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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전쟁] '지하철역에서 10분'과 '지하철역에서 1km'의 차이

커피 용량 논란 등 정확함이 분쟁 부르기도…때론 모호함이 시장 신뢰도 높여

2018.12.12(Wed) 09:44:57

[비즈한국]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 혹은 ‘걸어서 10분 거리’라는 표현은 주로 아파트 분양광고 등에서 쓰인다. 이 두 말을 들었을 때 어떠한 느낌이 드는가? 둘 다 기준점이 되는 지하철역에서 매우 가깝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거리로 환산한다면 어떨까? 

 

사람마다 걷는 속도가 다르나 일반적으로 시속 4km 정도로 걷는다. 물론 이건 느긋하게 걷는다고 가정할 때다. 트레드밀에 올라가 걸어본 사람이라면 4km가 얼마나 느린 속도인지를 알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시속 6km에 가깝게 걷는다. 1분당 66~100m를 걷는 셈이다. 그렇다면 걸어서 5분 거리는 500m, 걸어서 10분 거리는 1km로 바꿀 수 있다. ‘5분 거리’라는 표현은 매우 가깝게 느껴지지만 ‘500m’로 바꾸면 그다지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더구나 ‘10분 거리’는 ‘1km’다. 그나마 가까워 보였던 거리가 단위가 1km가 되는 순간 어마어마하게 멀게 느껴진다.

 

‘지하철역에서 10분 거리’라는 표현을 ‘지하철역에서 1km’라고 바꾸면 더 멀게 느껴진다. 어떤 단위를 쓰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체감이 달라진다. 사진은 아파트 모델하우스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최준필 기자

 

다시 돌아와서 만약 아파트 분양광고에서 ‘지하철역까지 500m 거리!’, ‘지하철역까지 1km 거리!’라는 문구를 보았다고 치자. 500m 거리라면 아주 가깝진 않아도 그래도 가깝다고 느낄 만하지만 1km라는 숫자를 보면 당신은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 ‘매일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2km를 걸어야 한다니!’ 갑자기 거리가 갖는 그 무게감을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걷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1km가 생각보다 먼 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처럼 같은 것을 말할 때도 단위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과 체감은 달라진다.

 

애초에 편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경우는 추상적 기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음료 업계가 대표적이다. 음료는 아예 공장에서 정확한 양으로 포장해서 판매하지 않는 이상 편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용량을 330ml로 표기했다면 사람들은 정확히 330ml가 담겨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제조하는 경우라면 아무래도 편차가 발생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10~15% 정도의 편차는 용인하지만, 이를 소비자에게 일일이 설명하기란 어렵다.

 

‘이 음료는 330ml로 표기된 음료지만 경우에 따라서 실용량에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제대로 납득할 소비자가 얼마나 있을까?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불신이 높아지고, 생산자는 생산자대로 어마어마한 클레임을 받게 되어 양자 간의 거래 비용이 높아진다. 특히나 이 경우 소비자들은 양(+)의 편차는 묵인하지만 음(-)의 편차에서 강력한 클레임을 걸 것이기에 표기 용량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대표적인 것이 2012년에 불었던 커피 프랜차이즈들의 용량 논란이다. 점포에 따라 같은 커피라도 용량이 차이가 난다는 것인데, 이 논리는 그만큼 프랜차이즈들이 양을 속이고 이익을 과하게 취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과는 다른 얘기였다. 애초에 동일한 사이즈의 커피를 주문했다면 거기에 들어가는 에스프레소 샷의 양은 동일하며 물의 양에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커피의 재료 원가에서 핵심은 원두에 있으므로 실제로는 커피의 농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양을 속여 이익을 취한다는 개념은 나올 수가 없다. 실제로 수많은 언론을 통해서 확대 재생산된 논란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음료 업계에서는 대부분 정확한 용량이 아닌 회사의 기준에 따라 정해둔 컵 사이즈를 용량의 기준으로 제공한다. 어느 정도 편차를 용인할 수 있는 모호한 기준으로도 충분한 효력을 발휘하거니와 소비자들의 저항을 누그러뜨리기에도 좋기 때문이다. 용량을 기준으로 했을 경우의 허용오차를 관대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아도 컵 사이즈를 기준으로 할 경우는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공정한 기준이 된다.

 

이것을 역으로 활용했다가 논란이 된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쥬씨다. 쥬씨는 프랜차이즈 사업 초기에 벤티 사이즈 주스를 ‘1L 주스’로 판매했다. 벤티 사이즈, XL 사이즈라는 표현은 앞서 말한 모호함과 관용이 적용되는 기준이다. 그러나 벤티와 XL이란 단어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크기가 와닿지는 않는다. 반면 1L는 모든 사람들이 명확하게 인지하는 사이즈기에 사람들 사이에서 큰 입소문을 탈 수 있었다. 

 

하지만 1L라는 명확한 기준은 공장에서 주스를 생산하지 않는 이상 지킬 수 없는 것이었고, 애초에 컵 사이즈마저 1L에 미달했다. 직접적인 수치로 사람들에게 명확한 이미지를 심어준 것은 매우 효과적이었음에 틀림없지만 실제로 지키지 못할 경우 그 역풍 또한 거셀 수밖에 없다. 쥬씨는 그렇지 못했기에 결국 신뢰에 타격을 입고 말았다.

 

지나친 명확함은 때론 소비자와 생산자 간의 극심한 불신을 불러일으키며 오히려 모호함이 시장의 신뢰도를 높인다는 점은 우리가 분명 깊게 생각해야 할 점이다. 소비자를 속이지 않는 선에서 소비자의 저항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우리는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필자 김영준은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를 졸업 후 기업은행을 다니다 퇴직했다. 2007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서 ‘김바비’란 필명으로 경제블로그를 운영하며 경제와 소비시장, 상권에 대한 통찰력으로 인기를 모았다. 자영업과 골목 상권을 주제로 미래에셋은퇴연구소 등에 외부 기고와 강연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 ‘골목의 전쟁’이 있다.​  

 

필자 김영준은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를 졸업 후 기업은행을 다니다 퇴직했다. 2007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서 ‘김바비’란 필명으로 경제블로그를 운영하며 경제와 소비시장, 상권에 대한 통찰력으로 인기를 모았다. 자영업과 골목 상권을 주제로 미래에셋은퇴연구소 등에 외부 기고와 강연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 ‘골목의 전쟁’이 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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