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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제18대 대통령 후보가 5년째 노숙하는 사연

김순자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2014년부터 파업 "정권 바뀌고 변화, 복직 때까지 투쟁"

2018.09.27(Thu) 17:39:54

[비즈한국] “아이고 왔나. 이번 추석엔 왜 이렇게 늦게 왔노. 항상 시간 맞춰 오는데 이상하다 싶었다.”

 

추석 당일인 지난 24일 오후 4시, 청소노동자 심상분 씨(62)는 자신이 일하던 울산과학대학교(이사장 정몽준) 정문 밖 ‘소굴’로 들어섰다. 양손엔 차례 음식과 막걸리가 들려 있었다. 김순자 울산지역연대노동조합 울산과학대지부장(65)은 이미 한 차례 청소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다녀간 자리에 남아 그를 맞았다. 김순자 지부장은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때 무소속 후보로 나서 ‘생활임금보장’을 내걸고,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했다.

 

김순자 울산지역연대노동조합 울산과학대지부장(65)은 2012년 제18대 대선 당시 무소속 후보로 나서 생활임금보장을 내걸고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소굴’은 인도의 담벼락을 등지고 150리터 냉장고 문짝만 한 스티로폼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비닐을 덮어 지붕을 만들고 내부엔 평상을 여러 개 놔서 앉거나 누울 수 있게 했다. 천장은 성인 남자가 들어섰을 때 허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 높이였다. 백열전구가 속살을 드러낸 채 천장에 대롱 매달려 있었다. 흡사 추위와 더위를 겨우 견딜 수 있는 피난처 같았다. ‘피난처’에 걸린 달력에는 이번 추석이 ‘청소 못한 날’ 1562일째로 표기되어 있었다.

 

시작은 2014년 6월 16일.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였던 김순자 지부장을 중심으로, 노동자 총 스물세 명 중 스무 명이 생활임금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당시 노동조합이 요구한 시급은 시중노임단가(중소기업중앙회가 해마다 두 차례 발표하는 제조업 부문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에 준하는 7910원이었다. 당시 최저시급은 5210원. 하루 8시간씩 한 달 동안 일하면 월급 108만 원을 받았다. 기본적인 생활은커녕 빚만 쌓였다.

 

“평균 나이가 66세, 다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장이에요. 그 돈 받아가 생활해보면 자꾸 빚을 져요. 청소노동자는 문화생활은 꿈도 못 꿔요. 내가 여기 13년 일했어요. 근데 내 통장에 빚이 얼만 줄 아는교? 2500만 원이에요. 나는 일하는데 와 자꾸 빚이 쌓이냐 이기야. ‘이래는 못살겠다’ 해서 시작한 거지요.”

 

2014년 6월 시작한 울산과학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은 이번 추석에 1562일째를 맞았다. 사진=박현광 기자

 

김순자 지부장은 파업 시작 당시를 회상했다.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노조는 한 발짝 물러서 애초보다 790원 오른 시급 6000원을 요구했다. 학교는 이마저도 수용하지 않았다. 파업은 1년여 계속됐고, 결국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는 2015년 5월 모두 해고됐다. 정확히는 학교가 청소노동자를 고용한 하도급 업체와 계약을 해지했다.

 

만 4년이 넘는 동안, 학교 본관 안에 자리 잡았던 농성장은 본관 뒤에서 본관 앞으로, 또 학교 정문 안에서 정문 밖으로 네 번 쫓겨났다. 강제 철거가 집행될 때마다 비가 내렸고, 철거가 끝나면 학교의 사유지를 무단 점거했다는 명목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장이 조합원에게 날아들었다. 스무 명이던 조합원은 처음 1년 새 여덟 명으로 줄었고, 각자 8860만 원이라는 강제이행금을 떠안았다.

 

“지금은 ‘울산지역 연대 기금’으로 한 달에 60만 원씩 받으면서 지내요. 파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보내주는데, 어찌나 고마운지 혼자였으면 여기까지 못 왔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조합원들이 나갈 때 가장 힘들었지요. 정말 팔다리가 찢겨 나가는 기분이지. 말로는 다 못해요. 그래도 억울하고 답답하니까 젤 밑바닥에 있던, 아무것도 모르던 할매, 할배들이 여기까지 온 거지요.”

 

청소노동자 조합원과 그 가족이 추석 차례 음식을 가져와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박현광 기자

 

파업을 시작한 뒤 정권이 바뀌어 노동정책 기조가 백팔십도 뒤집혔다. 내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8350원으로 정해지며 노조가 최초 요구했던 시급 7910원을 훌쩍 넘어섰다. 최근 울산지역 지방자치단체장과 교육감까지 기존 여당에서 새로운 여당 인사로 탈바꿈하면서 분위기가 역전됐다. 학교 측도 점점 태도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김순자 지부장의 얘기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관계자를 통해 협상안을 전해온다는 것.

 

“학교는 복직은 되지만 일자리가 없답니다. 기존에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러면서 더 좋은 조건으로 일자리 알아봐줄 테니까 그리로 가란다. 그게 말이 되나. 그럼 우리가 그래요. 더 좋은 일자리를 양보하고, 우리는 기다릴 테니까 울산과학대로 복귀시켜달라고. 2007년에 해고하지 않겠다고 사인한 고용합의서를 이행하라고. 그뿐이라.”

 

김순자 지부장은 울산과학대로의 복직을 고집하는 이유로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파업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많은 게 걸렸다”고 설명한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노동조합은 2007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학교 청소노동자로서 첫 파업을 시작해 79일 만에 합의를 끌어낸 바 있다. 이후 홍익대학교를 시작으로 전국 대학교의 청소노동자 조합이 결성됐고, 미화 노동의 열악한 환경이 대중에게 알려졌다.

 

울산과학대학교 앞 농성장 모습. 4년 동안 네 번 쫓겨나 다섯 번째 만든 농성장이다. 학교 부지를 벗어나 인도에 자리 잡았다. 사진=박현광 기자

 

“왜 그만 안 하고 싶겠어요. 우리 청소 일은 구할라믄 어디든 구할 수 있어요. 근데 우리를 이때까지 도와준 사람들이 그러라고 지지해줬겠나. 우리는 상징성이 있는 기라. 우리가 이기면 다른 곳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청소노동자는 최저임금만 받아도 된다는 인식을 바꿔야지요. 당장 현대중공업 파업도 걸려 있어요. 우리 할매, 할배 여덟 명이 이겼다? 그럼 거긴 우예 되겠는교. 학교가 죽어도 복직 안 해줄라고 하는 이유가 있는 거지요.”

 

김순자 지부장은 “학교는 10년 이상 근무하며 똥, 오줌 치운 노동자들에게 화장실도 못 쓰게 한다”며 “우리는 상식을 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파업을 언제까지 할 것이냐는 질문에 힘주어 “끝까지”라고 말했다.​

 

울산과학대학교 관계자는 27일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지금 당장 드릴 말씀이 없다”며 ​“입장이 전해지면 밝히겠다”고 전했다.​

울산=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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