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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법 개정, 꼭 알아둬야 할 것은?

차명계좌 소유권 놓고 분쟁 소지 있어 대비해야

2014.05.12(Mon) 08:48:35

   
▲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


지난 2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법(이하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 1993년 도입된 금융실명제는 실소유주와 계좌 명의자가 합의하면 차명거래가 허용됐다. 지난해 검찰 수사에서 이재현 CJ회장이 500개 정도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탈세한 사실이 적발됐지만 배임·횡령 혐의만 적용했을 뿐, 차명계좌 거래 자체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못했던 이유다. 이번불법 목적시 처벌 강화돼

1993년 김영삼 정권 때 제정됐던 금융실명제법의 핵심은 홍길동·성춘향과 같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이름으로 계좌를 만드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었다. 당시 금융실명제법은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차명계좌를 개설했을 때만 처벌할 수 있었다. 실소유주와 계좌 명의자가 합의하면 차명거래가 허용된 것. 대법원 판례도 이런 경우 실소유주의 소유권을 인정해왔다. 탈세 등의 목적으로 차명하지만 개정된 금융실명제법에 따르면 계좌 명의자가 합의했더라도 불법적인 목적으로 차명계좌를 개설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 이 경우 실소유주와 명의자 그리고 차명계좌 개설을 도운 금융기관 관계자에 대해 모두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내릴 수 있다.

과태료도 대폭 상향 조정됐다. 금융회사 임직원은 불법 자금거래 중개 시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벌을 받는다. 기존엔 500만 원이하 과태료가 부과됐지만 입법 과정에서 6배로 상향 조정된 것이다.

선의의 차명계좌는 허용

반면 부모가 아이 이름으로 통장을 만드는 경우, 종친회나 동창회 명의의 통장은 범죄 목적이 아니라면 허용하기로 했다. 즉 불법적인 차명거래만 처벌하겠다는 것.

한 금융전문가는 “이번 개정안은 열거주의 방식을 취했다. 즉 불법적인 몇 가지 사항을 명시해 놓고 나머지는 허용하는 방식을 취했다는 거다. 이를 네거티브(negative)방식이라고도 한다. 쉽게 말해 ‘열거된 것만 안 되고 나머진 다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차명거래 금지의 이유는 차명계좌가 비자금 조성, 조세 포탈, 자금 세탁 횡령 등의 탈법 행위나 범죄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이라며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불법·탈법 행위나 범죄 수단에 연루된 계좌는 모두 처벌 대상이 되므로 실명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거래 편의나 선의의 목적을 위한 차명 계좌는 굳이 실명 전환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금융전문가는 법 개정에 따라 차명계좌 소유권 분쟁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앞으로 차명계좌의 소유권은 명의자에게 있으므로 소유권 분쟁 시 실소유자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계좌 입출금 내용, 차용증 등 증거서류를 갖춰 두는 것이 좋다는 것.

예를 들어 A란 사람이 B의 이름으로 통장을 개설해 자기돈 200만 원을 입금했다고 가정하자. 이런 행위는 사실상의 증여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B가 200만원을 인출해 가져갔다. 이 때 A는 자기 돈이라고 법정에서 다툴 수 있다. 이유는 ‘증여간주’가 아니라 ‘증여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증여간주란 반대되는 증거 제출을 허용하지 않고 법률이 정한 효력을 당연히 생기게 해 재판 등으로 다툴 여지가 없다. 반면 추정이란 확실하지 않은 사실을 반대 증거가 제시될 때까지 진실한 것으로 잠정 인정해 법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불법 차명거래 원천차단 못해

불법적인 차명계좌의 경우에만 처벌하겠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불법성이 규명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도 된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여기에 맹점이 있다고 말한다.

한 금융전문가는 “야당 및 시민단체는 개정된 법이 증여추정의 원칙을 적용한 것에 대해 매우 아쉬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탈세 등의 목적으로 차명계좌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재벌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정에서 다투는 것이 가능하다면 징역이나 세금 납부 등 처벌을 받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재벌들이 자신의 돈을 찾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재벌에게이어 “개정안 통과로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에서처럼 이건희 회장의 재산을 관리하던 재무라인 임원들이 1199개의 차명계좌를 개설하는 일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금융회사 및 임직원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 자녀 이름으로 차명계좌를 낼 때도 3000만원이 초과하면 증여세를 내야해 재벌들이 차명계좌를 이용하는 일은 예전보단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실효성은 있을 거라는 입장을밝혔다.

법안 발의에 참여했던 민병두 의원은 “이번 개정안은 사후적 처벌을 강화한 것이다. 원래 법안은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춘 것이어서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러나 개정된 법이 탈세 목적의 차명 계좌를 막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민 의원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 발의한 법안은 원칙 허용, 예외 금지였다. 즉 동창회 등의 선의의 목적을 위한 차명거래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불허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통과된 법안은 탈세나 범죄 목적 등을 제외하곤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차명거래의 불법성 여부도 재판을 통해 판단해야 한다. 때문에 불법 차명 거래를 사전에 차단하지는 못할 거라는 관측이다.

반면 다른 시각도 있다. 한 전문가는 “야당 주장대로 원칙 금지, 예외 허용으로 간다면 거래 편의를 위해 차명계좌를 이용하려는 일반인들의 불편이 심화될 것이다. 무엇보다 법안이 소수의 재벌을 통제하기 위해 규제에 치우치게 된다면 은행 거래가 줄어드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경모 기자

chosim34@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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