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강릉에 자주 간다. 서울 동쪽 끄트머리에 사는지라 강원도를 여행하기 편하고, 엄마의 고향이라 내적 친밀감도 있다. 작년에 이사를 하면서 진지하게 이주를 고민했을 만큼 강릉에 애정이 있다. 게다가 강릉에 가야 할 이유는 끊임없이 생긴다.
멋진 미술관이 생기고, 소비욕 자극하는 소품샵이 늘어나고, 좋아하는 작가가 서점을 차리고, 게다가 맛있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연간 방문객 3500만 관광도시의 위엄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번에 강릉을 찾은 이유는 단순했다. 지난 6월 15일부터 22일까지 열린 강릉단오제. 강릉단오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대한민국 대표 전통 축제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이름이 나 있다. 물론 단오제 보러 강릉 가자니까 “창포로 머리 감게?” 하는 놀림이 뒤따르긴 했지만, 어찌어찌 친구를 꼬셔 강릉으로 향하는데 성공.
먼저 남대천 행사장을 찾아 ‘단오체험촌’에서 신주와 수리취떡부터 맛봤다. 강릉시민들이 정성껏 모은 쌀로 만든 신주와 수리취떡은 누구나 무료로 맛볼 수 있었는데, 바글바글 줄 선 사람들의 손에 봉사자들이 착착 떡을 쥐어주고, 또 다른 줄로 이동하면 신주와 함께 새우깡 몇 조각을 쥐어준다. 그 손놀림이 어찌나 정겨운지.

단오제단에서 열리는 단오굿도 놓칠 수 없다. 이날 진행된 굿은 사방의 천왕문을 열어 신들을 맞이하는 굿인 문굿(門굿)과 굿당에 청배한 여러 신들을 제단에 좌정하는 굿인 청좌굿(請座굿). 단오굿 예능보유자인 빈순애 님을 좌시로, 태평소와 꽹과리 연주와 함께 무녀들과 남자 악사들이 쌍을 이뤄 춤사위를 펼치는 장관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올해 모든 일들에 액운이 깃들지 않고 술술 풀리기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더해지며 실시간으로 뜨거워지는 굿판의 무리가 되는 재미가 쏠쏠. 올해 강릉단오제를 110만 명이 찾았다고 하던데, 그 에너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강릉에 온 만큼 바다를 찾는 건 예의다. 강릉의 해변은 어디든 각자의 분위기가 있는데, 고민의 여지없이 주문진으로 향한 이유 또한 단순했다. 드라마 ‘도깨비’ 10주년을 기념한 추억 소환 여행 예능 방영 소식이 들렸거든.
공유, 김고은, 이동욱, 유인나 네 명의 주인공들이 구글맵에도 명시될 만큼 명소가 된 주문진방사제를 찾았다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날 역시 1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도깨비’의 여운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인증샷을 남기고자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다만 굳이 사진까지 남길 필요가 없다면, 방사제와 함께 탁 트인 바다를 통창으로 감상할 수 있는 ‘순두부젤라또 3호점’을 비롯한 인근 카페에서 ‘바다멍’ 하는 게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물론 주문진 외에도 좋은 해변은 강릉에 차고 넘친다. BTS 팬이라면 주문진방사제에서 차로 4km 남짓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오는 향호해변의 ‘BTS 버스 정류장’에서 인증샷 좀 찍어야 할 테고, 알록달록한 색감의 테트라포트로 유명한 사근진해변도 요즘 친구들이 많이 찾는 해변.
강릉 아래쪽에 위치한 조용한 감성의 등명해변과 여전히 ‘모래시계’로 유명한 정동진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오는 8월 7~9일경 강릉을 찾을 계획이 있다면, 28회 정동진독립영화제가 열리는 정동진을 추천!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모기향 맡으며 밤늦도록 독립영화를 감상하는 시간이 강렬한 추억이 될 것임을, 3회 참석자로 장담한다. 낮에는 정동진에 위치한 영화서점 ‘이스트씨네’도 필히 들러 보자.

바다 외에 독특한 미와 명상을 원한다면 경포호 주변에 있는 인월사도 있다. 2023년 강릉 산불로 전소됐던 곳을 현대식 건물로 재건했는데, 지난 3월 세계건축상을 수상하면서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자주 등장하는 유명한 법당으로 등극했다. 색색으로 채워진 벽(인드라월)과 호수를 연상케 하는 작은 연못의 외관부터 이곳이 절인지 미술관인지 헷갈릴 정도인데, 하이라이트는 법당 안의 명상실이다.
짧게는 수분에서 길게는 30분가량 머물며 혼자만의 명상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명상이라고 딱히 어려울 건 없다. 위빠사나 명상 방법이 적힌 안내문을 따라해도 되고, 그냥 정좌한 채 가만히 눈 감고 호흡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평온해질 테니. 아, 그리고 법당에서 수제 커피식혜와 작약식혜 등 음료를 판매하는데, 커피식혜는 꼭 한 번 맛보길.

미식의 즐거움 또한 강릉 여행에서 뺄 수 없는 요소다. 형제칼국수의 장칼국수로 시작해 바삭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재미난 강릉길감자의 컵 길감자, 술안주로 딱인 강릉중앙시장의 누룽지오징어순대, 오후엔 매진돼 살 수 없다는 교동빵집의 데니시 식빵을 비롯해 강릉의 이름난 빵들, 그리고 강릉의 대표 수제맥주 양조장 겸 레스토랑인 버드나무 브루어리의 맥주와 피자 등등.

커피의 도시로 불리는 강릉에서 커피를 즐기고 싶다면 안목해변의 카페거리나 테라로사, 보헤미안 박이추커피 등 여러 선택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강릉의 원도심이었던 명주동을 권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촬영지로도 등장한 봉봉방앗간을 비롯해 명주배롱, 그늘집 강릉, 오월커피, 카페 오뉴월 등 분위기 좋은 카페가 여럿 들어선 골목을 여유롭게 천천히 걷는 즐거움이 크다.
여름이면 봉봉방앗간 바로 옆 능소화 명소로 유명한 파란대문집 벤치에 앉아 사진 한 장 남기고, 명주배롱 앞에 활짝 핀 백일홍을 즐길 수 있어 운치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