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프랑스 리그1에 참가하는 프로 축구팀 파리 생제르맹(PSG)이 23/24 시즌 리그 14라운드 르아브르와의 원정경기에서 선수 이름이 한글로 마킹된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PSG에서 뛰는 한국 선수 이강인은 물론이고 음바페, 덤벨레, 돈나룸마 등 선수단 전원이 한글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이런 PSG의 파격 행보는 이강인 영입에 따른 팬서비스 차원이다. PSG에 따르면 영입 후 홈구장인 파르크 데 프랭스의 한국 팬이 20%가량 증가했다고 하니 상당한 수치다. 경기 결과도 PSG의 2-0 승리로 끝나 특별함을 더했는데, 이로써 PSG는 리그 7연승과 함께 선두를 유지했다. 선수 출신국의 문자를 팬서비스에 활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고유 문자를 가진 국가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 활약한 한국 선수로 인해 유럽 축구계에 한글이 전파된 것이 처음은 아니다. 1980년대 초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던 차범근의 소속팀인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는 ‘차범근’ 이름 표기를 위해 알파벳만 표기되던 전광판을 한/영 전광판으로 바꾼 적이 있다.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단 4시즌 뛰었지만 팀의 전설로 대우받고 있다.
PSG의 한글 유니폼에서 돋보이는 점은 선수 이름을 중앙 정렬로 모아서 배치했다는 점이다. K리그에서 주로 쓰이는 기존 한글 마킹은 보통 3글자로 구성되는 선수 이름을 음절마다 넓게 띄어 놓아 응집력이 떨어진다. 어쩌면 해외 유니폼에서 자주 보이는, 길게 풀어쓴 알파벳 마킹의 영향으로 짧게 쓸 수 있는 이름도 관성적으로 옆으로 늘여 배치하는 것이 아닐까? 짧은 단어는 필요 이상의 글자 간격을 주지 말고 PSG의 경우처럼 중앙으로 모아 놓는 편이 판독성과 디자인 양면에서 낫다고 본다.
반면 서체 선택은 아쉽다. 기하학적인 자소 형태, 그리고 ‘ㅏ’의 가로획을 점으로 표시한 디자인은 훈민정음 창제 시기의 판본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판본체는 다른 한글 서체보다 스포츠 경기에 적합한 것도 아니고 숫자 디자인과의 조화도 부족하다. 이는 유럽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한글=훈민정음’이라는 1차원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다. 한국에도 다양한 한글 서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더 역동적인 서체를 택했으면 어떨까. 많지는 않지만,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글 디자이너를 수소문하여 협업을 진행했다면 의미는 배가 됐을 것이다. 한글 서체 1종에 최소 2,000자가 넘게 필요하긴 하지만 어차피 이벤트성 경기인 만큼 해당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 이름으로 한정 지으면 작업 범위는 넓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K리그 참가팀 유니폼에 적용 중인 K리그 전용서체도 좋은 옵션이다.
PSG가 한국을 묘사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표현 역시 어쩐지 구한말을 생각나게 한다. 물론 가볍고 유쾌한 느낌으로 쓴 수식어겠지만, 그런 표현이 처음 등장한 19세기 후반과 현재 한반도의 상황은 많이 다른 만큼 이 부분에서 좀 더 문화적 깊이를 보여줬으면 어떨까 싶다. 그러나 시도 자체는 긍정적이다. 시작부터 모든 것을 만족시키기는 어려운 법. 해외에서 K팝과 K드라마 열풍이 불면서 현지에서 한글을 접하는 빈도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타국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가 더욱 많아짐으로써 한글 문화 지도가 계속 넓어지길 바라 본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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