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 뒤로 곤충들에게 꿀 베푸는 ‘베풂의 꽃’이기도
꽃향유(꿀풀과, 학명 Elsholtzia splendens Nakai)
가을이 깊어간다. 이제 꽃 만나기도 쉽지 않은 계절이다. 산과 들에 화려했던 꽃은 사라져가고 대신에 빨강, 파랑, 노랑 등 단풍 물결이 쓰나미처럼 휩쓸더니만 단풍마저 떨어져 나가 앙상한 빈 가지만 남아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삭막한 들판과 산자락에는 이리 뛰고 저리 나는 메뚜기, 벌, 나비도 자취를 감추어 천지에 그득한 푸름과 활력이 차차 쇠하고 시들어 가는 조락(凋落)의 계절이다.
이처럼 깊어가는 가을의 짧은 햇살 속에서도 곱게 피어난 꽃향유. 양지바른 숲 자락에서 도란도란 무리 지어 피어나는 꽃향유가 새삼 곱게 눈에 띌 수밖에 없는 계절이다. 한해살이 생명을 다해가는 줄점팔랑나비가 마지막 꿀을 빠는 듯 꽃향유에 빠져 떠날 줄을 모르고 있다. 이 나비도 이제 알을 낳고 한해살이를 마감하기 직전 마지막 순간까지 질긴 생명을 위해 꿀을 빨고 있다.
강렬한 향과 빛깔로 가을을 맞이하며 한해살이 곤충의 마지막 순간까지 꿀을 제공하며 한 해의 가을을 떠나보내는 꽃, 이름도 ‘꽃이 아름다운 향유’라는 의미의 꽃향유이다. 모두가 떠나는 만추의 계절에 화려한 보랏빛 꽃을 무더기로 피워내는 꽃, 향기가 좋고 강렬하여 꽃말도 ‘가을 향기’이다. 꽃과 잎, 줄기에서 나는 향이 맑고 강렬하다. 가을 늦게까지 보랏빛 꽃을 피우며 마지막 생을 다해가는 곤충들에게 꿀을 제공하는 꽃향유는 꽃도 곱지만, 꿀도 많아 ‘베풂의 꽃’이라 할 수 있다.
푸른 이파리 단풍으로 떠나고 앙상한 빈 가지에 드러난 하늘도 차가운데 저무는 한 해를 조용히 바라보며 서릿발이 내려앉는 늦가을에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버티는 꽃, 한 해의 끝자락까지 고운 꽃을 피워 꿀과 향기를 제공하는 베풂의 꽃, 이 꽃을 볼 적마다 또 한 해가 저물어가는구나 하는 아쉬움과 마지막까지 곧고 의연하게 꽃 피워 벌, 나비를 돌보는 보살핌에서 맑고 고운 애린의 정을 느낀다. 보랏빛 화려함이 눈부시고 청아한 향은 강렬한데 햇살은 짧아만 가고 날은 차가워만 간다. 어느새 영광의 시절은 지나가고 조락의 시기만 다가오니 화려함이 오히려 애처로워 보이기도 하는 꽃이다.
꽃향유는 원산지가 우리나라인 토종 야생화이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에 자생하는 1년생 초본으로서 고도가 높지 않은 산지와 들녘의 햇볕이 비교적 잘 드는 곳에 잘 자란다. 꽃은 분홍빛이 나는 자주색으로 줄기의 한쪽으로만 빽빽하게 뭉쳐서 핀다. 한쪽으로 뭉쳐서 피어 칫솔 같기도 하고 곱게 잘 땋은 댕기 머리 처녀의 댕기꼬리처럼 단정한 묶음의 꽃이다. 가을에 꿀벌에게 꿀을 제공하는 밀원식물이며, 어린순은 나물로 식용한다. 여름철에 끓여 차로 마시면 열병을 다스리기도 하고 위를 따뜻하게 해주는 효능도 있다. 이러한 효능 때문에 각종 식품의 향료제로 쓰이기도 하며 한방에서는 감기, 오한 발열, 두통, 구토, 설사, 전신 부종 등을 치료하는 약으로 쓰이기도 했다.
꽃향유와 형태적으로 매우 비슷하며 전국에 분포하고 있는 향유가 있다. 그러나 꽃향유는 중부 이남에 분포하며 향유보다 꽃차례 길이와 폭이 훨씬 크다. 꽃 색깔도 연한 보랏빛의 향유보다 붉은빛이 강한 자주색 또는 보라색으로 훨씬 진하고 화려하여 서로 구분된다.
박대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