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이슈

<이슈 진단> 유가 하락 희비 엇갈리는 강대국

2015.01.22(Thu) 11:22:24

   
 

국제 유가가 작년 8월 이후 계속 하락세다. 국제 유가는 2011년 이후 줄곧 100~110달러 선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왜 반년이 채 못 되는 사이 절반 넘게 떨어졌을까.

기본적으로 산유국은 고유가를, 소비국은 저유가를 원한다. 하지만 현 원유시장의 흐름은 이런 공식마저 깨뜨리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속한 주요 산유국들은 오히려 저유가 상황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다.

이란 국영 파스통신에 따르면 비잔 남다르 장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19일 “만약 원유 가격이 배럴당 25달러까지 떨어지더라도 이란 석유산업에는 큰 위협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자신감을 내비쳤다.

전문가들은 유가 하락의 저변으로 2가지 원인을 꼽는다. ▲셰일가스 개발 등에 의한 세계 원유시장 공급 과잉,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다. 하지만 수급 요인만으로 유가 급락의 원인을 설명하기 어렵다.

‘러시아 등 반미산유국이 타깃’ 소문
국제 유가가 본격적으로 급락하기 시작한 시점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과 러시아가 힘겨루기를 하며 위기가 점증되던 시기다. IS가 창궐해 중동 질서를 뒤흔들기 시작한 것도 유가 하락 시점과 맞닿아 있다. 여기서 나온 것이 강대국에 의한 전략적 음모론이다. 미국이 사우디 등 친미 산유국을 앞세워 저유가로 러시아 등 반미 산유국을 압박한다는 추론이다.

이 음모론은 현재 러시아가 처한 상황에 비춰 보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직전까지만 해도 에너지 강국이었다. 1986년 유가 급락으로 모라토리움을 선언했던 러시아는 5년 후 소비에트연합이 해체된다. 그런데 블리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후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계속하며 자신감을 되찾은 러시아는 풍부한 유전과 가스 공급으로 유렵의 목줄을 위협하고 미국의 패권에 대항하기 시작한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본질은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진에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맞선 것이다. 결과는 2014년 3월 크림반도 합병, 5월 우크라이나 동부 독립선언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군사 개입 대신 경제제재로 맞섰다. 주목할 점은 이 무렵부터 국제 유가가 급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러시아는 현재 저유가 폭탄으로 국가 재정이 급격하게 붕괴되고 있다.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1년 전만 해도 1달러당 30루블대였으나 지금은 80루블대로 폭락했다. 외화보유액도 3900억달러(약 423조원)로 1년 전에 비해 1200억달러(약 130조원) 이상 급감했다. 그뿐 아니다. 7312억달러(약 793조원)에 달하는 대외 부채는 러시아의 신용도를 악화시켜 디폴트 위기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실제로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작년 10월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투기 등급(Ba1) 보다 두 단계 높은 ‘Baa2’로 낮춘 데 이어 피치도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기존 ‘BBB’에서 투기등급 ‘BB+’ 바로 윗 단계인 ‘BBB-’로 한 단계 강등했다. 유가 하락이 자칫 푸틴의 정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시한폭탄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셰일가스 업체 줄도산 위기
전문가들은 사우디 등 중동의 석유 부국들이 셰일 가스 등 새로운 에너지 개발 계획에 타격을 주려고 저유가를 지속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저유가는 석유·가스의 경쟁 에너지인 신재생 에너지, 원자력 등의 경제성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셰일 가스의 예를 살펴보자.
미국에서 셰일가스가 본격 개발된 때는 2005년 무렵이다. 미국 가스 생산에서 셰일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4.1%에서 2013년 44.9%까지 확대됐다. 고유가가 3년 넘게 지속된 것도 셰일가스 개발에 호재로 작용했다. 셰일가스 혁명은 저가의 가스로 에너지 수요가 몰리고 원유 수요 감소 현상을 낳았다. 여기에다 세계적으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원유 수요가 줄어들자 중동산유국이 나섰다는 것.

셰일 오일은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가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떨어질 경우 손실을 보는 생산구조다. 산유국들이 셰일 오일 업체 수익성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저유가정책을 지속한다는 얘기다.

제1차 석유 파동 당시 세이크 자키 야마니 사우디 석유부 장관은 “석기 시대가 종말을 고한 것은 돌이 사라져서가 아니다. 돌을 대체할 신기술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석유 시대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한 바 있다. OPEC에게 셰일가스는 미래의 큰 위협일 수 있다. 셰일가스가 진전된 기술 개발로 원유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게 되면 산유국들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OPEC의 의도가 맞아 떨어졌을까. 최근 유가 급락 이후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들은 줄도산 처지에 놓였다. 이미 몇몇 셰일가스 업체들은 파산을 선고한 상태다.

이와 관련 노무라증권의 유명 투자분석가인 밥 잔주아의 진단은 주목할 만하다. 7일 밥 잔주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 셰일 산업을 위기에 빠지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사우디는 생산을 이어갈 것이다. 근래 원유 시장은 과잉 공급뿐 아니라 수요 부족의 문제도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유가는 앞으로 하락할 것인가. 반등할 것인가. 여기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제프리스 글로벌 픽스드 인컴 레이츠 비즈니스 공동대표인 크리스토퍼 베리는 “수요를 초과하는 공급물량이 지속되면서 원유시장 가격이 추가로 하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유가는 배럴당 40달러 이하로 내려갈 것이며 반등하더라도 50달러 위에서 머무는 상황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노무라증권의 밥 잔주아도 올해 유가가 35~40달러선으로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박병호 기자

pak@bizhankook.com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