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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밤하늘 수놓은 드론 100대 군무

2016.07.05(Tue) 11:41:00

우리는 한창 여름휴가를 준비 중이지만 적도 아래 호주는 이제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호주의 대표 관광지인 시드니의 겨울은 날씨도 춥고 관광 산업도 겨울잠에 드는 시기이다. 그런데 최근에 달라지고 있다. 축제가 하나 자리를 잡으면서 일어난 변화다.

6년 전부터 시드니는 매년 5월 말부터 6월 말까지 약 3주 동안 ‘비비드 시드니(Vivid Sydney)’라는 이름의 도시 축제를 연다. 올해는 5월 27일부터 6월 18일까지 23일 동안 이어졌다. 축제라고 해서 술과 먹거리, 화려한 잔치가 이어지는 건 아니다. 이 축제의 주제는 빛과 음악, 그리고 아이디어다. 이 세 가지 주제로 도시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비비드 시드니의 목적이다. 그러니까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거나, 자생적으로 생겨난 축제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행사라는 얘기다.

   
▲ 빛으로 화려하게 단장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그럼 이 축제 기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까? 축제의 중심은 우리가 ‘시드니’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바로 그곳, 오페라하우스에서부터 바닷가를 따라 록스를 지나 하버브릿지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클라키 지역이다.

낮에는 비교적 조용하지만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시드니의 풍경은 확연히 달라진다. 일단 하얀 외벽이 상징인 오페라하우스가 화려한 빛의 옷을 입는다. 레이저 빔을 이용한 미디어 파사드가 시작되는 것이다. 다양한 무늬가 살아 움직이듯 오페라하우스를 감싼다. 이 미디어 파사드는 축제의 상징이기도 하다. 미디어 파사드의 내용은 매년 달라진다.

오페라하우스를 마주보는 하버브릿지도 늘 비추는 하얀색 조명 대신 알록달록한 무지갯빛으로 모양을 꾸민다. 금융 및 다국적 기업들, 고급 호텔들의 스카이라인도 화려한 색으로 분위기를 바꾼다. 시드니의 밤 풍경에 익숙해도, 혹은 익숙하지 않아도 순식간에 펼쳐지는 빛의 향연은 입이 딱 벌어지게 마련이다. 현장에 함께 있던 해외 기자들을 통해서 영어로 된 온갖 감탄사를 다 들을 수 있었다.

올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드론100’이었다. 인텔이 직접 기획한 행사로 LED 조명을 단 100대의 드론을 하늘에 동시에 날리고, 그 빛들로 온갖 형상을 만들어내는 이벤트다. 올 초 미국 팜스프링에서 비공개로 시연했던 것을 비비드 시드니에서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했다.

무대를 제대로 골랐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소속 오케스트라가 야외에 무대를 꾸리고, 그 음악 연주에 맞춰 100대의 드론이 일사분란하게 춤을 추듯 형상을 만들어냈다. 마무리에 드론들이 인텔의 로고를 만들고, 오케스트라가 익숙한 인텔의 로고 사운드를 연주하자 시드니 바닷가에 모인 모두가 축제 분위기에 빠져 들었다.

가상현실(VR)도 빠지지 않는 주제다. 비비드 시드니의 한 축은 음악이다. 매년 여러 아티스트들이 시드니를 배경으로 독특한 작품을 펼치곤 한다. 아일랜드의 록 아티스트 비욕(Bjork)은 시드니에서 새 음반을 소개하는 쇼케이스를 열었다. 하지만 그가 직접 온 건 아니다. 가상현실을 이용했다. 삼성전자의 기어VR과 HTC의 바이브를 이용해 비욕의 오묘한 철학이 담긴 음악 세계를 풀어나갔다. 처음엔 ‘뮤직비디오를 굳이 VR로 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VR이 아니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인텔이 드론을 날리기 직전, 컨템포러리 박물관에서는 드론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에 대한 토론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줄리 비숍 호주 외무부 장관, 케빈 웰던 국제구명연맹 설립자, 스콧 더피 민간항공관리국 무인항공기 헤드 등이 참석해서 드론과 관련된 진지한 토론을 이어갔다. 흔히 이야기하는 촬영이나 배달뿐 아니라 응급상황이나 군사 용도까지 주제도 다양했다. 비비드 시드니는 이처럼 기술을 축제 한가운데에 놓고, 기술을 축제처럼 논하는 이벤트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 드론 군무에 앞서 열린 토론회.

특한 건 이 큰 축제에 시드니 시나 NSW(뉴사우스웨일즈) 정부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 그저 기술을 가진 기업들과 음악가, 기술 스타트업들만 보였다. 시드니는 축제기간 동안 이들의 각자의 기술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누군가가 앞장서서 생색내는 분위기도 없다. 축제라고 하면 으레 떠오르는 시끌벅적한 중앙 무대와, 노점상, 술 같은 것도 찾아보기 어렵다. 도시 전체가 무대고, 이 행사를 위해 별도로 뭔가를 만들어낸 흔적도 없다. 기업들이 갖고 있는 기술과 아이디어로 도시를 빛낼 뿐이다. 도시는 마치 ‘원하는 건 뭐든 해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시드니는 이 축제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비비드 시드니는 이제 막 일곱 번 치렀을 뿐이지만 겨울 관광의 커다란 축이 됐다. 여름이 가고 나면 시드니의 호텔과 음식점, 바닷가가 텅 비었는데, 비비드 시드니가 시작된 이후 한여름처럼 붐비게 됐다. 세계적으로 관련 여행 상품만 2만 6000개가 생겼을 정도다.

지난해 170만 명이 비비드 시드니를 보러 왔는데 올해는 230만 명, 무려 35퍼센트나 늘어났다. 어딘가 여름 시드니와 또 다르게 북적이는 느낌은 단순한 기분만은 아니었나 보다. 이로서 시드니는 여름에는 자연 환경을, 겨울에는 IT기술을 기반으로 관광 자원을 갖게 된 셈이다.

최호섭 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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