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를 먹는 우리나라 신생아의 8%가 환경호르몬(내분비계장애추정물질)의 일종인 DEHP(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를 하루 섭취제한량 이상 먹는 것으로 밝혀졌다.
DOP라고도 불리는 DEHP는 장난감 등 플라스틱 제품을 유연하게 하는 가소제로 널리 사용되는 물질이다. DEHP는 또 세계야생보호기금(WWF)이 환경호르몬 67개 물질 중 하나로 분류했으며 사람에게 암ㆍ생식기능 장애 등을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7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최경호 교수팀은 지난 2012년 4∼8월 서울 등 전국 4개 도시 5개 대학병원에서 분만한지 1개월 된 산모 62명의 모유에서 DEHPㆍDnBP 등 환경호르몬 물질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연구결과(한국에서 모유의 프탈레이트 유도체 농도: 프탈레이트 노출 정도와 모유를 먹은 신생아의 잠재적 위험 평가)는 국제 학술지(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 최근호에 발표됐다.
최 교수팀의 연구 결과 신생아가 모유를 통해 매일 섭취하는 DEHP의 양은 아이의 체중 ㎏당 0.91∼6.52㎍ 수준이었다.
신생아는 또 모유를 통해 프탈레이트의 일종인 DnBP(디니트로부틸프탈레이트)를 하루에 자신의 체중 ㎏당 평균 0.38∼1.43㎍씩 섭취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 교수는 이를 근거로 “모유를 먹은 62명의 신생아 중 5명(8%)은 하루 섭취제한량을 초과하는 DEHP를 섭취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4명(6%)은 DnBP를 1일 섭취제한량 이상 섭취하는 것으로 추산됐다”고 지적했다.
DEHP는 국내에서 약 20년 전에 대형 식품 파동을 일으켰던 물질로도 유명하다. 당시 유아용 분유에 DEHP가 들어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전국을 뒤흔들었다.
또 미국에선 DnBPㆍ디이소부틸프탈레이트(DiBP)에 임산부가 과다 노출되면 태어난 아이의 지능지수(IQ)가 또래보다 6∼7점 낮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미국 공공과학도서관의 온라인 학술지인 ‘플로스원’(PLOS ONE)에 지난해 10월 발표됐다.
최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를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산모가 플라스틱 재질의 용기 사용을 가급적 삼가고 랩 등 1회용 식품포장과 전자레인지를 이용한 조리를 줄이면 모유 내 DEHPㆍDnBP 등 프탈레이트 함량을 대폭 낮출 수 있다”고 조언했다.
게다가 프탈레이트는 인체 내에서 생물학적 반감기(10∼12시간)가 짧아 산모가 약간만 주의해도 아이에 미치는 악영향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07년 금산사 템플 스테이(사찰 체험)에 참가한 성인 25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4박5일간의 사찰음식 섭취 후 체내 프탈레이트가 급감했다는 사실도 참고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프탈레이트의 유해성이 알려지면서 미국 정부는 장난감에서 프탈레이트의 사용을 금지했다. EU(유럽연합)는 프탈레이트가 사용된 완구와 어린이용 제품의 생산과 수입을 불허했다.
우리 정부는 식품 용기에서 프탈레이트 사용 금지와 함께, 플라스틱 완구ㆍ어린이용 제품에서 DEHPㆍ디부틸프탈레이트(DBP)ㆍ벤질부틸프탈레이트(BzBP) 등 프탈레이트 3종의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프탈레이트를 비롯해 비스페놀Aㆍ노닐페놀 등 환경호르몬 의심물질들의 안전성 문제가 부각되자 최근 미래창조과학부는 환경호르몬 대체물질 개발에 나섰다.
미래부의 3년 과제(총 연구비 65억원)인 ‘환경호르몬 대체물질 개발 사업단’ 단장인 한양대 생명과학부 계명찬 교수는 “프탈레이트가 든 장난감이나 용품 등을 아이가 입으로 빨 때 침과 접촉돼 아이 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며 “프탈레이트를 대체할 안전한 물질을 개발해 상품화하는 것이 우리 사업단의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