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삼 전 대통령 |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국내 내로라하는 재벌 총수들과의 인연이 주목받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재벌 총수에게 기업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전 군사정권 때와 달리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낸 첫 번째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정권에 정치자금을 대고 특혜를 받아 성장해온 국내 대기업들의 입장에서 김 전 대통령이 부담스러웠을 수밖에 없다.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이 가장 먼저 주목되는 기업인으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다.
이 회장은 그룹 총수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1995년 4월 베이징에서 “기업은 2류, 관료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정치권을 겨냥해 작심발언을 이후 문민정부에서 한동안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 회장은 1996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정치자금 100억 원을 전달한 혐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김 전 대통령은 이 회장 등 경제인 23명을 특별 사면 복권시켰다. 이 회장은 김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 첫 번째 사면·복권을 받은 재계 인사다.
▲ 이건희 회장 |
정치는 4류라 한 발언의 바탕은 삼성자동차 건과 관련돼 있다. 이 회장은 1993년 8월 자동차 사업에 진출할 뜻을 보인 뒤 이듬해인 1994년 4월 일본 닛산자동차와 기술제휴 협약서를 체결하며 이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해 12월 삼성그룹의 자동차 사업진출을 허용했지만 현대차 등 기존 국내 자동차회사들이 크게 반발하자 기존업체의 현직 및 앞으로 퇴직자 가운데 2년 이상 경과하지 않은 인력을 채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삼성그룹 측에 불리한 요구조건을 달았다.
삼성그룹은 이 때문에 국내에서 자동차 기술력을 지닌 인재를 구하지 못했고 이를 완하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삼성그룹을 대표해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이는 이 회장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었다.
▲ 정주영 명예회장 |
김 전 대통령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도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정 명예회장은 1992년 대선 당시 통일 국민당 후보로 출마해 김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다.
정 명예회장은 대선 패배 직후인 1993년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이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를 두고 당시 재계에서는 보복수사라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이듬해 정 명예회장은 사면 복권됐지만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는 지속됐다.
그후 김 전 대통령은 2001년 정 명예회장이 타계하자 그 빈소를 찾아 조문하며 사후 화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