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문 S 씨, 증권맨 최우혁 씨 등 고소당하면서도 결정적 역할
지난 7일 ‘청담동 주식부자’로 알려진 이희진 씨(30)의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영장을 발부한 서울남부지법 김선희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이 있고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구속영장 발부 이유를 밝혔다. 검찰에 발표에 따르면 이 씨도 일부 혐의는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씨가 지난 7일 오후 서울남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후 법원 건물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이 씨 사건은 검찰의 수사와 체포 그리고 구속영장 발부까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검찰 수사 이전에 이 씨를 구속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상 이들이 이 씨 ‘저격’을 주도했고, 체포까지 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모두는 이 씨에게 사기를 당하지도, 피해를 본 적도 없지만 발 벗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문가 S 씨와 최우혁 동부증권 차장은 이 씨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최 차장은 피해자모임 발대식 장소를 제공했고, S 씨는 피해자모임에 다각도로 도움을 줬다. 모두들 끝까지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비즈한국>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투자자문가 S 씨
―손해를 입은 것도 없고, 사기를 당한 적도 없는데 나선 이유가 있나.
“원래 유사투자자문을 하는 나로서는 이 업계를 더럽히고 사기 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을 해왔다. 이희진이라는 사람이 서른 살에 주식으로 2000억 원을 벌었다길래 ‘이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계좌를 공개하라며 공개적으로 나섰다.”
―같은 업종에 있기 때문에 이희진 씨를 저격하면서 오해도 샀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주식은 무조건 나쁜 것으로 보는 선입견이 많다. 하지만 나는 이희진 씨와 달리 10년간 주식으로 돈을 번 계좌를 공개하면서 사업을 해왔다. 그런데 이 씨를 공격하자, ‘경쟁업체니까 이희진의 파이를 빼앗아먹기 위해서 저런다’, ‘너도 똑같은 놈 아니냐’ 이런 얘기를 들으며 참 힘들었다.”
―이희진 씨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까지 당했다. 우리나라 정서상 ‘피곤하게 산다’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맞다. 제일 많이 듣는 얘기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공격이) 이 씨가 처음도 아니다. 주식으로 수백억 원을 벌었다면서 차 자랑하는 또 다른 사람과도 5년째 싸우고 있다. 이유가 있다면, 내가 주식업계에서 정말 힘들게 올라왔다. 그래서 가짜 광고로 주식고수라 칭하는 사람들 보면 피가 솟구친다.”
―(이희진 씨와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 씨가 자신의 SNS에 경찰 사이버수사대에 고소했다고 하는 글을 올렸을 때다. 나는 그걸 보고 ‘이제 제대로 한판 붙어봐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공격의 수위는 (그때 이후로) 더 거세졌다.”
―가장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이나 힘이 됐던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부산의 B 씨가 많은 자료를 제공해줬다. 피해자모임 박봉준 대표도 무려 2년간 싸워왔다. 박 대표가 이끌어가는 동안 회원들이 배신하고 이 씨와 합의를 보기도 했다. 박 대표는 이희진 씨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당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뛰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 나도 끝까지 함께하게 됐다. 최우혁 동부증권 차장 역시 나와 함께 명예훼손 고소를 당했다. 그래도 우리는 끝까지 서로 믿고 같이 노력했다. 좋은 친구가 생긴 거 같다.”
―이희진 씨는 결국 구속됐다. 만족하는가.
“이 씨가 구속되면서 유사투자자문사가 또 한 번 도마에 오르며 사기꾼 취급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주식 관련 사업이 촉망받는 사업이 되리라 믿고 10년 가까이 꾸준히 투자하고 정직하게 해왔는데 결국은 또 사기꾼 집단같이 보이는 게 아쉽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게 된, 우리나라의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가.
“검증을 안 하고 믿어준다. 인간관계에서는 검증이 껄끄러워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주식은) 많은 사람들의 돈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철저한 검증을 미리 해야 한다. 경제TV는 물론 각종 언론도 주식 부자라고 홍보하기 전에 주식으로 돈 번 계좌를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들을 도우면서 느낀 점도 있다. 이희진에게 당했을 뿐이지, 비슷한 한탕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았다. 이런 점들은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최우혁 동부증권 차장
▲ 최우혁 씨. 사진=최우혁 씨 제공 |
―이희진 ‘저격수’로 뛰어든 계기는.
“제도권 증권맨으로 살면서 이희진 씨 같은 유사투자자문업자가 자신을 증권맨이라고 사칭하며 일말의 책임감도 없이 조작한 정보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2년 전부터 그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우는데, 내 눈에는 딱 봐도 꾼이라는 게 보였다. 증권맨을 사칭하면서 진짜 증권맨 이미지를 망치는 걸 용납할 수 없어서 의혹 제기를 시작했다. 또한 진짜 피해자인 박봉준 피해자모임 대표를 만나 실제 피해사례를 접하고는 이 씨가 더 큰 괴물이 돼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기 전에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본격적인 폭로를 시작하게 됐다.”
―이희진 씨는 고소·고발로 제보자들을 위협했는데.
“이희진 씨에게 협박 아닌 협박성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그에게 제기되는 의문들에 증권맨의 입장으로 조심하라고 글을 썼다가 이 씨에게 명예훼손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실명을 밝히고 이 씨 관련 글을 썼다. 그 중 직접 밝히기 곤란한 일부 제보내용을 올리기 곤란해 페이스북 익명 유저 A 씨와 공유했었다. 그러나 A 씨는 다른 사람과 나 사이를 이간질하고, 인신공격을 하며 피해자의 정보를 흘리고 다녔다. A 씨 때문에 부모님에게 협박 문자가 가는 등 가족에게까지 피해가 가니 괜한 행동이었나, 섣부른 일이었나 후회가 되기도 했다. A 씨는 사건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자 다시 계정을 열어 자신의 공로인 듯 말했다. 어찌 보면 이 씨만큼 끔찍한 인간으로 기억에 남는다.”
―가족의 걱정이 컸을 것 같다.
“아내와 부모님이 많이 걱정했다. 이 씨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다 정말 피곤하게 살게 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걸 알면서도 모두 방관만 한다면 세상에 이 씨 같은 사기꾼이 판치더라도 그걸 바로 잡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된다. 거창하게 말할 것은 못 되지만, 누군가는 잘못된 걸 잘못이라 말하고 그 잘못을 모두에게 알려 바로잡도록 하는 것이 공익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삶이 피곤해져도 끝까지 잘못된 걸 알리는 사람이 있어야 공정한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이 씨가 나를 고소하러 가는 날 경찰서에서 보란 듯이 사진을 찍어서 올린 게 불과 두 달 전이다. 그런데 며칠 전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인 사진을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 역시 대한민국에 아직 정의는 살아있구나 하고 느꼈다.”
―‘제2의 이희진’을 막는 방안이 있다면.
“또 다른 이희진은 계속 나온다. 지금도 이 씨 구속기사가 연일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도 온라인 기사 광고 면을 보면 기사를 가장한 유사투자자문업자들의 허위과장광고가 홍수를 이룬다. 광고수입이 크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지만 전혀 검증 되지 않은 수백억을 벌었다는 허황된 얘기를 버젓이 해도 전혀 규제를 받지 않는 건 잘못된 것이다. 반면 제도권인 증권사는 온라인 블로그에 직원의 개인연락처나 이름조차 올릴 수 없을 정도로 규제가 엄격하고 금융투자협회에서 매우 까다로운 심의절차를 올려야만 광고를 게시할 수 있다. 유사투자자문업자들도 제도권 수준의 까다로운 광고심의체계를 갖춰야 한다. 별다른 자격 요건 없이 만들 수 있는 신고제도 허가제로 바꿔야 유사투자자문업계가 ‘검증 안 된 사기꾼들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결정적인 힘은 무엇이었나.
“가장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던 건 누가 뭐래도 피해자모임 대표인 박봉준 씨였다. 몇 년간 모아온 피해자들의 자료를 끈질기고 체계적으로 집대성해준 덕분에 의혹 제기 수준이던 것이 근거가 탄탄해져 폭발력을 갖게 됐다. 그 자료가 언론과 당국으로 들어가 큰 이슈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온라인상에서 저격할 때 전우처럼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건 ‘김간장’이라는 익명을 사용하는 분이다. 그분이 이희진 의혹을 잘 정리해서 일본 야후블로그에 올려줬는데, 해외이기 때문에 게시 중단 요청이 통하지 않았고, 꼼꼼한 분석을 통해 수준 높은 의혹 제기를 해줘 널리 알려지게 됐다. S 씨와 그 밖에 숨은 조력자들, 수많은 제보와 작은 의혹도 놓치지 않고 알려준 익명 제보자들의 공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이희진 씨는 결국 구속됐다.
“대한민국 검찰이 발 빠르게 움직여준 덕분에 지금 현 상황은 매우 만족스럽다. 두 달이 넘는 긴 시간동안 싸운 게 헛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희진 씨에게 당한 피해자들의 연령대가 대체적으로 높다. 그러다보니 금융지식이 취약한 분들이 많고, 귀가 얇은 분들도 있다. 수십 명의 피해자들에게 이런 어설픈 사기를 당했느냐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하는 대답이 방송에 몇 년 동안 나오던 사람인데 공신력이 검증된 사람이니 당연히 진짜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검증 없이 방송 출연을 통해 그에게 공신력이라는 힘을 실어준 방송사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피해자들을 보며 측은하기도 했지만 실망스러웠던 점은 모두들 너무 수동적이라는 것이다. 박봉준, 배상범 씨 등 극히 일부의 피해자가 온갖 고생은 다 하는데, 그 많은 피해자 수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수임료가 걷히지 않을 정도로 나 몰라라 구경만 하는 사람이 많았다. 피해자모임에 나와서 또 다른 주식전문가를 추천하는 분들을 보며 사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싶은 심정도 들었다. 제발 주식투자는 검증 안 된 업자들 말고, 제도권에서 하시라. 제도권은 금감원, 거래소의 철통같은 규제를 받고 있다. 법규가 보완돼서 투자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을 때까지 또 다른 이희진이 포착된다면 계속 폭로할 계획이다. 이미 몇몇을 포착한 상황이다.”
김간장(익명) 페이스북 사용자
―이희진 씨를 적극적으로 공격했다.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누가 봐도 꾼인 사람이 거짓말로 사업을 영위하는데 아무도 제동 거는 사람들도 없고 언론도 방조하는 것 같아 두고 볼 수 없었다. 이 씨의 사업이나 주식전문가라는 것에 의혹을 제기해 피해자를 줄이고 싶었다.”
―익명으로 활동했다.
“실명보다는 여러모로 익명으로 글 쓰는 부분이 내 사생활에 지장을 덜 초래할 것 같아 익명으로 글을 썼다. 개인으로서 제재받지 않고 문제 제기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익명으로 글을 썼는데, (대단한 것도 아니고) 이 씨의 의혹들은 남는 시간에 찾아내 올린 거라 굳이 실명으로 나서야 할 이유도 없었다.”
―해외 사이트에서 글을 올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쓴 글들이 이 씨 측의 요청으로 계속해서 삭제당해 삭제 요청을 하지 못할 공간이 필요했다. 그게 해외 계정이었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거의 100개가 넘는 많은 글을 썼는데, 이 씨 측의 요청으로 자꾸 삭제되는 바람에 일일이 다시 쓰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지우지 못하게 하기 위해 글 올리는 곳을 야후블로그나 페이스북으로 옮겼다. 페이스북으로 신상을 알려고 하거나, 댓글로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김태현 기자 toyo@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