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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미꾸라지와 썩은 사과

2016.08.17(Wed) 16:20:35

“20여 년 만의 무더위가 찾아오고 또 임원들이 자주 자리를 비우고 있는 상황에서도 모두 열심히 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일으킨 흙탕물도 맑게 가라앉으려면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 맑은 물을 유지하려면 서로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겠지요. (에어컨이 고장 나서) 사무실이 덥다 보니 일할 때 짜증도 나겠지만 그럴수록 서로에 대한 배려가 필요할 것입니다. 내가 더우면 남들도 더운 것이고, 내가 배고프면 다른 사람들도 배가 고플 테니까요. 내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마치 자기만 힘든 군대 생활을 한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누구나 힘든 군대 생활을 한 것입니다. 회사에 직원이 많아질수록 서로에 대한 배려가 더 필요합니다. 좀 더 파이팅 합시다.”

SNS에 떠돌고 있는 모 중소기업의 대표가 직원들에게 보낸 단체 카톡 내용이다.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면 좋겠지만, 맞춤법이 엉망인 데다가 비문과 오문으로 점철되어 있고 게다가 예의가 없어도 너무 없어서 차마 그대로 옮기지 못하고 고쳐서 인용하였다.

대표의 카톡에 대해 직원들의 반응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에어컨이 망가져서 미안하다. 얼른 수리하겠다’라는 간단한 말을 기대했는데, 불평을 한 누군가를 ‘미꾸라지’ 취급했다. 에어컨 망가진 사무실에서 일어난 대표와 직원 사이의 갈등에 끼어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과학적인 사실은 좀 알려주고 싶다. 바로 미꾸라지 이야기다.

우리말에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놓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한 사람의 좋지 않은 행동이 어떤 집단이나 여러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일컫는 속담이다. 그 뜻은 이해가 되지만 미꾸라지에게는 너무나 억울한 이야기다.

미꾸라지는 잉어목(目)에 속하는 물고기로 한자로는 ‘미꾸라지 추’를 써서 추어(鰌魚 또는 鰍漁)라고 한다. 미꾸라지를 미꾸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미꾸리는 다른 물고기이다. 미꾸리와 미꾸라지는 수염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또 몸통을 손으로 쥐었을 때 둥근 느낌이 들면 미꾸리, 납작한 느낌이 들면 미꾸라지라고 구별하기도 한다. 이것은 그럴 수 있다는 것이지 일반인이 실제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대체로 아주 큰 놈들을 미꾸리라고 보면 어느 정도 맞다. (일본에는 미꾸라지가 없고 모두 미꾸리이며, 중국에서는 미꾸라지와 미꾸리를 구분하지 않는다.)

   
지카바이러스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 4월 양재천에 미꾸라지를 방류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가 미꾸라지를 나쁜 비유에 사용할 이유가 전혀 없다. 미꾸라지는 우리에게 보양식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질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미꾸라지는 모기 애벌레인 장구벌레를 하루에 천 마리까지 먹어치운다. 실제로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하수구에 미꾸라지를 풀어 모기 애벌레를 먹어치우게 하기도 한다. 미꾸라지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도 싫다.

미꾸라지 대신 송사리를 사용하면 어떨까? 괜찮다. 그런데 송사리는 미꾸라지보다 훨씬 비싸다. 그리고 너무 더러운 물에서는 송사리가 살지 못한다. 정작 장구벌레는 더러운 웅덩이에 많은데 말이다. 하지만 미꾸라지는 더러운 물에서도 살 수 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미꾸라지가 더러운 웅덩이에서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까닭은 독특한 호흡법 때문이다. 대부분의 물고기들은 아가미 호흡을 한다. 미꾸라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미꾸라지는 여기에 더해서 보조수단으로 ‘장(腸)호흡’을 할 수 있다. 아가미 호흡, 허파 호흡, 피부 호흡처럼 장호흡은 말 그대로 장 표면을 통해 산소를 받아들이는 호흡법을 말한다. 미꾸라지는 산소가 녹을 수 없는 탁한 물에서도 입을 수면에 대고 있으면 장의 표면을 통해 산소를 몸 안으로 흡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꾸라지가 더러운 물에서만 살거나 더러운 물을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미꾸라지도 깨끗한 물을 좋아한다. 더러운 물에서도 살아주는 것이다. 미꾸라지가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으면 웅덩이 바닥은 아예 썩어서 곧 아무것도 살지 못하게 된다. 미꾸라지가 흙탕물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나마 웅덩이에 무언가가 살 수 있는 것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웅덩이를 흐리게 하는 게 아니라, 미꾸라지가 더러운 물에서도 버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미꾸라지 같은 직원이 들어와서 갈등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갈등 요소가 많은 직장에서 직원들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직원은 조직이 썩지 않도록 밑바닥에 산소를 공급해주는 귀한 존재일지 모른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놓는다.”라는 속담에 해당하는 영어 속담이 있다. “A rotten apple spoils the whole barrel(썩은 사과 하나가 사과 상자 전체를 모두 망친다).”가 바로 그것. 여기에는 근거가 있다.

식물에서는 에틸렌이라는 기체가 나온다. 에틸렌은 식물을 성숙시키는 호르몬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이 에틸렌은 석유가 탈 때 나오는 그 에틸렌과 같은 물질이다. 그래서 푸른 바나나를 따서 저장했다가 판매하기 직전에 에틸렌 가스를 쐬어서 노랗게 익힌 다음에 매장에 전시한다. 그런데 에틸렌은 성숙 호르몬일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호르몬이기도 하다. 사과 같은 과일은 상처를 받거나 가뭄, 산소 부족 같은 스트레스가 있으면 에틸렌을 마구 방출한다. 그러면 옆에 있는 멀쩡한 사과마저 못쓰게 된다.

썩은 사과는 솎아내야 하지만, 미꾸라지는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 그나저나 그 회사는 에어컨을 고쳤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미꾸라지는 쫓겨나지나 않았는지 걱정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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