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말해! 통화료 엄청 비싸다구”, “그런 내용은 카폰으로 이야기하면 안돼요. 북한 애들이 도청한다는데-”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30년 전인 1984년 5월, ‘카폰’(Car phone)이라는 차량전화가 등장했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통신선에 연결해 쓰는 유선전화기가 아닌, 차량 안에 설치해 움직이면서 통화를 할 수 있는 최초의 이동전화였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직사각형 벽돌크기만 해서 ‘벽돌폰’이라고 부르정부는 1984년에 이르러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자회사로 이동통신을 전담하는 한국이동통신서비스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일간신문 사회부에서 일했던 기자는 운 좋게도 카폰을 사용하게 되었다. 신문사 로고가 찍힌 차량 안 콘솔 박스 위에 부착해 사용했는데 트렁크 모서리에 긴 안테나를 달아야 했다. 주로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무원들의 관용차, 언론사·대기업 경영자들의 차량에 설치되다보니 사기리미엄이 붙었는가 하면 교통경찰이 쌍안테나를 달고 달리는 승용차는 법규 위반을 해도 붙잡지 않았다.
“북한 감청 피해 통화도 조심조심”
서비스 지역이 서울·안양·수원·성남 등 수도권 일부에 국한되었기 때문에 카폰 전파를 북한에서 감청한다고 해서 통신보안 교육까지 받아야 했다. 대부분은 운전기사들이 받고와서 사용자들에게 주의사항을 전해 주었다. 차량 보급이 많지 않던 시절인 데다가 300만원이 넘는 전화기 값에 200만원의 가입비 등 추가비용이 들고 매달 전화요금만 100만원 넘게 내야 했다. 당시 포니2 승용차가 350~400만원, 서울에 새형대 빌라의 전세 값이 400~500만원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일반인들은 가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시절이다. 대한민국을 통틀어 보급대수가 3000대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19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될 즈음, 지금과 같이 손에 들고 다니는 진정한 의미의 핸드폰이 등장했다. 모토로라가 만든 ‘택8000’은 가격 240만원, 무게 771g이었다. 이 휴대폰은 집어 던져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여서 손에 들고 다니다가 다른 사람을 때리는 ‘흉기’가 되기도 하고 망치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어 삼성전자가 우리나라 최초로 생산을 개시했다. 지금에 비하면 무게가 무겁고 10시간을 충전해야 최대 30분을 쓸 수 있었다. 가격은 대당 400만원이었으니 소형 승용차 1대 값이었다.
“꿩 대신 닭”, 대단했던 ‘삐삐’ 인기
해서 틈새시장으로 등장한 것이 이른바 ‘삐삐’라는 무선호출 서비스였다. 지금의 만보계만한 크기와 모양으로 허리춤에 차고 있으면 “삐-,삐-”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를 걸어달라는 호출자의 전화번호가 화면에 찍혔다. 거리에서 삐삐가 울리면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흔한 풍경이었다. 이때 ‘1004’(천사),‘5858’(오빠오빠),‘8282’(빨리빨리),‘20000’(이만) 등 의미를 전달하는 숫자의 조합이 큰 인기를끌었다. 삐삐는 1997년 1519만 명의 최고 가입자를 기록하는 등 한때 전 국민의 통신수단이었으나 휴대폰 보급이 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또 ‘시티폰’이라는 이동전화가 잠시 나타나 휴대폰을 사지 못하는 서민들에게 반짝 인기를 끌었다. 공중전화 부스 앞에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었지만 걸 수만 있고 받을 수는 없는 한계 때문에 3년 만에 중단됐다.
핸드폰의 대중화는 1996년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방식으로 전환되면서부터였다. 모토롤라의 ‘스타텍’은 폴더를 열고 닫는 방식으로 인기를 끌었다. 1997년 SK텔레콤이 독점하던 시장에 한국통신(KT)프리텔, LG텔레콤, 한솔PCS 등 PCS사업자들이 등장해 경쟁체제로 들어섰다. 이때부터 가입자가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2000년에는 이동전화 가입자가 2,682만 명에 달했다. 휴대폰의 크기도 빠른 속도로 작아지고 기능도 다단말기는 바(Bar)타입-플립형-폴더형-슬라이드형-강압식 터치형-정전식 터치형으로 첨단 기능들이 추가되고 디자인이 향상되면서 꾸준히 발전해 왔다. 이동전화 30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는 이동전화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이동전화 보급률이 100%를 넘어 대한민국에서 가질 사람은 모두 가지고 다니는 필수 휴대품이 되었다.
“인공지능 추가 등 미래 혁신 놀라울 것”
전철역에서 스마트폰에 몰두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보고 프랑스에서 왔다는 한 외국인은 기자에게“유령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핸드폰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정신 건강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휴대전화는 음성통화를 하는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다. 초고속·고용량 데이터서비스와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에 의해 들고 다니는 개인용 컴퓨터로 발전했다. 1996년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디지털이동통신의 시대를 연 후 800메가바이트(MB)짜리 영화 1편을 다운로드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은 11시간51분에서 22초로 단축됐다.
SK경영경제연구소 염용섭 산업1실장은 “앞으로 인공지능 같은 게 들어가면 핸드폰이 비서나 친구처럼 여러 가지 도움을 주는 능동적인 기계로 변신을 할 것 같다”면서 “인공지능, 빅데이터, 인터넷 싱크, 사물통신 등의 다양한 기술이 가져올 새로운 변화와 혁신에 대해 잘 적응하고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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