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HLB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약 도전에서 세 번째 좌절을 맛봤다. 간암 1차 치료제로 개발 중인 ‘리보세라닙-캄렐리주맙 병용요법’이 FDA로부터 보완요구서한(CRL)을 수령하며 문턱을 넘지 못한 것. 시장에서는 이번 좌절이 HLB그룹을 넘어 국내 제약바이오 섹터 전반에 걸쳐 투자 심리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깊이 우려하고 있다.

파트너사 항서제약 타 약품 품질관리가 원인
HLB는 이날 공시를 통해 리보세라닙-캄렐리주맙 병용요법 FDA 심사에서 CRL을 수령했다고 밝혔다. 2024년 5월, 2025년 3월에 이어 세 번째다.
앞서 1·2차 CRL 수령 당시 항서제약의 캄렐리주맙 CMC(제조 및 품질관리) 리스크가 발목을 잡았다면, 이번에는 리보세라닙이나 캄렐리주맙의 생산 공정 자체에 결함이 발견된 것은 아니다.
항서제약이 미국에 판매 중인 다른 제네릭(복제약) 의약품의 원료의약품(API) 생산 시설이 FDA의 정기 cGMP(우수의약품제조품질관리기준) 실사에서 지적을 받아 ‘Form 483(지적사항 통보서)’을 수령한 게 이번 CRL 원인이라는 게 HLB 측 설명이다. HLB에 따르면 FDA는 지난 4월 15일 항서제약의 원료의약품(DS) 시설을, 이달 3일 완제의약품(DP) 시설을 잇달아 불시 점검했다. 리보세라닙-캄렐리주맙 병용요법의 신약 승인을 위한 사전승인실사(PAI)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시설에서 리보세라닙의 원료의약품이 생산될 예정인 것이 문제로 작용했다. FDA는 “해당 제조소의 전반적인 cGMP 기준 준수 여부가 확인될 때까지 리보세라닙의 허가를 내줄 수 없다”며 공장 전체의 품질 관리를 문제 삼아 허가를 보류했다. 리보세라닙과 캄렐리주맙의 문제가 아니라 공장을 같이 쓰는 다른 약의 품질 관리 불량에 따른 ‘나비효과’인 셈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HLB가 파트너사인 항서제약을 사실상 전혀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에 우려를 보낸다. 항서제약은 지난 4월에 DS 실사를 받고 보완 답변까지 제출하는 중이었으며 7월 3일에는 DP 실사 지적을 받았음에도 이 사실을 숨기다가 지난 5일에야 HLB의 미국 신약개발 자회사 엘레바에 뒤늦게 통보했다.
당시 항서제약 측은 “리보세라닙은 아직 상업화된 제품이 아니어서 실사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관련 내용을 공유하지 않았다”고 변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CRL 수령을 포함해 벌써 3번이나 FDA 승인 획득을 실패했음에도 상황이 제대로 공유되지 않은 셈이다. HLB는 항서제약에 현재 승인 지연의 핵심인 FDA의 Form 483 구체적 지적 내용을 공식 요청해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정윤택 제약산업연구원 대표는 “직접적인 생산 시설 문제임에도 파트너사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것은 구조적인 통제권이 부재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며 “이는 단일 기업이 아닌 공동 개발이나 협력 관계를 끌고 가는 데 있어 분명한 한계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큰 교훈”이라고 지적했다.

‘삼성바이오 신화’ 김태한의 호언장담, 3개월 만에 머쓱해진 이유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서 김태한 HLB그룹 바이오총괄 회장의 입장이 난처해지게 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초대 대표로서 무결점 품질 시스템을 일궈냈던 김 회장은 HLB의 품질 리스크를 해결할 구원투수로 기대를 모으며 올해 초 HLB그룹에 합류했다.
김 회장은 지난 4월 열린 HLB그룹 통합주주간담회에서 리보세라닙-캄렐리주맙의 FDA 승인에 자신감을 피력한 바 있다. 당시 그는 “HLB그룹에 합류한 이후 2~3개월간 FDA와 교신한 자료, 엘레바·항서제약의 자료 등을 모두 검토했다”며 “엘레바 소속 전문가들과 함께 직접 중국 항서제약을 방문해 생산 플랜트 현장을 구석구석 점검하고 FDA 대응 노하우를 공유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상황은 흔히 겪을 수 있는 사례이며 항서제약이 받은 CRL 리뷰는 승인과 보완의 경계선에 있다고 봤다”고 주주들을 안심시켰다.
그런데 세 번째 FDA 승인 도전도 제동이 걸리면서 당시의 호언장담이 3개월 만에 무색해졌다. 물론 HLB가 인지하지 못한 전혀 다른 약물의 cGMP 문제가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결과적으로 글로벌 품질 전문가도 해외 파트너사의 독자적인 돌발 리스크를 제어하는 데는 명확한 한계를 보였기 때문이다.
K-바이오 신뢰 위기로 번지나
코스닥 시가총액 최상위권인 바이오 대장주의 좌절은 시장 전체의 자산 가치와 자본시장 신뢰도에도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날 장이 열리자마자 하한가로 직행한 HLB를 포함해 HLB그룹 계열사 주가는 17% 이상 하락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도 “이번 사안을 리보세라닙이라는 컴파운드(물질) 자체의 결함이나 펀더멘털의 문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면서도 “다만 시장이 이를 오인해 바이오 섹터와 코스닥 시장 전반의 신뢰 위기나 투심 위축으로 번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해외 파트너십을 통해 신약을 개발할 때, 상업화 단계에서의 CMC 리스크와 정보 공유 체계를 계약 조건에 얼마나 철저히 녹여내야 하는지 보여주는 뼈아픈 반면교사”라고 진단했다.
HLB는 품질 리스크에 발목이 잡히긴 했지만 리보세라닙의 신약 가치와 후속 파이프라인 확장세는 견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승규 부회장은 “이번 사태는 중국 파트너사의 CMC 등 제조에 관련된 영역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면서 “HLB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상황을 이야기하며 대응책을 밝혀왔던 만큼 향후 HLB가 내놓을 전략을 차분히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HLB는 오는 9월 담관암 2차 치료제 ‘리라푸그라티닙’의 FDA 승인 결정도 앞두고 있다. 지난 1월 열린 2026 미국임상종양학회 소화기암 심포지엄(ASCO GI)에서 객관적 반응률(ORR) 46.5%, 질병조절률(DCR) 96.5%라는 임상 2상 데이터를 공개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2023년 FDA에서 혁신신약(BTD)으로도 지정됐다. 이 밖에 주요 계열사인 HLB생명과학을 통해 리보세라닙의 추가 적응증(선양낭성암 등) 임상을 진행 중이며 HLB테라퓨틱스 등에서는 신경영양성 각막염 치료제 파이프라인 개발에 속도를 내며 후속 항암제 및 신약 후보물질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주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