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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창조의 기둥이 길게 솟아오른 진짜 이유

먼지 구름이 흩어지지 않고 긴 기둥 모양으로 남게 된 건 자기장 때문

2022.11.07(Mon) 10:13:00

[비즈한국] 지난 글에서 제임스 웹으로 관측한 창조의 기둥의 근적외선 이미지를 소개했는데, 최근 제임스 웹은 똑같은 창조의 기둥을 파장이 살짝 더 긴 중적외선으로 촬영한 새로운 이미지를 공개했다. 근적외선과 달리 중적외선은 별빛을 받아 미지근하게 달궈진 우주 먼지 자체의 흔적을 담는다. 그래서 앞서 봤던 근적외선 이미지와 달리 이번 중적외선 이미지에선 밝게 빛나는 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어둡게 반죽된 우주 먼지 구름만 눈에 띈다. 제임스 웹이 표현한 독특한 색감으로 인해 왠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중적외선으로 촬영한 창조의 기둥. 사진=NASA/ESA/CSA/STScI/Joseph DePasquale(STScI)/Alyssa Pagan(STScI)

 

이 크고 아름다운 먼지 기둥을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긴다. 대체 어떻게 이런 길쭉한 모양으로 먼지 기둥이 서 있게 됐을까? 우주 공간에 사방으로 먼지 구름이 퍼지지 않고 말이다. 별의 항성풍? 초신성 폭발? 이것들만으론 길쭉하게 솟은 기둥 형태를 설명할 수 없다. 이 거대한 먼지 기둥을 빚어낸 진짜 원인은 뜻밖에도 자기장이다. 창조의 기둥은 새로운 별 탄생 과정에서 우주 공간의 자기장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현장이다. 

 

자기장이 새로운 별 탄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창조의 기둥 이야기를 소개한다.

 

독수리성운은 1745년 스위스 천문학자 장-필리프 로이스 드 체소(Jean-Philippe Loys de Chéseaux)가 처음 발견햇다. 하트 모양으로 날개를 펼친 듯한 독수리성운의 가운데에 높이 솟은 먼지 기둥이 있다. 이 기둥은 무려 4~5광년 크기로 솟아 있다. 높은 밀도로 반죽된 먼지 기둥 속에서 8000개가 넘는 뜨겁고 어린 별들이 한창 반죽되고 있다. 그런데 먼지 구름이 우주 공간에 퍼져 있지 않고 하필이면 왜 여기에 이런 두꺼운 코끼리 코 모양으로 서 있게 된 걸까? 

 

오래전 독수리성운 중심에 있던 육중한 별이 빛나며 강한 항성풍과 에너지를 사방으로 토해냈다. 주변의 성간 물질도 빠르게 불려나갔다. 이 과정에서 불려나간 먼지 구름이 가장자리에 쌓이면서 독특한 형체가 만들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조건에서 이런 기둥 모양의 조각상이 만들어진 것인지는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2014년 천문학자들은 새로운 시뮬레이션을 동원해 창조의 기둥이 세워진 과정을 재현하는 시도를 했다. 시뮬레이션은 거대한 가스 구름 속에서 태양 질량 16배를 넘는 별을 탄생시켰다. 표면온도가 무려 3만 도를 넘는 뜨거운 별은 사방으로 강력한 자외선 복사를 방출했다. 그로 인해 별이 태어나고 남아있던 주변의 성간 먼지들이 밀려나가게 된다. 당시의 시뮬레이션은 가스 구름 속에서 탄생한 무거운 별에 의해 불려나간 가스 먼지 구름이 160만 년에 걸쳐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재현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별이 방출하는 자외선 세기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생긴다는 걸 발견했다.

 

가스 구름 속에서 탄생한 육중한 별의 항성풍으로 인해 주변에 먼지 기둥이 형성되는 과정을 재현한 시뮬레이션. 사진=S. Balfour/University of Cardiff


자외선이 너무 약하면 먼지 구름은 살짝 부풀다가 곧바로 다시 수축해버린다. 자외선이 너무 강하면 먼지 구름은 계속해서 빠르게 밀려나가고 가끔씩 가장자리에서 먼지 기둥의 형체도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 경우엔 먼지 구름이 너무 빠르게 불려나가다보니 먼지 기둥의 밀도가 너무 작고 그 안에서 새로운 별이 반죽되기 어렵다. 

 

하지만 너무 약하지도 너무 강하지도 않은 딱 중간의 적당한 세기로 자외선이 방출된다면 사방으로 불려나간 가스 구름 가장자리에서 적당한 밀도로 뭉쳐진 먼지 기둥들이 만들어졌다. 딱 지금의 창조의 기둥처럼 새로운 별이 안에서 태어날 수 있는 적당한 조건의 먼지 기둥을 재현했다. 즉 창조의 기둥처럼 새로운 별들이 태어나는 높은 밀도의 단단하고 큰 기둥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아주 절묘한 자외선의 조율이 필요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무거운 별의 충격파만으론 지금의 아름다운 창조의 기둥의 모습을 모두 설명할 수 없었다. 

 

아름다운 먼지 기둥을 빚어낸 진짜 조각가의 정체는 이후 2018년 또 다른 추가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천문학자들은 하와이 마우나케아에 있는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 망원경(JCMT, James Clerk Maxwell Telescope)을 활용해서 창조의 기둥을 관측했다. 이 망원경은 지름 15m의 서브mm 전파를 관측하는 전파 망원경이다. 서브mm는 수 μm 적외선과 수 m의 긴 전파 사이 중간에 해당하는 빛이다. (이 연구는 0.85mm로 관측을 진행했다.) 새로운 별을 반죽하기 위해 낮은 온도와 높은 밀도로 뭉쳐있는 가스 먼지 구름은 서브mm 전파를 많이 방출한다. 그래서 바로 이 전파 망원경으로 창조의 기둥을 관측했다. 

 

창조의 기둥 속 서브mm 전파를 관측한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 망원경. 사진=East Asian Observatory

 

먼지 구름 속에 자기장이 형성되어 있다면 먼지 입자들은 자기장의 방향을 따라 일제히 정렬된다. 그리고 먼지 입자들이 방출하는 빛은 그 자기장에 수직한 각도로 편광되어 관측된다. 따라서 먼지 기둥의 곳곳에서 새어나오는 전파 빛이 어떤 각도로 편광되어 있는지만 파악하면 먼지 기둥 속 자기장이 어떻게 분포하는지 지도를 그릴 수 있다. 이를 통해 처음으로 창조의 기둥 속 자기장을 관측하는 BISTRO(B-Fields in Star-Forming Region Observation) 관측을 진행했다. 

 

관측 결과는 놀라웠다. 높이 솟은 창조의 기둥 속의 자기장은 뚜렷하게 먼지 기둥이 서 있는 방향을 따라 정렬되어 있었다. 기둥이 서 있지 않은 나머지 주변 우주 공간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먼지 기둥 속 자기장은 평균 170~320μG 정도의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미미한 자기장이 기다란 먼지 기둥의 방향을 따라 정렬되어 있다는 것은 아주 놀라운 사실을 이야기해준다. 

 

BISTRO 관측을 통해 파악한 창조의 기둥 먼지 기둥 속 자기장의 방향.

 

오래전 독수리성운 가운데에서 강력한 항성풍이 퍼져나갔다. 초기의 자기장은 충격파에 나란한 방향으로 분포했다. 사방으로 충격파가 퍼져가던 중 우연히 높은 밀도로 뭉쳐 있던 작은 먼지 반죽 덩어리 하나를 지나게 되었다. 이 덩어리에 가로막힌 충격파는 속도가 느려졌다. 반면 그 옆에 가로막히지 않은 충격파는 그대로 빠르게 지나갔다. 반죽 덩어리 뒤에 숨어있던 먼지 구름은 불려나가지 않고 그대로 길게 기둥 모양으로 남게 된다. 이 과정에서 먼지 기둥 속의 자기장 방향은 기둥처럼 수직으로 변한다. 

 

창조의 기둥이 기둥 모양으로 남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그림. (a) 초기 퍼져나간 충격파가 우연히 높은 밀도의 먼지 덩어리를 지나갔다. (b) 먼지 덩어리에 가로막힌 충격파는 그대로 정체되고 나머지 영역만 빠르게 불려간다. (c) 기둥 모양으로 남게 된 먼지 구름 속에서 자기장의 방향도 함께 수직으로 변하게 된다.

 

만약 먼지 기둥 속에 자기장이 없었다면 기둥은 금방 파괴된다. 먼지 기둥 자체의 중력으로 인해 기둥 속 먼지 입자들은 기둥 가운데로 수축해야 한다. 동시에 사방에 충격파가 지나가고 남은 뜨거운 가스 물질의 압력이 기둥을 사방에서 누르면서 더 가늘게 만들어버린다. 그런데 먼지 기둥 속 수직으로 정렬된 자기장은 그 자기장에 수직으로 기둥 바깥 방향으로 작용하는 자기압을 만들어낸다. 즉 기둥이 자체 중력과 사방에서 짓누르는 가스의 압력을 견뎌내고 쪼그라들지 않게 만들어준다. 

 

오래전 이곳에 불어닥친 충격파가 가장 처음 기둥의 형체를 만들었다. 하지만 단순히 충격파 혼자만으론 지금껏 버티고 서 있는 아름다운 창조의 기둥을 설명할 수 없다. 자기장이 없었다면 먼지 기둥의 형체는 짧게 존재했다가 금방 사라졌을 것이다. 수백만 년 내내 먼지 기둥이 굳건히 서 있게 해준 지구력의 원천이 자기장이 셈이다. 

 

이처럼 우주 먼지 구름 속 자기장은 먼지 구름이 어떻게 반죽될지를 결정한다. 현재 먼지 입자들의 분포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애초에 먼지 기둥이 반죽되고 세워질 때부터 자기장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실제로 최근의 더 정밀한 시뮬레이션들은 별 탄생을 더 정확히 재현하기 위해 자기장까지 고려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별이 어디에서 태어날까, 별의 탄생지는 바로 자기장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도 아주아주 미미한 자기장으로 말이다. 우주 공간의 자기장은 새로운 별 탄생 순간을 가리키는 나침반인 것이다. 

 

참고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ac771https://www.eaobservatory.org/jcmt/2018/06/first-observations-of-the-magnetic-field-inside-the-pillars-of-creation-results-from-the-bistro-survey/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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