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비즈

[인터뷰] 선한봉사센터 정춘희 약사

"잘나가던 약국장 포기 이유, 소외계층 환자들 웃음때문"

2015.01.30(Fri) 12:30:54

   
 

오드리 헵번은 ‘로마의 휴일’에 나왔던 젊은 시절 전설적 미모뿐만 아니라 말년에 대장암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아프리카 아동들을 보살피는 사회봉사를 실천한 ‘아름다운 영혼’이었다. 

정춘희 약사는 다문화가정 등 소외계층 의료봉사활동을 목적으로 창설된 선한봉사센터 자원봉사자로서 최선을 다해왔다.

<비즈한국> 기자는 지난 24일 중랑구 노인복지회관 의료봉사현장에서 근무하는 정 약사를 찾았다.

이날은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한 봉사활동이었다. 내과 외과 피부과 등 현직 의사 출신 자원봉사원들은 벌써 20여명이 넘어서는데, 정작 조제를 담당한 약사는 정춘희 약사 등  세 명이다. 

특히 이날은 언제나 함께하던 여성 약사 봉사자들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해 정 약사에겐 몇 갑절  바쁜 날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봇물 터지듯 밀려오는 환자들 앞에서 절대 지친 내색을 하지 않았다. 복약지도와 함께 조제를 하고, 행여 잊을세라 설명을 약봉지에 펜으로 써주는 과정까지 세련된 요리사의 손놀림과도 유사했다. 

몇 간호원이 급히 보조원으로 지원을 오고서야 잠시 기회가 생겼다.

정 약사는 기자에게 “젊은 여성 약사들의 봉사 참여가 아쉽긴 하다. 하지만 이해는 된다”며 첫 마을 꺼냈다. 

정 약사는 20여년 넘게 약국을 운영했다. 1968년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이후 20년이 넘게 잘나가던 약국장이었다. 

약국을 운영하면서도 그녀는 당시 지역을 중심으로 봉사활동 참여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은 그녀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그녀는 “삼풍백화점 봉사약국에 지원했던 그녀는 부상자의 고통, 그리고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슬픔을 함께하면서 느낀 점이 많았다”라며 “이후 외국인노동자, 다문화 가정을 위한 무료투약봉사, 캄보디아, 에디오피아, 필리핀 해외봉사활동 등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시간이 허락한다면 동참했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좀 더 봉사활동에 치중하고 싶어 운영 중이던 약국을 스스로 문을 닫고 시간적 여유가 상대적으로 많은 근무약사의 길을 택했다. 

정 약사는 “세상을 살다보니 돈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요. 남을 돕다보면 새삼 약사로소의 사회적 의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해외봉사활동은 최소한 개인 비용을 200만 원 이상을 들여야 할 수 있는 활동이다.

열악한 봉사단체 재정상 의약품 조달만도 버겁다. 자원봉사자들은 육체적 정신적 희생뿐만 아닌 물질적 희생까지도 그녀는 감내하고 있다. 

기자는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힘에 부치지 않느냐고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가슴이 시키는 일에 소위 세상 사람들이 정답이라고 하는 것이 끼어들 수가 있는가. 무척 힘들지만 환자들의 감사하는 마음을 생생히 느낄 수가 있다. 받는 마음의 기쁨을 알게 된 셈이다. 이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다”라고 흐뭇해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요즘 젊은 후배들에게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이젠 봉사현장에 젊은 약사들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간혹 우리 세대가 약사로서 참여하는 마지막 자원봉사자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젊은 후배들의 봉사 참여가 많아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녀에게선 인류를 사랑한 오드리 헵번의 숭고한 영혼의 일면이 엿보였다. 

이다솜 기자

leeds@bizhankook.com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