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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우산혁명, 그 끝에서 시민들 울다

시위대 체포되는 순간 "We will be back" 외쳐

2014.12.26(Fri) 16:40:00

   
 

2014년 홍콩에서 발생한 밈주화 시위는 전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시위를 주도한 이들은 학생들이었다. 청년실업, 부의 대물림 등 양극화가 낳은 경제적 불평등에 ‘NO!'라고 외친 세대들이었다. 조슈아 웡 학민사조 위원장 등이 시위의 중심에 섰고, 학생대표 5명이 정부와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홍콩 경제는 타격을 입었고 일부 주민들은 지쳐 돌아서기 시작했다. 홍콩정부는 시위대에 11일 오전까지 철수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어 15일 마지막 시위캠프를 철거하며 우산혁명은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비즈한국>은 75일간에 걸친 우산혁명의 진정한 의미를 정리해보았다.

지난 12월 11일,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홍콩섬 애드미럴티 지역 시위캠프 대부분이 강제 철거됐다. 이 과정에서 마틴 리 전 민주당 주석, 네이선 로 홍콩링난대 학생회장 등 20여 명이 체포됐다.


이로써 홍콩정부는 승리를 외쳤다. 하지만 우산혁명의 시작과 끝을 돌이켜본다면, 결코 홍콩 정부의 승리로 보기 어렵다. 경찰에 체포되는 순간에도 시위대는 "We will be back"을 외쳤다. 이는 홍콩 우산혁명이 완전히 꺼진 것이 아니라 ‘후폭풍’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움을 의미한다.

‘제2의 우산혁명’ 가능성 제기돼

지난 9월, 중국 정부는 홍콩에 새로운 선거 방식을 제안한다. 1200명의 지명된 선거인단으로부터 과반 이상의 표를 받은 두 세명의 후보자들에게만 홍콩 시민들이 직접 투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홍콩 시민들은 친중 성향의 인사들로 내각이 세워질 것을 우려해  제안을 거절하길 바랐으나, 홍콩 정부는 중국 정부의 제안을 수락한다. 시민들은 선거권이 사실상 박탈당하는데 대한 우려와 불신, 더 나아가 홍콩과 중국 사이의 일국 양제라는 대원칙이 흔들린데 대해 분노를 느끼며 거리로 나가게 된다.

정부 청사, 코즈웨이베이, 몽콕 등 홍콩의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시위대가 편성되었고, 시민들은 ‘Love and Peace’를 기치로 내걸고 시위를 진행한다. 홍콩 정부는 성인과 학생 등 직업과 나이를 불문하고 거리고 나오는 시민들의 행렬에 당혹해 한다.  홍콩정부는 이들에게 해산을 요구하지만, 시위대는 평화를 위한 의무불이행을 외치며 계속해서 시위를 이어간다. 결국 9월 28일,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후추 스프레이와 최루탄 가스를 발포하는 등 강제 진압을 시작한다.


이때 등장한 것이 우산이다. 경찰의 물리적인 공격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된 우산을 너도나도 들고 나오면서 시위는 ‘우산혁명’으로 불리게 된다.


경찰과 정부의 대등에 시민들은 크게 분노한다. 이후 무려 일만명이 넘는 시위대가 정부청사 앞에 결집한다. 계속되는 시위에도 불구하고 홍콩 정부와 중국 정부는 해산만을 요구한다. 분노한 시민들은 일부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며, 정부 청사의 유리문을 깨는 등 과격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12월까지 계속된 시위는 11일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시위대가 경찰에 체포되면서 막을 내린다.

시위대는 법원으로부터 위법판결을 받았으며 정부로부터 끝끝내 소통을 거부당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홍콩 정부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위대는 처음부터 잃을 것이 없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때문에 비록 정부가 그들을 해산시켰어도 We will be back이라고 외칠 수 있었다. 그들이 시위에서 보여준 모습들은 하나같이 성숙하고 평화적이었다. 시위가 심화될 수록 시민들은 점점 더 하나되는 모습을 보였으며 자유와 권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했다.

마카오에서도 시진핑 방문 도중 시위 발생

중국 정부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다방면으로 홍콩의 내정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홍콩 내 학자들은 물론 해외 학자들도 홍콩이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주성을 지킬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정부의 통제가 심해지고 홍콩이 그 영향을 심하게 받는다면 우산혁명이 재발하지 않는다고 장담키 어렵다.

지금 홍콩 현지 분위기는 우산혁명이 겉으로는 종식됐으나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홍콩 경찰은 성탄절 기간에 학생들이 다시 시위에 나설 것을 우려해 주요 도로 주변의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우산혁명의 후폭풍도 예사롭지 않다. 그 징후가 며칠전 마카오에서 발생했다. 중국 귀속 15주년을 맞은 마카오에 차기 행정장관 선거를 보통선거로 치르자고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한 것이다. 시위에 가담한 인원은 대학생과 시민 다 합쳐서 100여명에 불과했다. 홍콩에서 보였던 우산은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위 당일 시진핑(習近平)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마카오를 방문 중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위의 양상을 예단하기 어렵다.


20일 마카오에서 벌어진 시위는 홍콩에 이어 마카오 시민들도 중국의 간섭을 벗어나 정치적 자유를 원한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이는 마카오 시민들이 홍콩보다는 중국에 순응적이지만 중국정부의 통제가 비민주적이라고 여겨지면 마카오에서도 우산혁명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물론 홍콩, 마카오행정특구 정부는 홍콩과 마카오의 동조화를 예방하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그 노력이 ‘대화’나 ‘소통’이 아닌 물리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불씨를 더 키울 전망이다.

<박선영 홍콩통신원>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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