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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제일 부국 '싱가포르'국부 리콴유 타계

경제 번영-사회 안전 확립, 금융-물류 허브 주도

2015.03.23(Mon) 14: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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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콴유 전 총리=YTN 방송화면

싱가포르의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안정의 기틀을 세워 '국부'로 존경받는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23일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났다. 

싱가포르 총리실은 이날 성명을 통해 "리 전 총리가 오늘 오전 3시18분 싱가포르 종합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리 전 총리는 지난달 5일 폐렴으로 입원한 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왔다.

리 전 총리는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1959년 자치정부 시절부터 독립 이후 1990년까지 총리를 지내 세계 사상 가장 오랫동안 총리로 재직했다. 

리셴룽(李顯龍·63) 현 총리의 아버지인 리 전 총리는 집권당인 인민행동당(PAP)를 창당해 35세의 나이에 자치정부 총리에 올랐으며 제3세계 도시 국가에 불과했던 싱가포르를 금융, 물류 선진국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1959년부터 자치정부 총리를 지냈다.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할 때까지 26년간 총리로 재직했다. 자치정부 시절까지 합하면 31년 동안 총리로 재직해 세계 사상 가장 오랫동안 총리로 재직했다.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었던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그가 총리직에서 퇴직한 1990년에 1만2750달러를 달성했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5만6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다. 세계경제포럼(WEF) 조사 국가경쟁력은 세계 2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 국가청렴도는 세계 5위이다. 오늘의 싱가포르를 있게 한 주인공이 리콴유라는 데 이견이 없다.

리콴유는 194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소속인 피츠윌리엄 칼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51년 귀국해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1954년 인민행동당(PAP)을 창당하고 사무총장에 올랐다.

1959년 자치정부 총리가 됐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35세였다. 그는 집권 후 재정 안정화, 서민주택 보급, 공직비리조사국 설치, 해외투자 유치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개발도상국이 소홀히 하기 쉬운 환경보호에도 노력을 기울여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중 하나가 됐다.

그는 싱가포르 항만공사를 설립해 세계 일류 수준의 컨테이너 항구를 건설했다. 석유파동 속에서도 미래에 대비해 창이 국제공항을 건설하는 등 주요 사업에는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이 같은 장기적 안목의 투자는 싱가포르를 물류 중심지, 동서양 항공의 요충지로 만들었다.

또 세계 유명 금융기관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에는 비판과 논란도 뒤따랐다. 싱가포르가 세계적으로 깨끗하고 범죄율이 낮은 도시가 된 배경에는 무거운 벌금, 태형 등 강력한 처벌이 자리잡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아시아의 히틀러로 불리기도 했으며, 경제적인 부에도 한때 싱가포르의 국민행복지수는 150개국 중 149위로 평가되기도 했다.

조인영 기자

ciy@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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