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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왱알앵알] 제2롯데월드는 흉물스러워도 공연은 ‘월드클래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정명훈 공연 관람 후기

2016.11.11(Fri) 16:32:04

세계 3대 클래식 공연장을 논할 때 LA 디즈니 콘서트홀, 일본의 산토리 홀은 빠지지 않고 꼽힌다. 지난 8월 잠실에 개관한 롯데 콘서트홀은 이들 공연장을 설계한 ‘나가타 어쿠스틱스’가 음향설계를 맡았다. 그동안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은 ‘월드클래스’라고 할 만한 공연장이 단 한 곳도 없어 갈증에 시달려야 했다. 롯데 콘서트홀은 갈증 끝에 온 홍수였다. 

 

롯데백화점 창립 37주년 기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정명훈 포스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의전당도 롯데 콘서트홀과는 비교불가 수준이다. 아마추어 육상 대회에 우사인 볼트가 나온 급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격차가 엄청났다. 

 

‘일본 기업’, ‘롯데 특유의 문화’ 등을 이유로 롯데를 ‘극혐(극도로 혐오)’하는 클래식 애호가도 있다. 하지만 이들도 롯데 콘서트홀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모두 손에 손 잡고 롯데홀로 향했다.

 

롯데에 대한 감정을 접어두고 칭송할 수밖에 없는 롯데 콘서트홀. 그곳에서 지난 11월 1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 필)가 방한해 공연을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빈 필은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오케스트라다. 더군다나 지휘자는 정명훈이었다. 최고의 공연장, 최고의 오케스트라, 최고의 지휘자. 이런 기획이라면 박봉의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꼭 갈 수밖에 없다. 

 

환상적인 공연장과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가 만났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 정도 공연에는 국내 클래식 마니아가 다 온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날도 가수 이승철 씨와 황창규 KT 회장이 로비에서 서성거리며 공연을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황 회장은 KT와 최순실 씨 간의 연루설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이 공연을 놓칠 수 없었던 것 같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롯데홀의 모습.


기자도 격무에 시달리다 ‘지옥철’을 타고 제2롯데타워에서 길을 잃어 이곳저곳 헤매다 공연 시간을 겨우 맞출 수 있었다. 시작됐다. 1부는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이었다. 좋은 음악은 몸을 이완시킨다고 한다. 20분쯤 듣다 피로감이 몰려왔다. 갑작스레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음악 때문인가. 피로 때문인가. 지옥철 때문인가. 

 

무엇인지 확신하기도 전에 눈을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일어나니 20분은 지난 듯 보였다. 자는 동안 호른이 고장 나 난리가 났다고 한다. 다행히 정 지휘자가 능숙하게 고장 난 파트를 의식해 지휘했고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휴식시간 옆에 앉은 클래식 애호가 조 아무개 씨는 “(1부는) 전체적으로 긴장한 듯 보였다. 본 실력이 나오지 않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2부가 더 기대된다”고 평했다. 음악을 들으며 졸았더니 개운하고 머리가 맑아졌다. 여러분, 음악의 힘이 이렇게 위대합니다! 30분 휴식 후 다시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2부는 ‘브람스 교향곡 4’번이었다. 2부를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첫 음부터 끝까지 땀을 쥐며 들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가는 게 너무 아까웠다. 정말 ‘월드클래스’라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봤던 모든 클래식 공연 중 단연 최고였다. 모든 파트가 각자 엄청난 실력을, 그리고 그 파트가 모여 하나의 고지를 점령해갔다. 정명훈 지휘자에 대한 호불호는 차치하고라도 그의 실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수가 쏟아졌다. 정 지휘자는 관객을 향해 인사하고 들어갔다. 박수가 계속되자 다시 나왔다. 클래식 공연 특유의 ‘커튼콜’이다. 정 지휘자는 금관 파트나 목관 파트를 지목하고 박수를 보내달라고 하며 들어갔다. 이렇게 다시 들어갔다 나오고를 반복하다 앙코르 곡이 시작된다. 

 

원래 정 지휘자는 앙코르 곡에 인색하기로 유명하다. 서울시향을 지휘할 때 앙코르 자체를 안 한 날도 꽤 있다. 그래서 그의 앙코르가 당연하다기보다는 감사하다. 앙코르 곡이 시작되려 할 때 객석 한쪽에서 휴대전화 알림이 계속됐다. 공연이 끝난 줄 알고 휴대전화를 켜둔 사람의 기기에서 ‘카톡’, ‘카톡’ 등의 소리가 난 것이다. 

 

정명훈 지휘자가 앙코르 곡을 준비하고 있다.


정 지휘자가 마음을 가다듬고 지휘를 하려고 호흡을 가다듬고 긴장할 때마다 ‘카톡’ 소리가 나며 분위기를 깼다. 모든 관객의 원망을 듣고, 정 지휘자가 서너 번 가다듬은 후에야 겨우 시작할 수 있었다.

 

앙코르 곡은 2부와 마찬가지로 브람스였다. 첫 앙코르 곡은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 두 번째 앙코르 곡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2부만큼이나 훌륭했다. 베토벤 교향곡 6번이 지나치게 난해하기 때문에 1부 역시 브람스의 앙코르 곡 중 하나로 바꿨다면 어땠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클래식 애호가들이 클래식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 그 소리가 섞이며 만들어지는 전혀 다른 소리. 빠르고 느려지며 땀을 쥐게도, 가슴을 애잔하게도 만드는 신기한 조화. 가사도 없어 상상의 제한도 없다. 클럽에서 음악을 들으며 몸을 맡기는 것과 클래식을 들으며 취하는 건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클래식 인기가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옛날 클래식 전집을 각 집마다 앞다퉈 사던 시절이 있었다. 정작 사 놓고는 한구석에서 먼지만 쌓이던 전집 때문에 클래식 인구가 적어진 건 아닐까. 

 

앙코르 곡을 두 곡이나 전해준 정 지휘자에게 무한한 감사의 박수를 친 뒤 공연장을 떠났다. 지나가는 또 다른 관객은 “앙코르에 후하지 않은 정명훈 지휘자가 표 값이 워낙 비싸니까 서비스해준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앞서의 조 씨는 “몸이 풀리기 시작한 2부는 확실히 세계 최고의 공연이었다. 어떤 오케스트라가 이보다 잘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다”라는 관람평을 전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찬사도 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연장을 나와 흔히들 흉물스럽다고 하는 제2롯데월드의 123층 건물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공연이었지만, 그래도 흉물스럽긴 매한가지였다.​

김태현 기자 toy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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