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은 쉽지만, 운영은 아주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사업.요즘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협동조합의 현실을 표현한 말이다. 지난 1월 말까지 만들어진 협동조합은 전국에 3600개가 넘는다.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1년 남짓 동안에 하루 평균 9개씩 생겨난 것이다.때문에 법과 제도가 제대로 뒷받침되지 못해 협동조합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현행법 상 ‘협동조합’ 간판을 내걸었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것이 아니다.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규모가 큰 농협, 수협 등은 협동조합기본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2012년부터 시행된 협동조합기본법 제13조 제1항은 “다른 법률에 따라 설립됐거나 설립되는 협동조합에 대하여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개별 협동조합법에 의해 설립되었거나 설립되는 농협, 수협, 신협 등의 협동조합 등은 농업협동조합법, 중소기업협동조합법, 수산업협동조합법, 엽연초생산협동조합법, 신용협동조합법, 산림조합법, 새마을금고법,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등 8개의 협동조합 개별법에 의해 설립·운영되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설립된 협동조합이 이들 다른 법규로 규정된 협동조합들에 비해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불만의 소리가 높은 이유다.
게다가 협동조합 자격과 기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협동조합들도 있다.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장에 따르면 의료생활협동조합, 공동육아협동조합, 영농·영어(營漁)협동조합 등은 최소한의 법인격만을 획득한 상태이다. 특히 자활운동 계열의 한국지역자활센터협회, 대안기업 계열의 한국대안기업연합회, 돌봄노동 계열의 돌봄노동네트워크 등은 협동조합 성격의 조직이면서도 관련 협동조합법이 부재함으로써 실태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같은 일 하면서도 지원받지 못해
협동조합 관련법이 부실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농촌지역에서 농업회사법인은 법인세 및 부가가치세 면제 등의 지원을 받는다. 그런데 농업회사법인은 상법상 법인형태로만 설립 가능하다고 되어 있어 농업인들이 협업적 농업경영체 성격으로 설립한 협동조합은 법인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들로부터 지원이 확대되고 있는 사회적기업화도 마찬가지다.사회적협동조합 역시 협동조합기본법 상 ‘취약계층에게 복지, 의료, 환경 등 분야에서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사회적기업이 받는 혜택에서는 제외되고 있는 실정이다.
협동조합으로 성격을 바꾸려는 법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데도 제약이 따른다. 일반 기업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으나 사단법인, 재단법인 등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려면 불가능하게 되어 있어 협동조합 활성화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서울의 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최근 비조합원들에게도 판매를 허용하려다가 포기했다. 서울시에 사전 신청을 해서 인가를 받아야 하는데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시일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조합원만이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하지만 조합원들의 이익을 위해서 운영되는 협동조합의 특성 상 일단 이용해 봐야 좋은지 아닌지를 알 수 있으므로 비조합원이라도 이용할 수 있게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즉 연간 90일 이내, 전체 매출의 5% 이내에서 비조합원에게도 상품을 팔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절차가 시청, 구청 등에 신고해소비자생협 관계자들은 비조합원 판매규모를 전체 매출의 10%로 늘리고 인가가 아닌 신고만으로 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문제는 악용의 소지가 있어 관계자들 사이에 논란을 빚고 있다고 한다.협동조합지원센터의 송문강 이사는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모두 사회에 기여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음에도 협동조합은 행정 절차가 까다롭고 공공 지원도 전혀 없다”면서 “법률적,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오는 7월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지만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협동조합에 관한 직접적인 법률보다는 관련법 조항들이 더욱 부실하고 맞지 않아 장애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이런 점을 의식해 유엔과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지난 2012년 ‘세계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협동조합 관련법과 제도를 정비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이 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변호사인 최원식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인천계양구을)은 지난 3월 지역균형개발 및 지방중소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최 의원은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설립된 협동조합, 협동조합연합회, 사회적협동조합, 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등도 지역개발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민간개발자’ 범위에 추가해야 지역사회 발전에 보다 많은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정기석 마을연구소 소장은 “협동조합 현장에서도 여러 가지 민원이 다발하고 있다. 기본법은 만들었으나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지자체 지원 조례나 지침 등의 유기적 연관성이나 합리성이 부족하다. 그에 따른 행정부처 및 집행부서 간 ‘행정칸막이’ 문제도 상존한다. 게다가 출자금 시장가치 평가에 따른 증여세 발생 등 조세제도 문제, 신용보증 등 금융거래 시스템의 정비 등 제반 사업 환경이 정리되정 소장은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 체계에 사회적 협동조합이 참여할 여지가 없는지, 법제상의 제약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는 협동조합기본법에서 규정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이 ‘사회적 기여’를 강조하여 법인격을 ‘비영리법인’으로 명시하고 있는 입법 취지에도 적극 부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소장은 특히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어촌공동체회사, 안전행정부의 마을기업 등 농촌지역의 사회서비스 수요를 담당하는 법인들이 협동조합 형태의 법인격을 갖춘다면 실무 차원에서 보다 활동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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