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와 계열사인 HMC 투자증권이 현대증권 인수전 참가를 공식 부인하지만 시장은 이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현대차그룹이 조회공시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녹십자 생명을 인수한 전력이 있는데다가 현대증권 인수 시 금융계열사들과 시너지 창출과 함께 ‘옛 현대그룹’을 이어간다는 상징성도 크기 때문이다.
24일 현재 현대차는 공식적으로는 현대증권에 대해 “인수의사가 없다. 검토되고 있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현대증권 인수의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던 현대차그룹 계열사 HMC투자증권은 지난 22일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현대증권 인수를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러한 현대차의 입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는 분위기다.지난 2011년 조회공시 제도의 허점을 활용했던 현대차의 전력을 볼 때 다른 방법을 동원해 현대증권 인수전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시장은 관측한다.
현대차 그룹은 지난 2011년 현대라이프로 이름이 바뀐 녹십자생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거래소의 조회공시 답변 요구를 교묘히 이용한 적이 있다.당시 현대차가 녹십자 생명을 인수한다는 설이 나오자 한국거래소는 현대차에 조회공시 답변을 요구했다. 현대차는 이에 대해 “인수를 검토한 바 없다”고 부인했었다.하지만 2개월도 안 돼 현대차그룹은 녹십자생명을 인수했다. 조회 공시요구를 받은 현대차 대신 그룹 계열사인 기아차와 현대모비스, 현대커머셜 등이 녹십자생명 지분(93.6%)을 인수한 것. 거래소는 조회공시 요구를 받은 현대차가 지분인수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도의 제재를 취할 수 없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인수합병 특성상 막판까지 인수 의지를 숨기고, 물밑에서 가격 협상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며 “현대증권 인수와 관련한 조회공시를 통해 공식 부인한 HMC투자증권을 제외한 다른 계열사들을 동원해 현대차그룹이 현대증권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고 밝혔다.
'옛 현대그룹'을 현대차그룹 중심으로 이어간다는 명분으로도 현대차는 현대증권 인수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그룹과 2010년 치열한 공방 끝에 현대건설을 인수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1998년까지 현대차는 현대증권의 최대주주였다. 2000년 현대차가 현대그룹에서 분가되면서 현대증권은 현대그룹 계열사가 됐고 이번에 매물로 나오게 됐다.
HMC투자증권이 2008년 현대차그룹에 인수된 이후 노동조합을 설립했다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실적 악화로 몸살을 앓는 증권가 구조조정을 대비한 차원에다 향후 현대증권과의 합병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현대차그룹 입장에서도 현대증권을 인수할 경우 현대캐피탈과의 시너지를 통해 그룹의 금융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다.
현대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이달부터 현대증권 매각 작업에 본격 나서고 있다. 산업은행은 올해 안에 현대증권 매각을 마무리 짓는다는 방침이다.
매각 대상은 현대상선 보유지분(25.9%)과 현대증권 자사주(9.83%)를 합쳐 총 36% 정도다. 현대증권 매각가격은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감안해 7000억∼8000억 원 정도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산업은행은 현대증권에 관심 있는 기업이나 기관투자자들에 투자의향서를 보낼 계획이다. 투자의향서 발송 대상에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현대중공업그룹 등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은 지난 23일 현대증권 등 금융 3사를 재산신탁방식으로 매각하기로 산업은행과 최종 협의했다고 밝혔다.
현대증권 최대주주인 현대상선이 보유중인 현대증권 지분 22.4%(5307만736주) 중 14.9%를 신탁회사에 신탁하는 방식이다. 신탁회사는 현대증권 주식을 근거로 특수목적회사(SPC)에 수익증권을 발행하고, 산업은행은 이 수익증권을 유동화해 자산담보부대출(ABL)로 현대상선에 2000억 원을 대출했다. 현대증권 매각절차는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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