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 BIZ.HANKOOK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아젠다

[2030현자타임] 내 기분을 나쁘게 했으니 니 밥줄을 끊겠다?

2016.08.13(Sat) 13:15:26

감정은 인간의 행위를 촉발한다. 특히 분노가 행위의 부싯돌과 땔감이 될 때가 많다. 이것이 사회 구조와 문화를 겨냥할 때, 관련 행위에 대한 윤리적 갈등은 상대적으로 적다. 반면 분노가 ‘사람’을 향한 것일 때는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무지에 의해, 잘못된 학습에 의해, 어떤 상황에 의해 배려 깊지 못한 행동을 누군가에게 한 적 있을 테다. 때문에 스스로도 실수하는 인간이면서 타인에게는 엄격한 것은 아닐지,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기 전에 분노부터 터뜨리는 일이 옳은 것일지 고민하게 된다. 

최근 ‘메갈리아4’ 티셔츠를 후원한 성우의 해약 관련 논란 및 웹툰 ‘예스컷’ 논쟁을 보며 고민은 깊어졌다. 개인의 행동 교정 및 사회적 본보기를 위해 특정인의 밥줄을 끊는 것은 정당하다는 논리가 요즘 대세 같다.

나는 이에 반대해왔다. ‘장동민과 친구들’이 팟캐스트에서 막말을 해서 방송계 퇴출 요구를 받을 때도 “이들이 한국의 광연한 가부장적 통념을 무비판적으로 흡수한 뒤 이를 토대로 발화했을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개인의 문제로만 돌리기는 어려우니 이들을 매장하지 말고 반성의 기회를 주자”는 글을 썼다. 

하지만 그 뒤로도 그 일당들은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언급 없이 방송을 지속했고, 사회적 약자를 희롱하는 코미디를 반복해 글을 쓴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래도 여전히 “잘못한 이들의 밥줄을 끊어야 한다”는 논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행동의 교정을 위해서라면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교정의 기회를 주기보다 당사자를 사회에서 축출하는 것이 (그것이 당사자의 자살이더라도) 옳다고 생각한다면 모를까. 다만 그들이 ‘달라졌음’을 증명할 때까지 제한된 활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일정 부분 동의하고, 온당한 제한의 범위에 대해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분노가 상대의 잘못 때문이 아닌, 자신의 착각이나 호도된 사실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우려스럽다. 예컨대, 살던 대로 편하게 살고 싶은데 ‘나보다 아래’의 사람들이 자꾸 귀찮게 떠들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아 화가 난다면, 이때의 분노는 정당화될 수 있을까? ‘상대가 잘못했다’는 지각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된장녀’, ‘김치녀’, ‘삼일한(김치녀들은 삼일에 한 번씩 맞아야 한다)’, ‘×전깨(××에 전구 넣고 깨버리고 싶다)’ 등의 여성 대상 혐오 발언, 여성의 나이와 외모에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품평하며 희롱하는 문화, 화장실 몰래 카메라와 리벤지 포르노를 죄의식 없이 소비하는 남성 커뮤니티 등을 10년 이상 보아왔다. 이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를 가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패러디하며 문제 제기하는 이들에게는 엄중하게 대하는 것은 이중잣대라 느꼈고, 페이스북코리아가 ‘김치녀’ 페이지는 방치하고 그것을 패러디한 페이지들은 여러 차례 삭제한 것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이와 관련된 활동을 하는 ‘메갈리아4’의 텀블벅 후원에 내가 참가한 이유다. 

리워드로 받은 티셔츠를 입고 외출했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착복 전날 읽은 “메갈티 입은 ×들 눈에 띄면 배××에 칼빵 놓고 싶다” 같은 글이 떠올라, 남자들이 두 명 이상 모여 나를 쳐다보고 쑥덕댈 때마다 위축됐다. 폭행, 강간, 살인에 대한 공포였다. 

궁금해졌다. “메갈리아는 범죄 집단”,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는 건 안 됩니다”를 엄격·근엄·진지하게 외치는 이들은 정말 메갈을 상대로 그런 공포나 위협을 느끼는 걸까? 이들 중 메갈리아가 패러디한 ‘원본’에는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 이가 있다면, 반사상을 통해 문제의식을 강하게 느낀 지금도 원본에는 항거하지 않고 ‘메갈리아’로 통칭되는 이들만 줘 팬다면, 나는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같은 남자와의 갈등은 부담되지만 여자들을 ‘찍어 누르는’ 것은 자신에게 어떤 위협이 되지 않는 안온한 일이라 직감한 것은 아닌지, 그것은 균형추가 한 방향으로 기운 사회를 방증하는 것 아닌지, 그렇게나 ‘안온한 분노’가 정의로울 수 있는 것일지.

게임의 성우가 ‘메갈4티’를 입었다는 것에 분노를 퍼부으며 행동을 교정하려 하거나, 웹툰 작가가 작품 밖에서 밝힌 의견이 자신의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해당 작품을 검열하거나 ‘하차’시켜야 한다고 격앙된 주장을 하는 것 역시 분노에서 촉발된 행위다. 

나는 그런 분노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신념을 체득하고 ‘내가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자’는 윤리를 가지고 있다면 정당화될 수 없는 감정이라고 본다. 수천 개의 분노의 화살이 나를 향한 것일 때, 수백 명이 내가 추락하길 열망하며 주시하고 있을 때를 상상해본다. 삶을 살아갈 용기와 의지가 꺾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특정 인물을 향한 거대한 폭력의 1/n이 되지 않으려 경계한다. 

구조적 모순, 사회적 억압, 불공정 관행을 인지한 개인이 분노하여 행동할 때, 대개의 경우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체제에서 큰 힘을 가진 이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손해를 감수하고 하는 공익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와 같은 분노가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나의 기준일 뿐이고, 정당한 감정과 그 감정이 촉발한 행위의 수위에 대한 기준은 사회 구성원마다 다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토론과 숙의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만으로 축출 대상이 될 수 있는 사회는 구성원 모두의 삶을 위태롭게 한다는 전제가 깔린 토의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최서윤(a.k.a 잉집장)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비즈한국 bizhk@bizhankook.com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