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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림 탐식다반사] 맛있는 고기를 내일 더 맛있게 먹는 법

말리거나 소금 뿌려 보관하던 보존음식이 풍미 더하는 '샤퀴트리' 문화로 발전

2018.11.14(Wed) 11:22:29

[비즈한국] 고기는 맛있다. 그러니까 원시 인류가 그렇게 악을 쓰며 집단 사냥에 나섰지. 그리고 그 맛있는 고기가 남기 시작하자, 어느 풍족한 문명은 고기를 보존하기로 했다. 말리거나, 소금이나 설탕을 듬뿍 쳐서 수분을 배출했다. 그렇게 하면 부패가 억제되어 안전하게 오래 먹을 수 있고, 우연히 호의적인 미생물만 활동하면 맛까지 좋아져버린다. 이제는 무려 개그맨 이영자 씨의 ‘소떡소떡’ 같은 팝컬처에까지 이르렀지만, 소시지를 위시한 육가공품들은 엄연한 보존음식이다.

 

최근 한국에서 샤퀴트리가 소소한 열풍을 넘어, 한국 음식문화의 일부로 편입될 조짐까지 보인다. ‘샤퀴트리(Charcuterie)’는 프랑스의 육가공품을 넓게 아울러 부르는 말로, 메종조와 소금집, 써스데이 스터핑 등 샤퀴트리 전문점이 저마다 번창 중이고, 한남동의 더 샤퀴테리아 등 새로운 전문점도 등장했다. 극동아시아 변방의 반도국엔 이렇다 할 육가공품이 등장한 적이 없었다. 죄다 해산물이나 푸성귀나 보존해 먹었던 이력이다. 고기가 남은 적이 없으니까, 육포 정도를 제외하면 자체적으로 번성한 육가공, 보존법이 전무했다. 

 

이제 고기가 남는다. ‘비선호 부위’ 같은 배부른 소리가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남은 고기를 더 맛있게 변환해 먹는 방법으로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육가공법을 차용했다. 그게 현재의 샤퀴트리 문화다. 

 

그에 비해 중국은 고기 형편이 좋았던 모양이다. 고유의 육가공, 보존 문화를 갖고 있다. ‘차이니즈 샤퀴트리’라 할 만하다. 홍콩이 속한 광둥 지방에선 나름 선선한 겨울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고기를 말린다. 오리도 말리고 거위도 말리고 닭이나 비둘기도 말리고, 물론 돼지고기도 말린다. 그 중에서도 삼겹살을 즐겨 말린다. 모두 새해를 맞이하는 계절 음식이다. 

 

향신료, 술, 소금에 절여 말린 오리 다리를 밥 지을 때 함께 넣고 찐다. 서늘한 홍콩의 겨울을 덥혀주는 계절 음식이기도 하다. 사진=이해림 제공

 

이게 참 맛있다. 증납압퇴(蒸臘鴨腿), 그러니까 ‘섣달에 쪄서 먹는 오리 다리’가 가장 유명하다. 영어로는 ‘Waxed Duck Leg’로 찾아보면 된다. 향신료, 술, 소금에 절인 오리 다리를 햇볕에 내놔 천천히 말린다. 껍질은 쫀쫀해지고, 살코기는 압축되며, 기름 향은 단단하게 농축된다. 이걸 도처에서 파는데, 그대로 사와서 밥 지을 때 솥 안에 툭 얹어 놓으면 바로 요리 하나가 완성되는 셈이다. 밥이 지어지는 동안에 오리 다리는 증기에 의해 부드럽게 풀어지고, 쌀에는 오리 다리에서 나온 향기롭고 기름진 아로마가 배어든다. 왜 한국은 가금류 다리 하나조차 말려두고 먹지 못했나, 조금 한탄스러워지는 맛이다. 셩완(Sheung Wan)의 문화유산 식당 린훙티하우스에서 아침부터 먹었다. 1926년 문을 연 얌차집으로, 동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카트에 실린 갓 나온 딤섬을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얇고 바삭한 껍질 속에 부드럽고 짭짤한 살코기가 들어 있다. 잉지클럽의 크리스피 솔티드 치킨. 사진=이해림 제공

 

닭으로 대충 비슷한 요리도 있다. 센트럴(Central)의 광둥음식 전문점 잉지클럽(Ying Jee Club)은 꽤나 호화롭고 접객도 무척 훌륭한, 미쉐린(미슐랭) 별 하나를 가진 식당이다. 이곳의 명물 닭 요리는 살짝 말린 것을 황금빛으로 튀겨 껍질이 바삭하게 살아 있다. 그 속에 감춰진 짭짤한 살 맛에는 약간의 향기가 가미돼 입맛이 확 산다. 크리스피 솔티드 치킨(Crispy Salted Chicken)이 식당에서 내세운 메뉴 이름이다. 오리나 거위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면 이런 유의 쉬운 닭 요리부터 시작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러고 보면 광둥음식의 맛 대표주자인 해삼이나 전복도 역시나 말렸다가 먹는다. 이 역시 보존을 위해서였겠지만 이제는 극상의 맛을 추구하는 미식의 영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셩완의 길거리 시장에서 본 말린 해삼과 전복이 내가 홍콩의 밤거리를 누빈 며칠 동안 본 가장 비싼 상품이었다. 단위에 0이 하나 더 붙는다. 보석이나 진배 없다. 

 

아무튼, 맛이다. 오늘 먹어도 될 해삼이나 전복, 오리나 닭을 내일로 양보하는 이유는 이제 와서 설명하자면 딱 하나, 맛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성능 좋은 냉장고를 사양하고 굳이 그럴 일인가 말이다. 결국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고, 더 맛있게 먹기 위함이다.

 

필자 이해림은? 푸드 라이터, 푸드 콘텐츠 디렉터. 신문, 잡지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싣고 있으며, ‘수요미식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탐식생활: 알수록 더 맛있는 맛의 지식>을 썼고, 이후로도 몇 권의 책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 콘텐츠, 브랜딩, 이벤트 등 전방위에서 무엇이든 맛 좋게 기획하고 있으며, 강연도 부지런히 한다. 퇴근 후에는 먹으면서 먹는 얘기하는 먹보들과의 술자리를 즐긴다.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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