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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통화(通貨) 전쟁’ 중

ECB 양적완화로 인도 등 신흥국 금리 인하 압력 커져

2015.01.26(Mon) 10:33:44

   
 

유럽중앙은행(ECB)의 대규모 양적완화에 전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22일(현지시각)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1월 통화정책회의를 마친 후 오는 3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총 1조1400억유로(약 1435조1460억원)의 채권을 매입하는 등 양적 완화 확대 정책을 개진했다. 이로 인한 유러화 약세를 피해 국채 등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스위스, 노르웨이, 덴마크, 터키 등 비유로존 국가들이 기준금리를 잇따라 내리는 등 통화 전쟁에 돌입했다.

첫 포문은 스위스가 열었다. 스위스 중앙은행은 ECB의 양적완화가 기정사실화되던 15일 환율 하한선을 폐지하고 기준금리를 연 -0.75%로 0.5%포인트 인하했다. 여파는 즉각 나타났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이면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 포함되지 않은 북유럽 국가들이 금리정책을 재검토하는 등 통화가치 상승 압력이 가해진 것. 이를 놓고 블룸버그통신은 “스위스가 글로벌 통화전쟁의 스위치를 올렸다”고 파장을 예고했다.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시행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금융시장의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윌리엄 화이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개발평가위원회 의장은 "'양적완화 전쟁이 세계 금융시스템을 통제 불능 상황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유로존의 은행 대출 의존도가 높고 이미 저금리 상태라 ECB의 이번 조치가 실효보다 자산버블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 BNY멜론은행 외환분석가 네일 멜러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스웨덴은 (양적 완화와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검토 중이며, 노르웨이 중앙은행도 통화정책 재검토 압박을 받고 있는 등 유럽 전체가 통화전쟁 양상을 치닫고 있다”고 말했다.

ECB의 양적완화 조치로 붙붙은 통화전쟁으로 인도 등 신흥국들도 금리 인하에 가세할 움직임이어서 글로벌 금융시장을 예측 불허의 상황으로 만들고 있다.

환율전쟁이 무서운 것은 그 나라 경제의 아킬레스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이 기준 금리를 인상하면 한국 증시는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들어 국내 기업의 영업이익이 크게 떨어져 배당 메리트가 줄어든 가운데 금리까지 인상되면 외국계 자금의 대거 이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환율전쟁’의 결과
미국과 일본의 환율전쟁 사례를 보자. 
1985년 9월 미국 뉴욕의 플라자 호텔. 선진 5개국(G5ㆍ미·일·영·프·독) 재무장관들이 모였다. 이들은 미 달러화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가치를 높이는 데 합의했다. 일명 ‘플라자합의(Plaza Accord)’다. 이후 달러 가치는 급락하기 시작했다.

플라자 합의로 엔고가 심해지자 일본 정부는 기업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저금리정책으로 전환한다. 하지만 금리를 내렸는데도 엔화가 약세로 돌아서지 않고 유동성만 키웠다. 이후 일본 경제에 버블 현상이 나타났고, 버블이 꺼지자 수많은 기업과 사람들이 부도를 맞거나 파산했다. 이렇듯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첫 단추는 미국에 의한 환율전쟁에 기인한 것이다.

환율전쟁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양적완화 정책을 도입하면서 시작된 ‘4차 환율전쟁’이 그것. 미국 정책금리는 2008년 12월 이후 6년간 제로 상태를 유지해왔다. 최근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서 양적완화 종료에 이어 올해 하반기쯤 금리가 인상될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이번엔 반대로 강한 달러의 공격이 시작된다.

홍익희 배제대 교수는 저서 <환율전쟁 이야기>에서 “과거의 환율전쟁들은 모두 미국의 경제상황이 힘들 때마다 주기적으로 평가절하를 시도해 왔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환율전쟁은 영토전쟁보다 더 격렬하고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며 대비를 당부한다.

미국 경제가 안정세에 접어들자 이번엔 유럽발 통화전쟁이 불붙었다.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이 유럽 경제를 살리고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인가? 이를 놓고 전문가들의 견해는 엇갈린다.

파이낸셜타임즈는 ECB의 양적완화 조치에 대해  한마디로 “만병 통치약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최근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 참석한 경제 전문가들도 “유럽이 양적완화를 할 필요가 있지만, 통화정책만으로는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어렵고 구조개혁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런스 서머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유럽의 양적완화는 미국과 비교하면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유럽이 이미 매우 낮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의 은행들은 통화 팽창의 효과를 경제 전반에 효과적으로 확산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개리 콘 골드만삭스 사장은 "우리는 지금 통화 전쟁을 벌이고 있다.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통화 가치를 약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 미국의 금리 인상이 유럽에 미칠 영향에 대해 "미국 경제가 건전해졌지만, 아직도 취약한 점이 많아 금리를 인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달러화 강세시 미국 경제를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어 금리를 계속 낮게 가져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ECB 양적완화가 국내경제에 미칠 영향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가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기대반 우려반이다. 증권가는 유럽 캐리트레이드 자금 유입으로 활성화를 기대하는 한편 산업현장에서는 유로화 약세로 인한 수출 감소를 걱정한다.

하나대투증권 관계자는 "2012년 1·4분기 때 유럽계 자금은 국내 증시에서 6조원에 가까운 순매수를 보였다. 이번에는 2012년보다 강한 확산 효과가 기대된다. 국채가격도 2012년보다 비싸져 유럽과 아시아 시장에서 주식 매력도가 채권보다 높아졌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반면 이번 양적완화로 원/유로환율 환경이 악화돼 한국기업들의 유럽수출 여건이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의 전체 수출 중 유럽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9%에 이른다. ECB가 양적완화를 시행하더라도 당장 유로존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도 부정적인 요인다.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유로캐리자금 유입에 따른 원화강세 압력과 유로화 약세가 맞물려 한국의 수출가격 경쟁력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구조적 경상흑자라는 원화절상 압력이 상존하는 만큼 주요 선진국이 발권력을 바탕으로 환율전쟁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한국은 상대적으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국제금융센터 김형우 연구원도 “ECB의 금융완화로 유로화 약세가 지속된다면 유로존 수출기업들의 수익성 악화나 수출 감소 개연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정성현 기자

rhe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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