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 ESG 공시 로드맵이 최종 확정됐다. 지난 2월 금융위원회가 제시한 초안보다 공시 대상 기업을 확대하고 신뢰도가 높은 법정공시로 즉시 전환하는 것이 골자다. 금융 투자 업계와 시민사회는 강화된 기준에 환영의 기조를 보이면서도 스코프3 공시는 3년 유예하는 등의 내용에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7월 8일 당정협의회를 거쳐 ‘지속가능성(ESG) 공시 제도화 방안 최종안’을 공식 발표했다. 이번 최종안은 지난 2월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초안보다 제도의 구속력과 대상 범위를 대폭 강화한 전향적인 내용을 담았다.
가장 큰 변화는 당초 예고됐던 ‘거래소 공시 후 법정공시 전환’이라는 단계적 우회로를 전면 폐기하고, 2028년(2027 사업연도) 첫해부터 자본시장법상 사업보고서에 통합하는 법정공시로 즉시 직행한다는 점이다. 또한 법정공시로 즉시 시행됨에 따라 정보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 공시 시행 2년 후인 2030년부터 제3자 인증을 의무화한다.
이와 함께 의무화 대상 기업의 문턱도 연결자산총액 30조 원에서 10조 원으로 낮아지며 대상이 확대됐다. 다만 공급망 전반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의미하는 스코프3 공시는 산출 인프라 구축을 위해 공시 대상별로 3년씩 유예해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 기업 기준으로 2031년부터 시작한다.
즉시 법정공시와 대상 기업 확대 ‘환영’
금융 투자 업계와 시민사회는 즉시 법정공시로 전환하는 점을 크게 평가했다. 당초 초안에서는 기업들의 부담을 고려해 거래소 공시로 제도를 시작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법정공시로 전환하겠다는 2단계 안을 제시했었다. 하지만 최종안에서는 이를 전면 폐기하고 2028년(2027 사업연도)부터 자본시장법상 사업보고서 공시로 즉시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매년 3월 제출하는 재무제표와 지속가능성 정보의 공시 채널 및 시점을 일치시켜 투자 정보로서의 적시성과 유용성을 확보하겠다는 심산이다.
최용환 NH아문디자산운용 ESG리서치 팀장은 “거래소 공시의 수준으로는 신뢰성이 낮아 효용이 떨어지고, 기업한테 비용으로밖에 인식이 안 된다”며 “불필요한 사회적 매몰 비용이 들어갈 뻔한 것을 다행히 정상적으로 잘 바로잡았다”라고 평가했다.
법정공시는 공시된 내용에 심각한 오류가 있거나 허위 사실이 발견될 경우 법적 처벌과 행정 제재가 수반되기 때문에 기업에게 거래소 공시보다 더 강한 책임감을 부여한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사무총장은 “법정 공시는 사업보고서 공시이기도 하고, 매년 3월 주총 전에 내서 투자자들이 평가하는 구조”라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법적인 처벌이 수반되는 것이 상식이기에 기업이 거래소 공시보다는 법정 공시로 갔을 때 수치나 문제 있는 내용들을 좀 더 면밀하게 보게 만드는 강력한 책임성을 갖게 된다”라고 법정공시 즉시 도입의 의미를 짚었다.
정부는 법정공시에 따른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 초기 3년간 고의적인 그린워싱을 제외한 공시정보 전체에 대해 포괄적으로 자본시장법상 손해배상, 행정제재,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세이프하버’를 제공하기로 했다. 또한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내 산업 환경을 고려해 톤당 내부탄소가격이나 산업별 특수 지표 등은 의무가 아닌 선택 공시 사항으로 분류해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줬다.
공시 대상 기업의 자산 규모 기준을 초안의 30조 원에서 10조 원으로 대폭 낮춘 점도 이번 최종안의 진전된 성과로 꼽힌다. 정부는 2028년 자산 1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2029년에는 대기업 기준점인 5조 원 이상으로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2028~2029년의 공시 이행 상황을 정밀하게 평가한 뒤, 2030년에는 자산 2조 원 이상 기업까지 추가로 확대를 검토하겠다는 단계적 로드맵도 확정했다. 현재 기준으로 공시 범위에 포함되는 기업은 종속회사를 포함해 2028년 291개사, 2029년 3171개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자산 기준이 10조 원으로 하향 조정되면서 시장이 체감하는 공시 범위는 확연하게 넓어졌다. 조대현 아시아기후변화투자자그룹(AIGCC) 한국팀장은 “10조 원 확대는 분명한 긍정 신호”라며 “30조 원 기준에서는 MSCI Korea 지수 구성종목의 절반 정도만 포함됐지만, 10조 원으로 낮아지면서 자체 분석 결과 약 4분의 3이 해당될 것으로 파악한다”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글로벌 투자자에게 한국은 투자 가능한 여러 시장 중 하나의 시장이고 비교 대상은 다른 나라의 기업들인데, 대상이 이렇게 넓어지면 한국 기업들이 정보 제공 측면에서 해외 기업들과 같은 선상에 놓이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고 설명했다.
- 스코프3
- 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범위에 따라 1, 2, 3으로 나눈다. 스코프1은 공장 굴뚝처럼 기업이 직접 내뿜는 배출, 스코프2는 기업이 사서 쓰는 전기·열을 만들 때 나온 배출이다. 스코프3는 그 바깥 전부, 즉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사, 제품을 실어 나르는 물류, 소비자가 제품을 쓰고 버리는 과정까지 공급망 전체에서 발생하는 배출을 말한다. 범위가 넓다 보니 계산하기 어렵지만, 보통 스코프3가 기업 전체 배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이걸 빼면 기업의 진짜 탄소 발자국을 알 수 없다.
- 세이프하버
- 직역하면 ‘안전한 항구’. 일정 조건을 지키면 처벌이나 소송에서 면제해 주는 보호 장치다. 이번 방안에서는 제도 도입 초기 3년간 고의적인 그린워싱만 아니면 처벌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 전환금융·녹색금융
- 녹색금융은 재생에너지처럼 이미 친환경적인 사업에 돈을 대는 것이고, 전환금융은 철강·화학처럼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이 저탄소로 바꿔가는 과정을 지원하는 금융이다.
- 내부탄소가격
- 기업이 스스로 정한 탄소 1톤당 가격이다. 투자 결정을 할 때 ‘이 사업은 탄소를 많이 배출하니 이만큼 비용이 더 든다’고 가정해 계산하는 내부 기준이다.
유예된 ‘스코프3’ 배출량, 기업 75%, 금융기관 99% 달해
전반적으로 제도 강화 흐름 속에서도 공급망 전반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의미하는 스코프3 공시는 초안대로 3년 유예 기조가 유지됐다. 이에 따라 2028년 첫 공시 대상인 10조 원 이상 대기업들은 3년 뒤인 2031년부터 스코프3 데이터를 공개하게 되며, 향후 편입될 5조 원 기업은 2032년, 2조 원 기업은 2033년에야 완결된 데이터를 시장에 내놓게 된다.
이러한 유예 결정을 두고 투자 업계와 시민사회에서는 기후 리스크를 온전하게 평가할 수 있는 핵심 데이터가 장기간 공백으로 남게 되었다며 아쉬움을 표한다. 스코프3는 기업의 실질적인 기후 리스크와 녹색 전환 계획의 진정성을 검증하는 데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스코프3 배출량은 평균적 기업 전체 탄소 배출량의 약 75%를 차지하고, 금융기관의 경우 99%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영주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 연구원은 “제3자 인증이 공시 의무화 2년 뒤인 2030년에야 시작되고, 초기 3년간 포괄적인 면책이 함께 적용되면 검증도 책임도 담보되지 않은 정보가 시장에 먼저 쌓이게 된다”며 “스코프3 공시 유예까지 겹치면 투자자가 실제로 신뢰하고 활용할 수 있는 ‘검증된 완결형’ 기후정보가 시장에 등장하는 시점은 제도 시행 후 상당 기간이 지난 2030년대 중반으로 밀릴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투자 기회의 상실과 국제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조대현 팀장 역시 “철강, 화학, 운송처럼 스코프3가 전체 배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섹터에서는 스코프 1, 2만으로 전환계획의 신뢰성을 검증할 수 없다”라며 “2031년까지 이 데이터가 공백으로 남는 것은 강화된 2035년 NDC 이행과 전환금융 집행이 가장 집중되는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는 점에서 아쉽다”라고 지적했다.
조 팀장은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전환금융이나 녹색금융을 활용하려는 기업에 대해서는 스코프3를 먼저 공시하도록 강제하거나, 정부가 2028년까지 마련하기로 한 수출 업종별 스코프3 산정 가이드라인을 앞당기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에 확정된 최종안을 바탕으로 오는 7월 중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신속하게 발의하기로 협의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공시 로드맵 발표로 가야 할 방향과 목표가 명확해진 만큼, 자본시장법 개정 등 로드맵 이행을 위한 조치들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라며 “관계부처와 함께 신뢰성 있는 공시가 가능하도록 전방위적 지원방안도 마련하겠다”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