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궤도 도는 허블은 우주인이 가서 수리…제임스 웹도 직접 고칠 수 있는 미래를 꿈꾸며
[비즈한국] 허블 우주 망원경과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 20세기와 21세기를 대표하는 두 우주 망원경은 여러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수리 가능성이다. 허블 망원경은 다른 인공위성과 마찬가지로 지구 바로 옆 지구 궤도를 돌고 있다. 그래서 우주인을 보내 직접 수리할 수 있다. 1990년 첫 발사 이후 치명적인 실수가 뒤늦게 발견되었지만 여러 번 수리해 30년 넘게 미션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제임스 웹은 다르다. 애초에 달보다 훨씬 먼 150만 km 거리에 떨어진 라그랑주2 포인트 주변 궤도를 돌고 있다. 아직은 이런 먼 거리까지 살아 있는 우주인을 보낼 수 없다. 발사가 모두 끝나고 망원경이 최종 궤도에 도달한 이후 뒤늦게 치명적 실수가 발견된다면 그냥 그대로 우주 쓰레기가 되어야 한다. 제임스 웹이 첫 관측 이미지를 보내오기 전까지 많은 천문학자들은 허블 망원경 시절 끔찍한 전례가 있었던 탓에 악몽이 재현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다행히 21세기 후배들은 20세기 선배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지금껏 우주에서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아주 복잡하고 정교한 기술이 집약된 제임스 웹은 어려운 과정을 예정대로 잘 수행했다. 그리고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우주의 모습을 보내오고 있다.
그런데 지난 8월 NASA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공식 발표를 전했다. 제임스 웹의 적외선 분광 관측 기기 중 하나인 MIRI의 주요 부품 하나가 작동을 하지 않는다는 소식이었다. 이제 겨우 1년 차인 제임스 웹이 벌써부터 크고 작은 고장이 나는 걸까? 이번에 고장 난 부품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자세하게 소개한다. 문제의 부품은 꽤 재밌는 곳이다.
제임스 웹에서 최근 고장 난 부품은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자세하게 살펴본다.
제임스 웹은 우주 팽창으로 빠르게 멀어지는 우주 끝자락, 그리고 가스 구름 속에서 탄생하는 어린 별과 행성을 관측한다. 그래서 가시광보다 파장이 더 긴 적외선 빛을 관측한다. 제임스 웹은 크게 두 가지 관측을 함께 수행한다. 적외선 빛을 받아 이미지를 촬영하는 이미징. 그리고 적외선 빛을 파장에 따라 더 세밀하게 분해해서 빛 속의 화학 성분을 파악하는 스펙트럼 관측, 바로 분광이다.
제임스 웹은 비교적 파장이 짧은 적외선 영역에서 이미징 관측과 분광 관측을 하는 NIRcam(근적외선 카메라)과 NIRspec(근적외선 분광기) 장비가 있다. 그리고 이보다 좀 더 파장이 긴 적외선 영역에서 주로 분광 관측을 진행하는 MIRI(중적외선 관측 장비)가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곳이 MIRI다.
MIRI가 하는 관측은 크게 네 가지다. 단순하게 빛을 받아 (비교적 저해상도의) 적외선 이미지를 관측하는 이미징, 중앙의 밝은 별빛을 인공 가림막으로 가려서 주변에 숨어 있는 흐릿한 외계행성 같은 천체를 확인하는 코로나그래피, 그리고 저해상도 적외선 분광과 중간 해상도 적외선 분광을 진행한다. 이미지를 얼마나 또렷하게 선명한 분해능으로 찍을 수 있는가는 어떤 파장의 빛으로 관측을 하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사실 이미지의 분해능은 파장이 더 짧은 빛으로 볼수록 더 좋아지지만 아쉽게도 제임스 웹은 관측 대상과 목적으로 인해 파장이 훨씬 긴 적외선으로 관측한다. 제임스 웹이 관측하는 적외선이라는 빛 자체의 한계로 인해 초고해상도 적외선 분광은 사실 불가능하다. 하지만 스피처 우주 망원경과 같은 기존의 다른 적외선 망원경 선배들과 비교해보면 역시 제임스 웹의 다소 아쉬운 적외선 분해능 역시 전례 없는 압도적인 성능이라는 걸 바로 느낄 수 있다.
MIRI 장비는 크게 위아래 두 파트로 나뉜다. MIRI의 입구로 빛이 들어오면 그 빛을 두 방향으로 갈라지게 하는 장치를 지나 절반은 위쪽 파트로, 절반은 아래쪽 파트로 들어간다. 위쪽 파트에서는 적외선 이미징, 코로나그래피, 그리고 저해상도 적외선 분광까지 총 세 가지 작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아래쪽 파트에서만 중간 해상도 적외선 분광을 진행한다. 특히 이번에 고장이 난 곳은 바로 아래쪽 파트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아주 재밌는 사실이 하나 숨어 있다.
우선 짧은 퀴즈. 빛을 알록달록한 스펙트럼으로 분해해서 보려면 무엇을 사용하면 될까? 어릴 때 가끔 햇빛이나 형광등 불빛에 대보면서 무지개를 만들던 프리즘을 얼핏 떠올릴 것이다. 물론 프리즘도 분광에 사용하는 아주 전통적인 장치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임스 웹을 비롯한 최근의 대형 망원경은 대부분 프리즘이 아닌 거울만으로 빛을 쪼갠다! 잠깐. 빛이 여러 색깔의 무지개로 쪼개지는 건 프리즘 같은 두꺼운 유리를 ‘통과’할 때 파장, 즉 빛의 색깔에 따라 굴절되는 정도가 달라서 그런 게 아니었나. 빛이 통과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반사’되는 거울만 갖고 빛을 분해할 수 있다고? 놀랍게도 가능하다.
천문학자들은 프리즘과 똑같은 기능을 하도록 거울을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만든다. 거울 전체를 하나의 매끈한 면으로 만들지 않고 톱날처럼 미세하게 뾰족한 모양이 반복되도록 만든다. 이 뾰족뾰족한 거울 면으로 빛이 날아온다고 생각해보자. 작은 뾰족한 부분에 반사된 빛이 일제히 반사되어 다시 반대쪽 각도로 튕겨 날아간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 빛은 파동의 성질을 띤다. 그리고 파동 여러 개가 섞이면 그 파동이 더 강해지거나 약해지는 간섭을 일으킬 수 있다. 이제 바로 인접한 두 작은 톱날 거울에 반사된 두 개의 빛줄기가 동시에 반사되어 날아가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어떤 한 곳에서 두 톱날 거울면에 반사된 빛줄기를 동시에 바라본다면, 각 톱날 거울면에 반사된 빛이 날아간 경로에는 미세한 차이가 발생한다. 한 빛줄기는 다른 옆의 톱날 거울면에 반사되어 날아간 빛줄기가 날아간 경로보다 더 짧은 거리를 날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 미세한 경로 차이로 인해 각 톱날 거울에 반사된 빛줄기는 복잡한 간섭 패턴을 만들어낸다.
이건 마치 양자역학 하면 절대 빠지지 않는 그 유명한 실험 이중슬릿 실험과 똑같다. 오른쪽과 왼쪽 두 슬릿 구멍을 동시에 통과한 두 빛줄기가 멀리 스크린까지 날아갈 때, 각 슬릿을 통과한 빛줄기가 날아가는 경로는 미세하게 다르다. 그 미세한 경로 차이로 인해 스크린 위에는 굼벵이 등 줄무늬 같은 복잡한 간섭 무늬 패턴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톱날 같은 뾰족뾰족한 거울면으로 인해 간섭 현상이 일어나면 이중슬릿 실험과 똑같이, 빛이 더 강해지는 (보강)간섭을 겪어서 더 밝게 보이는 부분이 생기고, 더 약해지는 (상쇄)간섭을 일으켜 더 약하고 어둡게 보이는 부분이 생긴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 미세한 경로 차이로 인한 간섭 효과를 겪는 정도가 빛의 파장, 즉 색깔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경로 차이라 하더라도 파장이 더 짧은 빛은 그 안에서 더 많이 요동친다. 반면 파장이 더 긴 빛은 그 안에서 요동칠 수 있는 횟수가 적다. 결국 파장, 빛의 색깔에 따라 더 밝게 보이고 더 어둡게 보이는 보강과 상쇄 간섭의 위치도 미세하게 달라진다. 그래서 톱날처럼 뾰족뾰족한 거울면에 빛을 비춰보면 마치 그 위에 길게 무지갯빛 스펙트럼이 아른거리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뾰족한 거울면을 활용해서 빛을 쪼개는 것을 그레이팅 분광이라고 부른다. 현대 천문학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망원경은 프리즘이 아니라 이런 그레이팅 분광 기술을 쓴다.
너무 낯설게 느껴진다고 겁먹을 필요 없다. 사실 그레이팅 분광 원리는 우리가 흔히 경험했다. CD 뒷면을 본 적 있는가? CD 뒷면은 미세하게 올록볼록한 일종의 플라스틱 거울이다. CD 뒷면에 빛을 비추면 알록달록한 무지갯빛이 보인다. 올록볼록한 거울에 반사된 빛이 날아가는 경로의 미세한 차이로 인해 간섭 현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CD 뒷면을 들고 각도를 미세하게 바꿔보면 어떤 때는 붉은 빛이, 다른 때는 노란 빛, 파란 빛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CD에 반사된 빛을 받아들이는 우리 눈을 망원경 검출기라고 본다면, 이처럼 그레이팅 거울의 각도를 미세하게 틀어 검출기로 보고 싶은 특정 파장 영역의 빛만 조준할 수 있다.
제임스 웹의 MIRI는 4.9에서 28마이크론에 해당하는 넓은 범위의 적외선을 찍는다. MIRI 안에 들어온 빛은 총 네 갈래로 쪼개진다. 조금씩 파장이 다른 네 갈래의 빛은 서로 다른 네 개의 적외선 채널로 들어간다. 그런데 여전히 각 채널로 나뉘어 들어가는 빛은 파장 범위가 넓다. 제임스 웹의 비좁은 장비칸에 여러 장비를 욱여넣어야 했기 때문에 단 한 번의 관측 모드만으로는 이 넓은 채널 파장 범위의 3분의 1 정도만 커버할 수 있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각 채널의 빛을 다시 더 작은 세 가지 밴드(Long, Medium, Short)로 쪼개서 들어가게 한다. 바로 이를 위해 제임스 웹은 그레이팅 거울을 미세하게 돌려가면서 목적에 맞는 적절한 파장 범위의 빛이 최종 검출기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한다. MIRI 안에는 그레이팅 거울 네 개가 부착되어 미세하게 돌아가는 휠이 두 개 장착되어있다. 이곳을 DGA(Dichroic Grating Assembly)라고 한다. 이번에 고장 난 부품이 바로 이 두 개의 휠 중 하나다.
지난 8월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으로 예정된 관측을 진행하던 중 휠 하나를 돌릴 때마다 무언가 부하가 더 걸린다는 걸 발견했다. 뭔가 뻑뻑해져서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휠이 돌지 않으면 제임스 웹의 MRS(Medium-Resolution Spectroscopy, 중해상도분광기)는 원하는 파장 범위에 딱 맞는 빛만 검출기에 들어가도록 그레이팅 거울의 방향을 미세하게 컨트롤할 수 없게 된다. 그레이팅 거울을 돌릴 수 없게 되면서 계속 같은 파장 범위의 빛만 검출기에 들어오는 상황이다.
보통 우주에서 홀로 작동하는 우주 망원경이나 탐사 로버들은 이런 문제가 발견되면 전체 작동을 멈추고 재부팅을 하는 안전 모드에 들어간다. 하지만 제임스 웹의 경우는 조금 다른 프로세스로 돌아가고 있다. 다행히 현재 상황을 보면 MRS 관측에 써야 하는 휠 두 개 중 하나만 잘 돌아가지 않을 뿐, 나머지 휠과 다른 관측 장비들은 모두 문제없이 잘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 전체를 다 재부팅하는 안전 모드를 하진 않았다. 고장 난 휠을 사용해야 하는 MRS 관측 일정만 중단하고 다른 나머지 관측은 모두 정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번 고장 사건 이전에도 제임스 웹 주경 하나에 미소 유성체가 아주 빠른 속도로 충돌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그때도 거울 자체가 깨지거나 관측을 하지 못하는 정도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이번 고장 역시 미소 유성체가 휠을 때리면서 문제가 된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럴 확률은 낮아 보인다. 외부에 크게 노출된 거울 주경과 달리 MIRI를 포함한 광학 분석 장비 대부분은 망원경 몸체 안에 잘 숨어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웹의 고장은 허블 망원경 때처럼 우주인을 보내서 바로 수리할 수는 없다. 천문학자들은 지상에 만들어놓은 제임스 웹의 실측 모형과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동원해 이번 고장의 원인을 파악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애초부터 휠의 베어링에 과부하가 걸리도록 설계 제작된 것인지, 아니면 반복 사용하면서 베어링이 빡빡해지는 요인이 생긴 것인지. 우주에 홀로 떠있는 망원경 혼자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명령을 보내야 할지. 수천만 가지 가능한 답을 미리 살펴보는 영화 속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여러 다양한 방안을 열심히 검토하고 분석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임스 웹이 작동하면 허블 우주 망원경은 아예 쓸모없어질 거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제임스 웹이 놀라운 데이터를 보내오고 사소한 고장이 생겨도 허블은 꿋꿋하게 33년째 계속 우주를 바라보고 있다. 지금까지 혹사당한 역사를 봤을 때 2030년 정도가 되면 허블은 더 이상 궤도를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원래 NASA는 허블의 속도를 강제로 줄여서 궤도를 낮추고 지구 대기권으로 추락시킬 계획이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눈이 되어준 블은 지구 대기권 속에서 하얀 별똥별이 되어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미션을 끝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최근 스페이스X에서 은퇴를 앞둔 허블 망원경의 수명을 더 연장할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이 계획이 실현된다면 허블은 2030년을 넘어 앞으로도 계속 40년, 50년 넘게 미션을 이어갈 수 있다. (결국 허블의 은퇴는 없던 일로…?)
허블의 뒤를 이어 더 멀고 외로운 곳에서 궤도를 돌며 더 깊고 어두운 우주를 바라보는 후배 제임스 웹. 제임스 웹도 결국 허블처럼 세월이 지나면서 크고 작은 잔고장이 계속 생기게 될 것이다. 다행히 아직은 망원경 자체의 운명을 걱정해야 할 만한 큰 고장은 없었다. 하지만 예정된 수명 10년이 가까워질수록 제임스 웹도 분명 치명적인 고장과 오류를 여러 번 겪게 될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제임스 웹에게 큰 시련이 닥쳐온다면, 부디 그때는 인류가 제임스 웹이 있는 라그랑주 2 포인트까지 직접 날아가 망원경을 손볼 수 있기를 바란다.
허블을 발사할 때만 해도 다 죽어가는 우주 망원경을 되살릴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기에 망원경 안에 지구 대기권으로 추락시키는 장치를 마련해두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추락 장치는 영원히 쓸모없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은 조금씩 고장 나는 제임스 웹을 그저 지구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응원할 수밖에 없지만, 머지않아 제임스 웹까지 직접 갈 수 있게 된다면 그간 생긴 크고 작은 고장을 한꺼번에 치료할 순간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참고https://jwst-docs.stsci.edu/jwst-mid-infrared-instrument/miri-instrumentation/miri-optics-and-focal-plane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