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 BIZ.HANKOOK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아젠다

[사이언스] '미지의 우주선' 아마테라스 입자의 정체

텅 빈 우주 공간에서 날아온 초고에너지 입자, 암흑물질 때문에 생겨났다?

2024.02.05(Mon) 14:53:16

[비즈한국] 최근 독자들에게서 이런 문의를 많이 받는다. 존재할 수 없는, 강력한 입자라고 하는 아마테라스 입자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그에 대해 과학자들이 들려줄 만한 좋은 이야기가 없다. 입자를 발견만 했을 뿐 정확히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도 궁금해하는 독자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했다. 아마테라스 입자를 발견하고 연구한 연구자들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정리한 따끈따끈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지금도 하늘에서는 온갖 우주선(線) 입자가 쏟아진다. 태양에서 날아오는 것도 상당히 많지만, 태양계 너머 우리 은하 공간 또는 훨씬 먼 다른 외부 은하에서 날아오는 우주선들도 섞여 있다. 

 

사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우주선이 단순히 태양에서 날아오는 입자일 거라 생각했다. 물리학자 빅토르 헤스는 이를 검증하기 위해 부분일식이 일어나는 날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태양이 달에 가려지는 동안 방사선 수치가 떨어지는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태양이 가려지든 안 가려지든 상관없이 방사선 양은 비슷했다. 이를 통해 헤스는 태양에서만 날아올 거라 생각했던 우주선의 정체가 태양계 바깥 먼 우주에서 날아오는 입자임을 알아냈다. 이 발견으로 그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보통 지구에 쏟아지는 우주선 입자의 에너지는 수 GeV(기가일렉트론볼트) 수준이다. 이 정도 규모의 우주선 입자는 우리 은하 안에서 폭발한 초신성이나 멀리서 활동 중인 초거대 질량 블랙홀의 제트 등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데 아주 가끔 이런 일반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 강력한 우주선 입자가 쏟아질 때가 있다. 물리학자들은 이를 초고에너지 우주선(Ultra-high-energy cosmic ray, UHECR)이라고 부른다. 무려 수 EeV(엑사 일렉트론볼트), 즉 10의 18제곱 이상의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 

 

다양한 곳에서 강한 에너지의 우주선 입자가 생성된다. 고에너지 우주선 입자들이 지구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남긴 흔적을 관측할 수 있다. 사진=A. Chantelauze/S. Staffi/L. Bret/Pierre Auger Observatory


실제로 1991년 10월에 역대 가장 강력한 우주선 입자가 포착된 적이 있다. 미국 유타주에 위치한 관측소에서 320EeV 스케일을 넘는 어마어마한 세기의 우주선 입자가 포착되었다. 원자핵 하나가 거의 빛의 속도에 가깝게 날아왔다는 뜻이다. 이 정도 에너지면 시속 100km로 날아가는 야구공과 맞먹는 수준이다.

 

생각해보라. 기껏해야 양성자 몇 개로 모여 있는 원자핵이 훨씬 거대한 야구공과 맞먹는 에너지로 날아왔다! 이것은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입자가속기로 가장 빠르게 가속할 수 있는 양성자의 에너지보다 4000만 배나 더 강하다.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입자보다 4000만 배나 강하다니…. 이 정도로 강한 에너지까지 입자를 가속하려면 수성 궤도만큼 거대한 입자가속기가 필요하다. 이 말도 안 되는 초고에너지 우주선에게는 ‘오마이갓 입자’라는 재밌는 별명이 붙었다. 

 

2021년 유타주의 관측소로 또 다른 초고에너지 입자가 날아왔다. 2년에 걸쳐 계산과 검증이 이어졌다. 그리하여 올해 이 우주선 입자가 무려 240EeV 수준의 에너지를 가졌다는 최종 결과가 발표되었다. 앞서 관측된 오마이갓 입자에는 살짝 못 미치지만 그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가장 강력한 초고에너지 우주선 입자다. 이 입자에는 일본의 신화에 등장하는 ‘아마테라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강력한 초고에너지 우주선 입자는 대체 어디에서 날아온 걸까? 얼마나 먼 거리를 날아온 걸까? 이번 관측에서는 우주선 입자가 지구 대기권을 통과하며 쏟아낸 다양한 입자들의 관측을 통해 우주선 입자가 어느 방향에서 날아왔는지를 유추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날아온 초고에너지 우주선 입자 대부분은 크게 두 방향에서 날아왔다. 한 곳은 우리 은하 중심부 방향이고, 다른 한 곳은 거대한 은하 M87이 있는 방향이다. 둘 모두 중심에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있는 방향이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초고에너지 우주선 입자 대부분이 강력한 블랙홀 활동에서 만들어졌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포착된 아마테라스 입자는 많이 이상하다. 입자가 날아온 방향을 추적해보면 은하가 하나도 없는 텅 빈 로컬 보이드를 향하기 때문이다. 블랙홀도, 초신성도, 그 무엇도 없는 거대하게 텅 빈 우주의 공허에서 강력한 초고에너지 입자가 갑자기 날아온 것이다. 

 

아마테라스 입자가 날아온 것으로 의심되는 방향에는 별다른 천체가 없는 보이드뿐이다.


혹시 로컬 보이드 너머 훨씬 먼 거리의 퀘이사 같은 천체에서 날아온 입자는 아닐까? 물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확률은 높지 않다. 우주 전역에서는 빅뱅 직후 쏟아진 태초의 빛, 우주배경복사의 광자가 날아다니고 있다. 그래서 먼 우주에서 날아오는 모든 입자들은 반드시 우주배경복사의 광자와 언젠간 부딪히고 산란되며 에너지를 잃어야 한다. 우주배경복사 광자를 요리조리 모두 피하면서 일체 산란을 겪지 않고 지구로 날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주배경복사의 에너지를 고려했을 때, 초고에너지 입자가 우주배경복사의 광자와 부딪히지 않고 가장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는 한계는 대략 1억 6000만 광년 거리까지다. 초고에너지 우주선 입자들이 그 이상의 먼 거리에서 날아왔을 거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 한계를 GZK 한계(Greisen–Zatsepin–Kuzmin Limit)라고 한다. 즉 그리 멀지 않은 로컬 보이드의 공허 한복판에서 날아온 입자라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곳에서 가장 강력한 입자가 날아왔다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라니, 정말 당황스러운 결론이다. 

 

원래는 다른 방향의 천체에서 날아오다가 은하 간 공간의 자기장에 영향을 받아 입자의 방향이 틀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강력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면 은하 간 자기장의 영향을 크게 받지는 않는다. 너무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즉 원래의 방향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그대로 날아왔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렇다면 대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곳에서 어떻게 이런 강력한 입자가 날아올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연구진은 아주 흥미로운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암흑 물질 입자의 쌍소멸이다. 암흑 물질 역시 여전히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들도 물질과 반물질의 개념이 있을 거라 추정된다. 그렇다면 암흑 물질의 입자와 반입자가 서로 충돌하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남기고 사라지는 쌍소멸이 가능하다! 어쩌면 그동안 포착한 미지의 초고에너지 우주선 입자는 암흑 물질 입자의 쌍소멸에서 튀어나온 에너지였을 수도 있다. 초고에너지 우주선 입자라는 미지의 정체가 암흑 물질이라는 또 다른 미지의 존재일지도 모른다니, 굉장히 흥미로운 주장이다.

 

물론 지금으로선 초고에너지 우주선 입자의 정확한 기원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초고에너지 입자를 아직 충분히 포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연히 포착된 몇 개 안되는 입자들의 관측 결과만으로는 통계적인 분석을 하기가 어렵다. 지금까지 포착된 모든 초고에너지 입자가 다 하나의 기원에서 날아온 것인지, 아니면 각 입자가 전혀 상관없는 별개의 기원을 갖고 있는지조차 말할 수 없다. 우주는 어둡고 흐릿하게 자신의 비밀을 감추지만, 때로는 너무 밝고 강력해서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참고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bo5095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the-second-most-powerful-cosmic-ray-in-history-came-from-nowhere/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사이언스] 풀리기는커녕 더 꼬여버린 '허블 텐션' 미스터리
· [사이언스] '브레이크스루 리슨'마저…외계문명은 정말 없는 걸까
· [사이언스] '노잼 행성' 수성을 탐사하는 이유
· [사이언스] '역대급' 갈색왜성의 발견, 목성과 무슨 관계?
· [사이언스] 블랙홀은 존재한다, 고로 회전한다?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