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홈플러스의 운명을 가를 시간은 이제 열흘 남짓 남았다. 7월 20일까지 2000억 원의 운영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회생절차 폐지가 확정되고 청산 가능성이 커진다. 지난 3일 법원이 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한 이후 홈플러스 점포의 운영난은 사실상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다. 정치권이 MBK와 메리츠를 상대로 자금 마련 압박에 나섰지만, 시장에서는 회생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파산 갈림길 선 홈플러스…식품코너 메운 의류 재고
8일 수도권에 위치한 홈플러스 매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의류 판매대였다. 채소와 과일 등 신선식품으로 채워져야 할 식품 코너 중앙을 의류 재고가 차지하고 있었다. 신선식품 입고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PB 상품만으로 빈 매대를 채우기 어려워지자, 속옷과 의류 재고 등으로 채워놓은 것이다. 카트를 끌고 매장에 들어선 한 고객은 의류 행거가 빼곡한 식품 코너를 지나치며 “홈플러스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육 코너는 조명이 꺼진 채 운영이 중단된 듯했고, 즉석조리식품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상품 입고가 중단되면서 기존에 판매하던 상품 가격표에는 대부분 ‘매진’ 표시가 붙어 있었다. 직원들은 비어 있는 진열대를 홈플러스 PB 상품으로 채워 넣었다.

매대에 남아 있는 상품도 상당수가 구매할 수 없는 상태였다. 매장 곳곳에는 ‘본 상품은 판매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홈플러스 매장에는 직매입 상품 외에도 위탁 판매 제품이 일부 진열돼 있는데, 최근 납품업체 측에서 판매 중단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매장 직원은 “업체가 판매를 중단해 바코드를 모두 제거했다. 현재 구매할 수 없는 상품이 많다”고 말했다.
외주업체와 입점업체의 이탈도 이어졌다. 홈플러스 입점 식당들이 잇따라 영업을 중단하면서 푸드코트가 문을 닫은 매장도 나왔다. 일부 점포는 직원들이 이용하던 구내식당 외주업체까지 철수하면서 직원 식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홈플러스 직원은 “폐지 결정 후 미화협력업체 계약이 종료되면서 점포 화장실 청소를 직원들이 직접 하고 있다”며 “직원들 사이에서 허탈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 급여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3월 회생절차에 들어간 이후 운영자금 부족으로 2025년 12월부터 급여 지연 지급을 반복해왔다. 회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제때 지급되지 못한 급여 누적액은 총 1410억 원이다. 다만 홈플러스 측은 “6월 말까지 5월분 급여는 모두 지급을 마쳤으며, 현재 미지급 급여는 6월분 332억 원”이라고 밝혔다.

‘메리츠 추가 대출뿐’…정치권 압박 변수될까
3일 서울회생법원은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했다. 홈플러스가 법원이 요구한 2000억 원 규모의 운영자금 조달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수정 회생계획안의 실행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법원은 14일의 즉시항고 기간을 두고, 이 기간에 홈플러스가 운영자금을 확보하면 회생절차를 재개할 수 있도록 했다. 마감 기한은 7월 20일이다. 그 안에 자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홈플러스의 회생절차 폐지가 확정돼 청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홈플러스는 당초 메리츠금융그룹으로부터 2000억 원 규모의 DIP(Debtor In Possession·회생기업이 영업을 계속하기 위해 조달하는 운영자금) 금융을 추가로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메리츠그룹은 MBK파트너스와 김병주 회장의 연대보증을 조건으로 1000억 원까지는 지원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자금 지원에는 선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서는 메리츠그룹의 추가 대출이 홈플러스의 유일한 운영자금 확보 방안이다. 회생절차 폐지 결정 이후에도 홈플러스는 “메리츠금융그룹이 자금 지원을 거절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라며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에 2000억 원의 운영자금 대출을 간청드린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메리츠그룹도 추가 지원에는 신중한 분위기다. 회생절차 폐지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추가 대출을 실행하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정치권도 압박에 나섰다. 9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국회에서 ‘홈플러스 회생을 위한 MBK파트너스-메리츠 경영진 간담회’를 열고 운영자금 마련을 촉구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 조주연 홈플러스 대표, 김중현 메리츠화재 대표가 참석했다.
민병덕 민주당 을지로위원장은 “오는 20일 기한이 만료되고 그때까지 해법을 찾지 못하면 입점업체 등 1만 3000여 명의 노동자, 나아가 홈플러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지역상권까지 10만 명에 이르는 민생이 무너진다”며 홈플러스 사태 해결을 위한 운영자금 마련을 요구했다.
김광일 MBK 부회장은 “을지로위원회에서 자리를 마련해준 만큼 말씀을 잘 듣고 협의하겠다”고 말했고, 조주연 홈플러스 대표도 “저희 회사에는 1만 명 넘는 직원과 협력사 직원 등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을지로위원회 위원님들이 그들을 잊지 말고 계속 지원해달라”고 호소했다. 김중현 메리츠화재 대표는 “실질적 해법이 나왔으면 좋겠다.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급했다.
다만 간담회에서도 구체적인 자금 마련 방안은 도출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비즈한국은 메리츠 측에 간담회 이후 추가 지원 여부를 질의했으나 명확한 답변을 받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전에도 정치권에서 MBK와 메리츠의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며 “이번 간담회도 압박 차원의 성격이 강해 보이지만, 실질적인 합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자금 마련이 막다른 길에 몰리자 홈플러스 노조는 공적 자금 투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지부 관계자는 “김병주 회장의 보증을 통해 2000억 원 가운데 1000억 원은 확보 가능한 상황으로 보고 있다”며 “남은 1000억 원만 마련되면 회생절차를 이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DIP금융은 회생기업에 제공되는 운영자금으로, 청산이 되더라도 최우선 변제 대상인 만큼 국민 혈세가 손실되는 구조는 아니라고 본다”며 “정부와 금융권이 마지막 1000억 원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힘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