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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문화 팽배, 유일한·유재라 부녀 삶 빛나는 까닭

땅콩회항·위메프 사태 배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2015.01.16(Fri) 19:14:01

최근 우리나라 대기업 문화에 ‘땅콩회항’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구속,  위메프 수습사원 채용 논란 등 갑질 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양심 경영'과 '겸손 경영'을 주도하고 ‘사회 환원’을 몸소 실천한 유한양행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 일가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유 박사 장녀였던 고 유재라 전 유한재단 이사장도 부친 못지않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 재계 총수일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녀는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교육사업에 투신하면서 1991년 작고 당시 스스로 모아두었던 200억 원대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비즈한국>은 두 부녀의 삶을 집중 점검해 본다. 

   
▲ 유일한 박사 부부

◆ 일가에 물려주면 양심과 겸손 잃을 수 있어 

유일한 박사는 1991년 타계 전 자신이 소유한 주식 15만 주를 모두 유한공고 학교 재단에 기증했다. 자식들에겐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라'는 유서를 남겼다.

경영을 일가에 맡길 경우 양심과 겸손을 잃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 박사는 1969년 경영에서 스스로 물러나면서 부사장이던 외아들 유일선 씨와 조카를 모두 해고했다. 전문 경영인 조권순 씨에게 사장직을 맡겼다. 유 박사는 다른 친인척도 회사 경영에서 배제했다. 

유 박사는 유일선 전 부사장에게는 재산을 전혀 물려주지 않았다. 외동딸인 유재라 전 이사장에게도 당시로는 가치가 적은 오류동 현 유한전문대학 내 유한동산 부지 5000 평을 관리 명목으로 물려주었을 뿐이다.

두 자녀는 이후 단 한 번도 회사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 선친 유지 잇는데 충실

유재라 전 이사장은 1929년 유일한 박사의 외동딸로 태어나 1991년 작고했다.

그녀는 유한양행의 비상근 이사가 되어 1991년 63세를 일기로 타계할 때까지 부친의 유지를 잇는데 삶을 바쳤다.

생전 유일한 박사의 기업설립 목적은 기업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에게 기술교육의 기회와 함께 일자리를 주는 것이었다. 그 이윤으로 우리민족의 장래를 결정할 교육에 투자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 유지를 이어 받은 유재라 전 이사장은 20년간 유한재단 이사장직과 유한학원 감사직에 재임하면서 장학과 교육지원 사업에 헌신했다. 

그녀는 이사장 재직 당시 유한공고의 경우 고교입학 추첨제가 실시되기전까지 학비 전액과 생활비까지를 지급하는 등 장학사업을 실행했다. 1978년에는 유한공업전문 대학을 설립해 전문 기술 인력을 육성하는 데도 기여했다.

   
▲ 유재라 전 이사장

◆ 스스로 일군 재산 사회 환원

유 전 이사장은 1962년 미국인 남편과 사별한 후 약 30년 간 홀로 살았으며, 슬하에 자녀도 없었다. 

그녀는 유한양행의 비상근 이사도 겸임했는데 틈틈이 유한양행 주식을 사들였다. 

여기서 그녀가 타계했다면 다른 재벌 총수일가 사례와 비춰 크게 다를 것은 없다. 

하지만 그녀는 작고 전 증자나 주가 상승으로 200억 원 대로 불어난 재산 전부를 장학사업, 불우청소년 가장 돕기 등에 써 달라는 유언장과 함께 사회에 환원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유  전 이사장은 생전 유한재단을 미국의 포드재단처럼 확고한 재단을 일궈 사회공헌에과 봉사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밝혀 왔다”고 강조했다.

 

조인영 기자

ciy@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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