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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은 신약개발 성과 내는데…” K-바이오데이터 활용 막는 ‘장벽’은?

글로벌 바이오 데이터 패권 경쟁 본격화…생명윤리법 등 규제 '엄격', 상업화 시 사용료는 '애매모호'

[비즈한국]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의 패러다임이 데이터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방대한 유전체 및 임상 데이터는 AI(인공지능)와 결합해 신약 개발의 성공률을 높이고 기간을 단축하는 핵심 열쇠로 꼽히고 있다. 한국도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BIKO) 구축사업을 통해 100만 명 규모의 데이터 댐 건설에 돌입한 이유다. 하지만 산업계 일각에서는 이 데이터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될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부재해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영국 ‘UK 바이오뱅크’, 미국 ‘올 오브 어스’, 일본 ‘전 게놈 해석 실행계획’ 등 선진국은 발빠르게 바이오 빅데이터를 구축해 산업적으로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사진=영국 바이오뱅크 홈페이지 캡처

선진국은 ‘데이터 골드러시’…글로벌 빅파마의 강력한 무기

해외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대규모 바이오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이를 산업적으로 활용하며 가시적인 성과도 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2006년 출범한 영국의 ‘UK 바이오뱅크(UK Biobank)’다. 영국 전역에서 약 50만 명의 유전체 및 건강 데이터를 수집한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데이터를 개방해 거대한 연구 생태계를 조성했다.

특히 영국은 이 데이터를 철저하게 산업적 성과로 연결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암젠, 존슨앤드존슨 등 4개 글로벌 빅파마는 UK 바이오뱅크의 전장 유전체 분석(WGS) 프로젝트에 총 1억 파운드(약 1700억 원)를 공동 투자하고 데이터 분석에 직접 뛰어들었다.

실제로 아스트라제네카는 UK 바이오뱅크의 방대한 데이터를 자체 AI 플랫폼으로 분석해, 특정 유전자(IGHE) 결손이 천식과 알레르기 질환을 자연적으로 예방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모방하는 새로운 치료제 타깃을 도출했다.

나아가 유전체 빅데이터에서 발굴한 표적을 실제 신약 파이프라인에 적용해 임상시험 단계에도 진입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HSD17B13’이라는 특정 유전자의 기능이 상실될 경우 오히려 간 질환 발병 위험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이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는 표적 치료제 ‘AZD7503’을 개발 중이다. 현재 난치성 질환인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 환자를 대상으로 글로벌 임상 1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 밖에 체중 증가를 억제하는 유전자 ‘GPR75’의 희귀 변이를 찾아내 이를 표적으로 하는 차세대 비만 신약 공동 개발에도 착수했다.

미국 역시 2018년부터 국립보건원(NIH) 주도로 100만 명 등록을 목표로 하는 ‘올 오브 어스(All of Us)’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기존 유전학 연구의 90% 이상이 유럽계 백인에 치중돼 다른 인종을 대상으로 한 신약 개발에 한계가 컸던 점을 극복하기 위해 참여자의 약 80%를 유색인종과 저소득층 등으로 채워 데이터 다양성을 확보한 것이 특징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백인 위주 데이터에서 찾은 질병 유전자가 다른 인종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하는지 교차 검증하는 데 올 오브 어스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비만 등 대사 질환 신약을 개발하는 미국의 메이즈 테라퓨틱스는 신약 타깃의 유효성을 검증하고 실패 위험을 낮추기 위해 올 오브 어스의 방대한 데이터를 AI 플랫폼에 연동하고 있다.

수집된 인체유래물과 전자건강기록(EHR)을 클라우드 플랫폼에 올려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개방한 것은 이 프로젝트의 핵심 경쟁력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올 2월 전 세계 1만 명 이상의 연구자가 이 개방형 데이터를 통해 약 2억 7500만 개의 새로운 유전 변이를 발견하는 성과를 거뒀다.

일본도 후생노동성 주도로 10만 명 규모의 유전체 데이터 수집 프로젝트인 ‘전 게놈 해석 실행계획’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영국과 미국이 일반인 위주로 시작했다면 일본은 암과 난치병 환자에 집중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 병원 검사로는 원인을 찾을 수 없던 난치성 암 환자들의 유전체를 분석해 숨겨진 돌연변이를 찾아내 이를 환자 맞춤형 신약 임상시험과 연계하고 있다. 다이이치산쿄, 다케다제약 등 일본 제약사들은 고도화된 암·난치병 유전체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ADC(항체-약물 접합체)나 차세대 표적 항암제의 새로운 타깃 발굴에 공들이고 있다.

서울역 광고판에 안내 중인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 공지문. 사진=최영찬 기자

원격 분석망 깔았지만…생명윤리법 등 ‘규제 장벽’이 산

해외와 달리 국내 상황은 이제 첫발을 떼는 단계다. 현재 100만 명 규모의 데이터 구축을 목표로 추진 중인 BIKO 사업단은 최근 17만 명분의 데이터를 확보했다. 사업단은 이 데이터를 오는 10월부터 연구기관 및 기업의 신청을 받아 분양할 계획이다.

정부는 단순 데이터 제공을 넘어 가상 데스크톱(VDI)을 통한 원격 분석 환경과 컴퓨팅 자원을 무상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심의를 통과한 기업이나 연구자는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라면 어디서든 시스템에 원격으로 접속해 신약 개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과거 질병관리청 보건의료연구자원정보센터(CODA) 등에 구축된 공공 데이터를 분석하려면 연구자가 오송 국립중앙인체자원은행에 직접 방문해야만 하는 물리적 제약이 있었는데 이번 사업을 통해 접근성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된 셈이다.

하지만 진짜 장벽은 엄격한 국내 개인정보 및 생명윤리 규제에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BIKO 사업단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인 염민선 나무아이씨티 부사장(CTO)은 “연구 환경과 표준화된 고품질의 데이터를 제공하지만 민감 데이터 보호 의무를 충족하기 위해 VDI를 통해서만 접속해야 하는 제약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향후 방대한 유전체 데이터를 학습시키려면 막대한 컴퓨팅 파워가 필요해지는데 이에 맞춰 서버를 늘릴 수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염 부사장은 “사업 기획 초기 사업단 내부에 구축하는 인프라가 부족할 경우 민간 클라우드를 연동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검토했지만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생명윤리법)과 개인정보보호법에 막혀 무산됐다”며 “향후 데이터가 축적되고 수요가 많아지면 관련 법을 고치거나 추가 예산을 확보해 인프라를 확장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의료기관 26곳에서 건강검진을 받는 수검자들을 대상으로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이 진행 중이다. 중앙대병원에 마련된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 참여자를 위한 전용 상담공간. 사진=최영찬 기자

수익 공유 룰 부재…기업 투자 이끌 민관협력 모델 절실

가장 시급한 것은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수익 및 활용 모델의 구체화다. 영국의 UK 바이오뱅크는 아스트라제네카 등 4개 빅파마로부터 1억 파운드를 투자받고 이들에게 9개월간의 독점적 우선 사용권을 부여했다.

하지만 한국은 철저한 국가 주도형 모델로 기획돼 이 같은 파격적인 혜택을 주거나 막대한 민간 자본을 유치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기업의 참여가 자칫 그들에 대한 특혜 시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탓에 기획 단계부터 기업의 참여를 최소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면서 이번 BIKO 사업으로 구축한 데이터를 활용해 상업화에 성공할 경우 향후 과도한 수익 환수를 요구받을 수 있다는 막연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익 공유의 불확실성이 데이터 활용을 망설이게 하는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UK 바이오뱅크는 신약 상업화에 따른 러닝 로열티를 요구하지 않는다. 기업 규모나 연구 성격에 따라 최대 수천만 원 수준의 데이터 열람 수수료를 차등 부과할 뿐, 상업적 성과는 온전히 기업의 몫으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올 오브 어스도 데이터를 활용한 상업화 이익을 정부가 비율로 환수하는 규정은 두지 않았다.

반면 국내는 사정이 다르다. 기업이 얼마에 국책 데이터를 분양받을지, 이 데이터를 활용해 상업적 이윤을 창출했을 때 정부가 그 이익을 얼마나 공유할지 명확히 성문화된 가이드라인이 아직 없다.

이에 대해 염 부사장은 “BIKO를 포함한 국가 R&D 사업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기에 궁극적 혜택은 국민에게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공적 영역(연구소, 대학 등)에 계신 연구자분들의 성과는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연구개발 경쟁력 강화로, 기업의 성과는 국가 경제 발전으로 국민에게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영국은 우선적 독점 사용을 전제로 기업들이 자금을 투입했지만 우리나라는 정부가 직접 데이터를 구축해 진행하는 상황”이라며 “국가 R&D 인프라로서 데이터 분양 및 활용에 대한 과금 체계는 향후 논의가 필요하며 향후 국내 기업들의 투자 유치를 통해 민관협력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는 방안에 대해 긍정적인 검토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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