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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노잼 행성' 수성을 탐사하는 이유

목성의 위성이었을 가능성…탐사선 '베피콜롬보' 2025년부터 표면과 성분, 대기권·자기장 분포 등 관측

2024.01.16(Tue) 11:00:18

[비즈한국] 흔히 대전을 보고 딱히 놀 거리가 없는 ‘노잼 도시’라고 부른다. (물론 나는 과학의 도시, 대전을 좋아한다.) 그런데 태양계 행성 중에도 유독 천문학자들과 우주 팬들의 관심을 별로 받지 못하는 노잼 행성이 하나 있다. 바로 태양계 첫 번째 행성 수성이다. 잿빛의 거친 표면은 지구 곁을 맴도는 달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름다운 구름도, 생명의 흔적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냥 거대한 돌멩이처럼 보이는 수성은 정말 재미없어 보인다. 실제로 그동안 수성에서는 그다지 많은 탐사가 진행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난 2018년 천문학자들은 아무도 모르게 이 노잼 행성을 향해 새로운 탐사선을 보냈다. 2025년부터 수성 곁에 머무르며 본격적인 탐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 탐사선은 2023년 7월 세 번째로 수성 곁을 지나가며 수성의 중력을 활용해 궤도를 트는 수성 플라이바이를 했다. 수성 표면에서 겨우 230km 떨어진 채 지나는 과정에서 탐사선은 수성 표면의 아주 세밀한 모습을 관측했다. 수성 탐사선 베피콜롬보의 이야기다. 그저 노잼 행성인 줄 알았던 수성에 왜 새로운 탐사선을 보낸 걸까? 노잼 행성 수성의 반전 매력을 소개한다. 

 

태양계는 시시하지 않다. 태양계도 빅뱅 우주론만큼 재밌는 비밀을 품고 있다.

 

흔히 사람들은 수성과 달이 굉장히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 둘 모두 크기가 작고 표면이 잿빛이다. 또 대기가 없다 보니 쏟아지는 운석을 피할 길이 없어 표면 곳곳에 크기가 다양한 크레이터가 남아 있다. 하지만 수성과 달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달 표면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아주 많다. 실제로 아폴로 미션 당시 우주인들이 서 있던 지역 곳곳에서도 거대한 바위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수성 표면에서는 이런 큰 바위가 거의 없다.

 

앞서 천문학자들은 수성 곁을 맴돈 메신저 탐사선의 사진 3000장을 통해 수성 표면의 지도를 완성했다. 그런데 아무리 지도를 확인해도 이렇다 할 거대한 바위가 보이지 않았다. 메신저 탐사선의 해상도는 달 탐사선에 비해 조금 떨어진다. 천문학자들은 공평하게 비교하기 위해 일부러 달 표면 지도의 사진 해상도를 수성 지도만큼 떨어뜨린 다음 다시 바위의 개수를 비교했다. 여전히 수성 지도에서 보이는 바위가 훨씬 더 적었다. 평균적으로 달에 비해 약 30배나 적었다. 대체 어떤 차이가 수성 표면의 바위를 깔끔하게 사라지게 했을까? 

 

우선 한 가지 가능성은 수성이 태양에 훨씬 바짝 붙어 있어 태양 중력에 이끌려 날아오는 운석이 훨씬 빨라서다. 지구 옆 달에 떨어지는 운석은 그렇게 빠르지 않다. 그래서 크레이터만 남길 뿐 달 표면에 있는 바위까지 산산조각 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수성은 다르다. 워낙 태양에 바짝 붙어 있다 보니 태양 중력에 이끌려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운석에 노출된다. 빠르게 날아오는 운석들은 수성 표면에 있는 바위까지 깔끔하게 날려버릴 수 있다. 

 

태양에 더 가까운 탓에 수성 표면의 낮과 밤의 온도 차이도 더 극심하다. 물론 달도 대기권이 없기 때문에 일교차가 크지만 수성에 비하면 훨씬 덜하다. 암석이 뜨거운 태양 빛을 받다가 다시 태양 빛을 등지기를 반복하게 되면 주기적으로 온도가 변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로 인해 서서히 암석이 파괴될 수 있다. 보통 달 표면에서는 암석들이 수억 년 정도 버틸 수 있지만 수성 표면에서는 고작 수십만~수백만 년 안에 파괴된다. 이런 이유로 수성 표면에서는 달과 달리 커다란 바위를 찾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수성 표면에는 달에선 볼 수 없는 기다란 균열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크레이터 사이를 가르고 지나가는 수많은 균열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운석으로 만들어진 크레이터가 생기고 나서 그 이후에 균열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꽤 최근까지도 수성 표면이 계속 갈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수성이 처음 형성된 이후 지금까지 계속 꾸준하게 온도가 식어가면서 행성 전체가 수축하고 쪼그라들고 있기 때문에 생긴 균열이다. 

 

수성 표면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긴 균열의 흔적들.


수성은 아주 작다. 하지만 그 내부에 있는 핵은 굉장히 크다. 보통 지구의 핵은 지구 전체 부피에 비해 17% 밖에 안 된다. 그런데 수성은 작은 체구치고는 아주 큰 핵을 갖고 있다. 핵이 차지하는 비중이 수성 전체 부피의 약 45%에 달한다. 사실상 전체 부피의 거의 절반이 핵이다. 

 

덩치에 맞지 않는 큰 핵을 갖게 된 것은 오래전 수성이 격렬한 충돌을 겪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원래 수성은 지구보다 훨씬 거대한 핵을 가진 더 거대한 암석 행성이었다. 그런데 태양계 형성 초기에 격렬한 충돌을 겪었고 표면의 지각 상당 부분이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버렸다. 그 결과 내부의 핵만 얇은 지각으로 덮인 채 남게 되었다고 추정한다. 사실 수성은 더 컸다! 어쩌면 지구보다 더 컸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껍질이 벗겨진 채로 우주 공간에 남게 된 수성은 서서히 열기를 빼앗기며 식기 시작했다. 행성 전체가 빠르게 식으면서 행성은 쪼그라들었다. 약 40억 년 전 수성이 처음 형성되었을 때에 비해 평균 7km 깊이로 행성이 작아졌다. 지금도 수성은 꾸준히 수축하면서 표면 곳곳에서 크고 작은 지진이 벌어진다. 따라서 연이은 수성 탐사는 수성의 지속적인 변화를 모니터링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앞서 수성을 탐사한 매리너와 메신저에 뒤이은 베피콜롬보 탐사를 통해 지난 십 수년 사이 또 다른 균열이 수성 표면에 추가되지는 않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최근의 메신저 탐사에 따르면 수성 표면이 계속 수축하는 것은 수성 표면에 휘발성 기체 성분이 많이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물을 비롯한 휘발성 기체 성분이 거의 남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에 강렬한 태양풍을 그대로 받아 대부분이 암석 바깥으로 날아가버렸다. 하지만 일부 수성 표면 지역에서는 아직도 휘발성 성분의 존재가 확인된다. 이런 성분이 꾸준히 암석 바깥으로 날아가면서 수성의 수축이 더 가속된 것으로 보인다. 

 

수성에서 상당량의 휘발성분이 계속 불려 나가는 모습은 지금도 관측할 수 있다. 지구에서도 볼 수 있다. 오랜 시간 노출을 해서 망원경으로 수성 주변을 관측하면 수성 뒤로 길게 나트륨과 수소 기체로 이루어진 꼬리가 그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긴 꼬리를 그리는 혜성처럼 보인다. 사진=Steven Bellavia


그런데 이 흥미로운 발견은 지금의 수성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수성이 태양계 가장 안쪽 가장 뜨거운 곳에서 탄생했다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휘발성분은 거의 남지 않은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메신저 탐사를 보면 수성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휘발성분을 머금고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흥미로운 가능성을 암시한다. 수성이 실은 태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탄생했다가 모종의 이유로 지금 자리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사실 수성은 외형만 보면 목성 곁을 맴도는 가니메데 같은 위성과 꽤 비슷하다. 그래서 일부 천문학자들은 수성이 오래전 목성이나 토성 곁을 맴돌던 작은 위성이었으나 그 곁을 벗어나면서 태양에 붙잡혀 작은 행성으로 남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다. 원래는 물과 얼음 등 휘발성분을 많이 머금고 있었지만 강렬한 태양풍을 받으면서 모두 날아갔고 그래서 행성 전체가 꾸준히 수축하는 과정을 겪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어쩌면 수성은 목성의 잃어버린 위성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수성 곁을 플라이바이하는 베피콜롬보 탐사선. 사진=ESA


앞으로 베피콜롬보는 몇 번의 수성 플라이바이를 시도한 이후 2025년 12월 본격적으로 수성 중력에 붙잡혀 그 곁의 궤도를 돌기 시작할 것이다. 탐사는 약 3년간 이어간 뒤 2028년 수성 표면으로 추락하면서 전체 미션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수성 표면의 지도뿐 아니라 그 아래에 분포하는 성분, 수성 주변 옅은 대기권과 자기장의 분포까지 더 세밀하게 탐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노잼 행성이라고만 생각한 수성에서 꿀잼 포인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베피콜롬보의 탐사를 통해 수성은 천문학자들과 우주 팬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3-39565-4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1211681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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