를 묶었다. 그리고 이를 NATO 공동 플랫폼, 장기 정비, 훈련, 전투체계, AI, 항법 기술이 결합된 생태계로 설명했다. 캐나다 입장에서는 잠수함을 사는 것이 아니라, 독일·노르웨이와 함께 운용할 수 있는 안보 생태계에 들어가는 선택이었다.
한국도 의미 있는 진전을 보였다. 한화는 알골마, 텔레샛, MDA 스페이스, 코히어, PV 랩스와의 협력을 통해 KSS-III가 캐나다 산업과 기술기업을 키울 수 있다는 그림을 제시했다. NATO의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기술생태계를 홍보하고 현지 기업들과 함께 방산 패키지를 구성하는 방식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정교한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에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좋은 플랫폼은 출발점일 뿐이다. 앞으로의 방산 수출은 제품 성능, 가격, 납기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고객국은 자국 산업에 무엇이 남는지, 어떤 기술기업이 참여하는지, 정비와 업그레이드 역량이 국내에 쌓이는지, 동맹국과 얼마나 쉽게 함께 운용할 수 있는지를 본다.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은 아쉬운 결과였지만, 동시에 다음 전략을 보여준 사례였다. 한국 방산이 유럽과 북미의 전략 조달 시장에서 더 깊이 들어가려면, 무기를 넘어 생태계를 설계해야 한다. 단순한 MOU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업들이 실제 운용, 정비, 훈련, 데이터, 공급망, 업그레이드 구조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수주전에서 독일은 캐나다를 NATO형 잠수함 생태계로 초대했다. 한국은 KSS-III를 중심으로 캐나다 기술기업들과 함께 갈 수 있는 산업협력 생태계를 보여줬다. 캐나다의 선택은 독일이었지만, 한국의 방향도 틀리지 않았다. 다만 다음에는 더 깊은 동맹 구조, 더 정교한 현지 기술협력, 더 설득력 있는 장기 운용 생태계가 필요하다. 방산의 경쟁은 이제 무기 경쟁을 넘어, 기술생태계 경쟁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