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금융감독원이 ‘명령휴가 제도’ 도입을 강요해 금융사 임직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 존엄성과 자유 등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내용의 진정서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5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AIG손해보험 노동조합(위원장 김홍헌)은 “금융감독원이 금융사 임직원들의 존엄성과 자유를 침해하고 있으니, 이를 시정해 달라”고 지난 4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AIG손보 노조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입법한 ‘명령휴가’ 제도다. 명령휴가는 금융사고 발생 우려가 높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임직원을 대상으로 회사가 일정 기간 휴가를 명령하고, 이 기간 동안 휴가자의 금융거래 내역, 업무용 전산기기, 책상 등 사무실 수색을 실시해 업무수행 적정성을 들여다보는 제도다. 금융사에서 발생하는 직원들의 횡령·사기 사건을 사전에 막겠다는 취지다. 이 제도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관련기사 휴가 갔더니 책상이 털렸다? 금융사 ‘명령휴가·신용조회’ 논란).
AIG손보 노조는 진정서에서 “금융회사가 명령휴가 제도를 도입·운영하고 있는지 금융감독원이 수시로 확인하고, 이행하지 않은 경우 현장검사와 지도를 예고해 제도를 도입하도록 사실상 강요하고 있다”며 “이는 금융사고 등 범죄행위 유무와 상관없이 금융사에 재직하고 특정업무에 종사한다는 사유만으로 임직원을 잠정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무죄추정 등 최소한의 형사법상 기본원칙을 위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이어 “헌법 제12조는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는 누구든 압수·수색 또는 심문받지 않을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기관인 금융감독원은 스스로도 수색이나 심문행위를 할 수 있는 법률상 근거가 없음에도 일반 회사인 금융사에 위법적인 압수수색 및 심문을 강요하고 있다. 이는 금융사 임직원에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금융감독원이 금융사에 이러한 위법 행위를 강요하는 것은 양심에 반하여 행동을 강제당하지 않을 헌법 제19조 양심의 자유 또한 침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금융감독원이 명령휴가 제도 이행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인권침해 행위가 확대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국가인권위가 시정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국가인권위에 피진정된 것에 대해 아직 연락받은 것은 없다. 명령휴가 제도에 대해서는 지난해 한투 직원 횡령 등이 발생하면서, 금감원에서는 ‘금융사들이 자체적으로 내부통제 시스템을 실시해 사고를 예방해 달라’고 두 차례 공문을 보낸 것뿐이다. 그러면서 명령휴가가 입법 통과돼 시행됐다고 제도를 소개하기만 했다”고 답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명령휴가가 외국 금융권에서 보편적으로 시행되는 제도라고 설명한다. 다만 증권업계는 금융사들이 명령휴가 취지를 확대 해석해 악용하려 한다는 점을 비판했다. 업계 관계자는 “법률 취지는 ‘금융사고 발생 우려가 높은 업무를 수행하는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금융사들은 전 직원 혹은 저성과자, 문제가 있는 직원 등 직무가 아닌 사람을 지적해 명령휴가를 보내려고 하고 있다. 남용 위험을 내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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