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조건부 자율협약 개시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지만 유동성 확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을 요구하고 있다. 조 회장 측에서는 더 이상의 사재출연은 없다는 입장이면서도, 한진해운의 위기 상황에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자신에게 쏠릴까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한진해운은 지난 5월 4일 산업은행 등으로 구성된 채권단 회의를 통해 조건부 자율협약에 들어갔다. 당시 한진해운은 대주주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포기 각서와 함께 4100억 원 규모의 단기 유동성 확보를 위한 자구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채권단에서는 자구안으로 내놓은 유동성 외에 6000억 원가량을 더 투입해 총 1조 원가량의 지원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2년 동안 1조 2000억 원의 운영자금이 부족할 것으로 판단한 것.
문제는 한진해운 내부에서 상표권과 해외부동산 등 자산 매각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유동성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점이다. 이미 채권단에서는 신규 자금지원은 없다는 방침을 세웠다.
결국 모든 이목은 조 회장의 사재출연으로 쏠리고 있다. 자구안 제출 당시에도 조 회장의 사재출연 여부가 관심사였지만, 사재출연은 자구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채권단에서도 조 회장의 사재출연은 특별히 요청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2년 전 부실해진 한진해운을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에게 넘겨받은 ‘구원투수’인 데다, 이후 대한항공003490 등 그룹 계열사를 통해 1조 원 상당을 쏟아 부은 노력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현재로서는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조 회장의 사재출연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6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CEO 조찬 간담회’에서 “한진그룹과 채권단이 한진해운 지원에 대해 잘 얘기할 것”이라며 “기업의 적극적인 구조조정 의지가 중요하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어떤 금융 지원과 제도적 지원으로도 기업을 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임 위원장의 발언은 한진그룹에 대한 압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 회장은 여전히 사재출연이나 그룹 차원의 지원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 사재출연 여부는 아직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다. 더 이상의 자금 지원은 조 회장이나 한진그룹에도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 역시 올해 1분기 기준 부채비율이 이미 931%에 달할 정도로 재무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조 회장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유동성 확보에 실패해 법정관리 등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되면 모든 비난의 화살은 자율협약 당시 대표이사였던 조 회장에게 쏟아질 것이 분명하다”며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조 회장 입장에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일 것”이라고 전했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있다. 한진해운을 처음부터 맡아서 경영하다 경영 상황을 나쁘게 만들었으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미 어려워진 회사를 한번 살려보겠다고 ‘구원투수’로 넘겨받아 급여도 안 받고 노력했다”며 “그런데 이제 와서 사재출연이나 오너의 책임을 요구하니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