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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지오텍과의 '잘못된 만남' 그후, 포스코플랜텍 고군분투기

워크아웃 과정 그린 책 '사람/일/꿈'에 나온 인수·합병과 그 이후 비화

2018.05.16(Wed) 19:00:03

[비즈한국] 워크아웃 탈출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포스코플랜텍의 최근 동향을 담은 책이 출간됐다. ‘사원이 행복한 기업 포스코플랜텍: 사람, 일, 꿈’이라는 제목의 서적은 개인 작가가 저자이지만, 포스코플랜텍이 구체적인 사내 현황 자료를 제공했고 대표이사의 추천사가 실리는 등 실질적으로는 사사(社史)에 가깝다.

 

포스코플랜텍이 건설한 포스코 광양 LNG 저장 탱크. 사진=포스코플랜텍


이 책에는 2013년 성진지오텍과 합병한 뒤 급속한 내리막을 걷다 2015년 워크아웃에 돌입한 후 이를 탈출하려는 3년 동안의 눈물겨운 노력이 담겨 있다. 성진지오텍 합병 당시 혼란스러운 사내 분위기도 생생하게 담겨 눈길을 끈다.

 

# 2010년, 의혹 가득했던 성진지오텍 인수

 

정준양 전 회장 재임 시절이던 2010년 3월 포스코는 성진지오텍 지분 40.37%에 해당하는 1234만 5110주를 1592억 원에 인수했다. 포스코는 미래에셋펀드로부터 794만 5110주, 전정도 세화엠피 회장으로부터 440만 주를 매입했다. 

 

이 과정에서 포스코는 전 회장의 지분만 시세의 두 배 가격인 1만 6331원에 매입했다. 포스코가 성진지오텍 지분을 매입하기 직전 3개월 평균 주가는 8271원이었다. 일종의 권리금과도 같은 경영권 프리미엄이 반영된 가격이었지만, 통상보다 높은 수준이라 논란이 일었다.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이 정치권과 유착해 특정 협력사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를 받기 위해 2015년 10월 8일 서울중앙지검으로 소환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또 다른 논란은 당시 성진지오텍의 주채권 은행이던 산업은행이 포스코의 성진지오텍 인수계약 6일 전 전정도 회장에게 445만 9200주를 살 수 있는 신주인수권(BW)을 매각한 점이다. 성진지오텍이 포스코에 매각된다는 것은 가격이 오를 수 있는 호재인데, 주가 상승 차익 기회를 포기한 셈이다.

 

산업은행이 이를 매각하지 않고 주식으로 전환했다면 115억 원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전 회장은 이때 산 신주인수권을 이용해 235억 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성진지오텍이 인수할 만한 회사였느냐는 논란도 있다. 성진지오텍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에 투자해 2000억 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해 한때 부채비율이 9만 7500%까지 올라 부도 직전으로 내몰리기도 했다. 당시 성진지오텍의 회계감사를 맡았던 안진회계법인은 ‘계속기업으로서 존속 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제기한다는 감사의견을 내기도 했다.

 

인수 적정성에 대한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퍼졌다. 전정도 회장과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은 이명박 정부 실세로 통했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과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정도 회장은 성진지오텍을 포스코에 매각한 해인 2010년 12월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불교분과위원장으로 임명됐고, 2011년 7월 대통령자문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장 이명박 대통령) 울산 남구협의회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한편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은 성진지오텍을 비싸게 인수해 회사에 1592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로 2015년 재판에 넘겨졌으나, 2017년 8월 2심에서 무죄를 받은 상태다. 반면 성진지오텍의 합병 법인인 포스코플랜텍의 자금 660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2015년 구속기소된 전정도 회장은 2016년 10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 2013년, 시너지 효과 전혀 없었던 합병

 

포스코플랜텍은 1982년 포스코 자회사로 설립된 제철정비(주)가 전신이다. 2010년 포스코가 제철소 정비를 외주화하기 전까지 포스코의 정비사업을 독점적으로 맡아왔다. 2010년 1월 포스코플랜텍으로 상호를 변경했고, 2013년 7월 성진지오텍을 흡수합병했다.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2015년 워크아웃 절차를 개시했다.

 

2011년 1월 포스코 시무식에서 정준양 당시 회장은 ‘포스코 패밀리 비전 2020’을 발표하며 2020년까지 ‘철강·소재·에너지’ 3대 핵심사업을 중심으로 연 매출 200조 원을 달성하고 글로벌 100대 기업에 오르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2010년 포스코가 제철소 정비를 외주화하기 전까지 포스코플랜텍은 포스코의 정비사업을 독점적으로 맡아왔다. 사진=포스코플랜텍


포스코의 정비사업 독점이 없어지고 비전 2020에 발맞춰 사업 영역 확장을 모색하던 포스코플랜텍은 건설 프로젝트나 인프라 사업 계약을 따내는 EPC(Engineering·Procurement·Construction, 설계·조달·시공) 사업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성진지오텍과의 합병 필요성은 이때부터 제기됐다. 해외사업 매출 비중이 80%가량인 성진지오텍이, 해외사업 경험이 전무한 포스코플랜텍에게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화공기자재 및 에너지 모듈설비 제작을 주 사업부문으로 하는 성진지오텍과 제철소 정비를 주로 하던 포스코플랜텍의 시너지 효과는 예상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합병 직전 각각 5000억 원이 넘던 양사의 매출은 합병 직후인 2013년 통합 매출 7615억 원에서 6234억 원(2014년), 4577억 원(2015년), 3602억 원(2016년)으로 내리막을 걸었다. 순이익의 경우 성진지오텍은 2010년 115억 원, 2011년 592억 원, 2012년 292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포스코플랜텍은 2010년 124억 원, 2011년 68억 원, 2012년 21억 원 흑자였다. 

 

합병 후 순이익은 2013년 1035억 원 적자, 2014년 2797억 원 적자, 2015년 3474억 원 적자, 2016년 447억 원 적자였다. 부실이 쌓이자 2014년 12월 포스코와 포스코건설의 2900억 원의 증자를 비롯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약 4500억 원의 증자를 받았지만 워크아웃을 피하지 못했다. 

 

‘사람, 일, 꿈’에는 당시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언급된다.

 

문제는 두 배로 불어난 덩치였다. 성진이나 플랜텍이 별도의 기업으로 있을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일들이 합병을 하면서 오히려 큰 부담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흔히 ‘규모의 경제’라고도 하고 ‘대마불사’라고도 하는 전략이 이쪽도 저쪽도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빠른 행보에 방해만 되었던 것이다.

 

고참 직원들은 당시 상황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미래를 본 전략적인 판단이 아니라 외부의 입김이 포스코를 움직여 부실기업을 인수했고, 그것을 플랜텍에 떠넘겼다고 보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부실을 덮기 위해 더 큰 부실을 초래했다’는 비난까지 하고 있다. 

 

포스코는 계열사가 도산할 경우 금융권에 ‘계열사도 책임지지 못한다’는 인식을 줄까봐 워크아웃만은 피하려 했다. 포스코 계열사라 하더라도 실적이 나쁘면 은행들이 자금줄을 끊을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 2015년, 워크아웃 ‘트리거’는 전정도 회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코플랜텍은 2015년 9월 워크아웃 절차에 돌입한다. ‘사람, 일, 꿈’에서는 결정적 계기를 전정도 회장이 이란 공사대금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합병 전 성진지오텍은 이란에서 900억 원대의 공사를 완료했으나, 미국의 이란 제재로 인해 직접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자 전 회장의 개인 회사(SIGK)가 2013~2014년에 걸쳐 대신 받아서 보관했다. 

 

포스코플랜텍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전정도 세화엠피 회장이 2015년 5월 28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들어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2014년 2900억 원의 대규모 증자가 이뤄진 뒤 전 회장이 그 자금을 이미 써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자 채권단에서도 난리가 났다. 

 

“우리도 황당했지만, 채권단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죠. 그렇잖아도 살얼음 위를 걷듯 위태로운 상황이었거든요. 말하자면 전정도 회장의 횡령이 속칭 채권단의 손에 쥐어져 있던 권총에 트리거(방아쇠) 역할을 한 셈이었습니다.”(조청명 포스코플랜텍 사장)

 

“당시 채권은행과 사전에 미리 얘기가 다 되어 있었어요. 외환은행의 경우 만기 어음이 500억 원 정도였는데, 20%인 100억 원만 갚고 연장하기로 약속을 했죠. 그런데 만기 당일에 갑자기 연장이 안 되겠다는 연락이 온 거예요. 본사 지침이라면서. 하필이면 지점장이 바뀌는 날이라 더 얘기를 할 상대도 없었어요. 물론 증자를 받았기 때문에 현금은 있었지만, 외환은행 돈을 갚고 나면 다른 은행이 또 문제가 되잖아요. 바로 산업은행에 연락을 했죠. 그런데 외환은행도 산업은행도 물러날 생각이 없는 거예요. 전정도 회장의 횡령 사건이 터지면서 단단히 결심을 한 거죠. 결국 1차 디폴트를 맞고 말았죠.”(당시 자금 담당이던 강 아무개 부장)

 

포스코플랜텍 부실의 주요 원인도 성진지오텍으로 진단했다.

 

성진과의 합병 이전까지 플랜텍은 거의 ‘무차입 경영’을 실현하고 있었다. 그러다 성진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700억 원을 빌렸는데, 알고 보니 성진에는 5021억 원의 차입이 있는 상태였다(2013년 6월 공시자료 기준). 말하자면 워크아웃 이전까지 있었던 플랜텍의 채무는 대부분 성진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던 셈이다. 

 

# 포스코플랜텍 사례는 ‘매우 드문 확률’

 

2013년 말 1201명이던 포스코플랜텍 직원 수는 세 번에 걸친 구조조정을 통해 2017년 7월 말 기준 480명으로 3분의 2가량 줄었다. 임원도 17명에서 6명으로 비슷한 수준으로 줄었다. 3년째 임금과 상여금을 거의 동결한 상태에서 긴축 재정을 유지하고 있다. 

 

포스코플랜텍은 채권단과의 협의에 따라 손해가 나고 있는 부실 프로젝트를 조기에 정리하고, 본사 건물을 제외한 울산 1·2·3공장과 직원 기숙사용 아파트 33채를 매각 또는 매각 진행 중이다. 또 채권단과의 약속에 따라 포스코는 매년 4000억 원 수준의 물량을 포스코플랜텍에서 수주하도록 하고 있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해외 플랜트나 신규 사업 진출이 꽉 막혀 있는 플랜텍으로서는 포스코의 LOC(확약서) 물량이 바로 생명줄인 셈이다. 실제로 2017년까지 플랜텍에서 수주한 사업 중 포스코 본사 물량의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다. 

 

포스코플랜텍은 최근 워크아웃 시기의 구조조정 과정을 그린 ‘사원이 행복한 기업 포스코 플랜텍: 사람, 일, 꿈’을 출간했다. 사진=포스코플랜텍


‘사람, 일, 꿈’은 포스코플랜텍의 사례가 로또 당첨만큼이나 매우 드문 확률이라고 본다. 그리고 멀쩡한 기업이 외부 요인으로 내리막을 걸어야 했던 진한 아쉬움으로 마무리된다. 

 

따지고 보면 한국 기업사에 있어서 ‘정치적인’ 문제와 얽히지 않은 기업이 대주주가 멀쩡히 살아 있는 상태에서 일시적인 자금 경색 문제로 워크아웃까지 이르게 된 경우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매우 드문 확률’이라는 이야기가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플랜텍은 훗날 재계나 금융권 모두 한 번쯤 꼼꼼히 되짚어보면서 함께 살펴보아야 할 훌륭한 사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종국 기자 xyz@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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