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11월 미국의 유명 시민단체인 ‘월가를 점령하라(OWS: Occupy Wall Street)’가 시작한 빚 탕감 운동인 ‘롤링 주빌리(Rolling Jubilee)’가 한국에서도 시작됐다. 금융시장에서 채무자들의 부실채권이 헐값에 거래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 이 운동은 시민들로부터 모은 성금으로 채권을 헐값에 사들인 뒤 소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채무자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금융감독원 앞에 새정치민주연합의 이인영 국회의원과 녹색소비자연대 조윤미 대표, 에듀머니 제윤경 대표 등이 주축이 돼 총 4억6700만원가량의 부실채권을 소각하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1300만원으로 5억 빚 탕감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5년 이상 된 장기 부실채권 166건을 매입해 불태우는 형식으로 진행된 이번 퍼포먼스로 총 119명의 채무자가 혜택을 봤다.
이들의 채권 대부분은 IMF 외환위기 직후 생긴 것으로 오랜 기간 동안 여러 금융기관과 대부업체 등을 거치며 헐값이 됐다. 그래서 부실채권 4억6700만원가량을 매입하는데 든 돈은 고작 1300만원.
그러나 이 운동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금융질서 혼란하게 만들 것?
‘롤링 주빌리’ 운동으로 소각되는 채권은 5년 이상 된 장기 채권이다. 이 채권들 대부분은 악성 채무자들의 것이다. 때문에 악성 채무자들이 빚을 갚을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돼 도덕적 해이 현상이 만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즉 시민들의 성금으로 악성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 주는 일이 반복되면 채무자들이 ‘기다리면 나중에 빚을 갚아주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경제적 어려움을 딛고 단기간에 빚을 갚은 사람들에게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롤링 주빌리’운동의 대상은 5년 이상의 장기 채권이어서 단기간에 빚을 갚은 사람들은 이 운동의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원금 50%를 탕감해주는 국민행복기금을 두고도 도덕적 해이 등 반론이 많았는데, 돈을 안 갚은 사람들의 채권을 사서 100% 탕감해주는 것은 기본적으로 금융 질서를 혼란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량구매만 가능, 누가 혜택 볼지 몰라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오랫동안 상환하지 못한 채권의 경우 부실채권시장에서 20분의 1정도의 가격으로 거래가 된다. 그래서 최근 미국에서 원금 155억원의 채권을 7억에 사서 2700명의 빚을 탕감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부실채권시장이란 쉽게 말해 채권자가 어차피 받지 못할 원금의 차용증을 사고 싶은 사람에게 헐값에게 넘기는 것을 말한다. 바로 이 점에 착안해 나온 운동이 ‘롤링 주빌리’다. 시민 단체가 헐값에 싼 후 추심 없이 바로 소각하는 것이 이 운동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빚을 안 갚는 것이 아니라 못 갚는 사람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오래 된 채권만을 구매하는 것이다. 그 기간 동안 추심당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자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의 채권을 구매하는 것이므로 누군가의 의도가 들어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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