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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이야기③]-프라다의 탄생

2014.04.24(Thu) 17:11:44

설립자 마리오 프라다(Mario Prada)의 이름에서 유래한 프라다는 1913년 이탈리아 밀라노에 오픈한 가죽제품 전문매장인 ‘프라텔리 프라다(프라다 형제)’에서 시작되었다. 마리오 프라다는 설립과 동시에 사피아노 가죽 개발에 힘썼다. 사피아노는 이탈리아어로 '철망'을 뜻한다. 사피아노는 소가죽의 부드러운 부분을 선택하여 그 위에 빗살무늬 또는 철망무늬 스탬프로 패턴을 넣은 후 다시 광택을 내서 만든 것이다. 이 때, 심혈을 기울여 스탬핑 공정이 진행되는데 70~75도의 온도에서 10~15초 만에 이루어진다. 이렇게 완성된 가죽은 내구성이 뛰어나고 오염에 강한 특징이 있다. 이러한 사피아노의 가죽 개발 성공으로 1919년 프라다는 이탈리아 왕실의 가죽 및 의류 제품의 공식 공급 업체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이후 사피아노 가죽은 지갑, 신발, 액세서리, 프라다폰 케이스 등 현재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또한, 미란다커가 5~6개 컬러별로 갖고 다니는 모습이 사진 찍히면서 ‘프라다 미란다커백’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 경기가 침체되면서 프라다는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마리오 프라다는 그의 아들인 알베르토 프라다(Alberto Prada)에게 가업을 물려주려 했으나 알베르토 프라다는 관심이 없었다. 결국 1958년 마리오 프라다가 사망하자 그의 딸인 루이자 프라다(Luisa Prada)가 가업을 물려 받았다.

1977년 마리오 프라다의 손녀이자 루이자 프라다의 딸인 미우치아 프라다가 프라다를 이어받았다. 1949년에 이탈리아밀라노에서 태어난 미우치아 프라다는 패션 디자인을 전혀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디자인 팀을 꾸려 나갔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스타일을 디자인 팀에 전한 다음 소재와 재단법을 함께 찾는 방식으로 디자인 팀을 운영했다.

1978년 들어 미우치아 프라다는 파트리치오 베르텔리(Patrizio Bertelli)와 동업 관계를 맺는다. 파트리치오 베르텔리는 핸드백, 트렁크 등을 영국시장에서 완제품 형태로 수입해 오던 미우치아 프라다의 관행을 깨고, 독자적인 스타일의 제품을 개발하라고 조언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그의 조언을 받아들여, 독자적인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가죽 라인을 개발했다. 이후 파트리치오 베르텔리가 프라다의 경영을 맡고, 미우치아 프라다가 디자인을 전담하는 2인 체제가 갖춰졌는데, 이들은 1987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1979년 미우치아 프라다는 군용 물품 공장에서 낙하산이나 텐트용으로 사용되던 방수천의 일종인 포코노 나일론을 이용한 심플한 디자인의 가방을 내놓았다. 당시 대부분의 가방은 가죽 소재를 사용해 만드는 것이 정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는데, 패션을 전공하지 않은 미우치아 프라다는 기존의 고정 관념을 깨고 검정 색상의 나일론 소재를 사용했다. 그녀는 이 소재를 활용하여 1979년에 백1985년에는 나일론 천을 소재로 ‘프라다 클래식 핸드백’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과 높은 실용성으로 출시 첫날부터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 제품의 인기로 인해 프라다는 명품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다. 1987년 프라다는 여성용 기성복 컬렉션을 출시하면서 길게 늘어뜨린 허리선과 가는 벨트, 원색이 강조된 깔끔한 원단 등을 선보였는데, 이 제품은 프라다 의류의 트레프라다의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자, 프라다는 1993년 세컨드 브랜드로 10~20대 여성들을 겨냥한 ‘미우미우(Miu Miu)’를 출시했다. 이 브랜드 이름은 미우치아 프라다의 애칭을 딴 것이다. 1995년부터 프라다는 젊은 남성을 위한 ‘프라다 워모(Prada Uomo)’, 언더웨어라인, 스포츠라인를 차례로 내놓았다. 1998년 프라다 스포츠 패션쇼에서 최초로 정장을 입은 남성 모델에게 운동화를 신겼는데, 이때 선보인 프라다 스니커즈는1990년대 프라다는 일본에서 특히 많은 인기를 얻었다. 전 세계 40개의 매장 가운데 20개가 일본에서 운영되었고, 프라다의 홈페이지는 영어와 일본어 2개 언어로만 서비스가 될 정도였다. 이는 당시 프라다가 일본 제조 공장 여덟 곳에 하청을 주면서 일본인들에게 좀 더 친숙한 브랜드로 다가갔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프라다는 일본에서 신상품을 가장 먼저 출시하고 있다.

2003년에 출간된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이를 2006년에 영화로 만든 작품이 대중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으면서 프라다는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2007년 프라다는 전자제품 회사인 LG와 손잡고 프라다폰(LG Prada Phone)을 선보였으며 2008년에는 프라다폰 II(LG Prada II)를 출시하면서 꾸준하게 사랑받고 있다.

이유민 기자

2umi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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