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건설 업계에서 종사하는 사람이 CCC란 회사를 모른다면 기필코 아마추어임에 틀림없다. CCC는 중동의 모든 발주처들은 물론 미국, 유럽과 일본의 유수 엔지니어링업체들로부터 건설의 1인자라는 명성을 들어왔다. CCC는 2013년 기준으로 56억 불의 매출을 기록한 중동에서는 가장 큰 건설회사이다. 그리고 ENR지가 선정한 세계 250대 건설사 중 CCC는 2013년에 21위, 2014년에 24위를 차지했다. CCC는 64년이라는 긴 세월 속에서 승승장구하는 놀랄만한 성공의 비법을 보여주고 있다.
팔레스타인 청년 3인이 창업
놀랍게도 CCC란 이름은 탄생에서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CCC의 탄생 스토리에 의하면 팔레스타인 국적의 하십 사바흐(Hasib Sabagh)는 1941년 베이루트에 있는 아메리칸대학을 졸업하고 고국으로 돌아가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1948년 아랍 연합군과 이스라엘 간의 1차 중동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그는 다시 베이루트로 돌아와 처남인 사이드 쿠리(Said Khoury), 그리고 친구인 카멜 압둘라흐만(Kamel Abdulrahman)과 연합해 1950년에 회사를 차렸다. 그리하여 3명의 팔레스타인 젊은이가 합쳐서 만든 CCC(Consolidated Contractors Company)가 탄생했다.
CCC가 이룬 최초의 성공적인 대형 프로젝트는 1950년에 벡텔로부터 왔다. 이라크석유공사가 발주한 키르쿡과 바니야스간 800킬로미터의 원유파이프라인 공사를 건설의 황제라는 벡텔로부터 하청을 받았으며 당시에는 드물게도 과감히 최신 건설 장비를 사용해 1952년에 완공했다. 이어 CCC는 벡텔로부터 BP발주의 아덴 정유공장 건설공사에 참여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이후로 끈끈한 관계를 지속해왔다.
이를 발판으로 1960년에는 중동의 모든 국가에 진출하여 명성을 높였다. 1973년에는 아부다비국영석유공사와 합작으로 해상 오일 및 가스시설을 건설하는 NPCC라는 특수 회사를 세웠다. 중동에서 가장 부유한 발주처 중의 하나인 아드녹의 요청으로 파트너 관계를 맺은 것이다. 오늘날 NPCC는 16억 불의 연매출을 올리는 캐시카우로 성장했다. 1975년 레바논의 내전으로 말미암아 CCC는 베이루트를 떠나 런던으로 잠시 옮겼다가, 1976년 지금의 그리스 아테네에 자리 잡았다.
1980년대에 CCC는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을 통해 유럽, 미국 그리고 아시아에 진출했다. CCC는 그간 벌어들인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영국의 해저공사 전문업체인 언더워터엔지니어링과 수처리 엔지니어링 업체인 아크와, 그리고 미국의 건설회사인 모간티그룹을 연속 인수했다. 아울러 CCC는 1992년에 이탈리아에 플랜트 엔지니어링업체인 시콘을 설립하기도 했다. 사업 다각화를 위해 CCC는 캐나다의 옥시와 제휴해 남부 예멘 마실라에 유전개발에 나섰으며 하루 17만 배럴의 대규모 유전을 발견하면서 잭팟을 터뜨렸다.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CCC는 또 다시 위기를 맞았다. 쿠웨이트에서 일하던 모든 인력은 철수하고 현장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 오면서 CCC는 미국, 유럽, 일본 등의 내노라 하는 모든 EPC업체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으며 수많은 프로젝트를 따내 위기를 극복했다. 특히 CCC는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하는 다수의 오일, 가스, 정유, 석유화학 플랜트를 건설하였으며, 플랜트 건설업계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했다.
CCC는 이외에도 모리타니아의 사막에서는 도로를 깔고, 쿠웨이트의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하고, 노후화된 베이루트공항을 새로 짓고, 예멘에서는 유전과 항구를 연결하는 파이프라인을 놓고, 이집트에서는 도로, 하수, 전력망을 깔고, 도하에서는 리츠칼튼호텔을 건설했다. 이렇게 CCC는 1990년대의 극심한 불황기에도 가장 역동적인 회사로 발전했다.
중동의 건설시장은 2000년대 들어 고유가로 인한 경기 호황으로 플랜트, 인프라, 주택 등의 대형 프로젝트 발주가 확대되면서 활황세가 이어졌다. CCC는 중동, 아프리카 및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나오는 대형 유전개발, 파이프라인, 정유공장, 비료공장, LNG, 가스 콤플렉스, 에탄 크래커, 냉각시스템 등을 EPC단독 혹은 컨소시엄으로, 아니면 시공 파트너로 변신해 매출을 크게 올리면서 ENR순위 20위권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2004년에 이룬 15억달러의 매출은 5년 후인 2009년에는 50억달러로 3.3배나 신장되는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유의 경쟁력에 이은 숱한 신기록들
1950년부터 중동지역에서 꾸준하게 수많은 중요 공사를 진행해온 덕에 오늘날 아랍 국가 어디엘 가더라도 CCC사무실은 있으며, 건설이라 이름 붙여진 모든 분야에 CCC가 일하고 있다. CCC는 팔레스티인 난민의 본능처럼 중동의 산유국 정황을 상세히 꿰고 있으면서,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는 특별한 차별화 전략을 만들어 냈다.
CCC는 건설 능력을 배가하고 가격 경쟁력을 올리는데 항상 선두에 서왔다. 작업 효율과 품질을 높이고 신속한 공사 수행을 위해 최신 첨단 기술을 발 빠르게 받아들여 즉시 현장에 활용하였다. 이렇게 해서 회사는 성장했고 직원들은 이익을 나눠 가졌다.
오일, 가스, 석유화학 등으로 이루어진 플랜트 건설 분야에서 CCC는 선진 엔지니어링업체와 같이 제휴하는 방법을 택했다. CCC는 그들에게 적기에 공사를 끝낼 수 있는 믿을 만한 회사로 각인되었으며, 이들과 오랜 관계를 맺고 있다. 당시의 메이저 플레이어인 벡텔, 브라운 앤 루트, 테크닙, 스톤앤웹스터, 사이펨, 스남프로게티, JGC, 치요다, MW켈로그, ABB루무스, 크룹우데, 테크니몽 등이 CCC를 소중한 건설 파트너로 여기고 일감을 쏟아 주었다.
CCC가 수행하는 모든 공사에는 직영 인력과 자사 보유 장비가 동원되었다. 검증된 기술 인력과 최신식 건설장비가 투입되면서 공사기간, 품질 및 안전에 대한 약속을 지켰다. 이러한 결과로 사우디 쿠르사니야 가스플랜트 프로젝트에서는 5000명의 직원이 매일 10시간씩 6년 동안 안전사고가 하나도 없는 무재해 1억7백만 인시 달성 신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CCC의 본사는 아테네에 있지만 모든 일은 해외에서 이뤄진다. 50억달러가 넘는 매출의 대부분은 중동에서 이룩한 성과이다. 이들은 건설 역사상 숱한 신기록을 남겼다. CCC는 전세계 LNG시설의 30%에 해당하는 총 17기의 트레인을 건설했다. 기술적으로 가장 어렵다고 하는 LNG플랜트를 어느 누구보다도 많이 건설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축구경기장 50개가 들어갈 만한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센터인 두바이몰과, 4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가장 큰 여자대학교를 지었다. 세계 최대의 국제공항 중 하나인 아부다비 미드필드 터미널를 건설하고 있으며, 벡텔의 수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인 100억 불짜리 리야드 메트로의 시공에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가족 경영에 따른 이들만의 독특한 문화
3명의 창업자 중 카멜 압둘라흐만이 1980년에, 하십 사바흐는 2010년에 사망하였으며, 마지막으로사이드 쿠리가 지난 2014년 10월에 91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지금은 쿠리 가문의 2세들이 거대한 CCC제국을 가족경영으로 이끌고 있다. 가족 경영은 창업주를 존중하는 독특한 전통과 문화를 갖고 있으며 2세로 내려가면서 직원들에게 이 가치를 인식시키고 전체 회사들 간에 소통하게 했다.
그래서 CCC에는 아랍의 전통과 문화적 가치가 내재돼 숨쉬고 있다. CCC직원 각자는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으며 대부분이 젊음과 인생을 회사에 바친다. 가족 경영으로 움직이는 CCC에서는 업무뿐만 아니라 고객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인간관계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 고객과의 강하고 밀접한 관계, 경영진의 역동성, 유동적인 관리능력, 직원들의 자신감과 충성도, 품질과 안전의 중요성 그리고 상업적인 통찰력이 CCC 가족 경영의 강점이 됐다.
창업자의 가족이 직접 경영하는 CCC에게 다른 건설업체와는 다른 점이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시장을 매우 깊게 관찰해 다른 경쟁자가 알기 전에 변화를 감지하며, 두 번째는 상대적으로 빠른 결정을 내린다. 즉, 기회가 오면 점프를 해서 달려 나간다. 세 번째는 당장 해가 되더라도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CCC는 항상 5-10년을 앞서 달려왔다.
완벽한 사업 다각화
CCC는 모든 건설 분야를 총망라하여 수행해왔다. 못하는 게 없으며 모든 분야에서 다 잘 한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원유생산시설, 가스플랜트, LNG, 정유공장, 석유화학 콤플렉스, 터미널, 해상 플랫폼, 산업플랜트, 발전소, 담수공장 등 모든 종류의 플랜트 공사에 전문이다. 또한, 대단위 토목 건축공사인 도로, 교량, 항만, 공항, 철도, 댐과 저수지뿐만 아니라, 호텔, 병원, 대학교, 궁전, 모스크, 쇼핑몰, 스포츠 콤플렉스, 주택단지 등을 짓고 수처리, 하수처리, 펌프장, 물 네트워크, 파이프라인 등을 건설한다.
한국의 건설업체들이 플랜트와는 별도로 토목, 건축 분야로 사업 반경을 넓히고는 있으나 전체 매출액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며 세계적인 수준을 따라 잡기에는 역부족이다. 반면, CCC의 경우, 매출액이 가장 높은 플랜트 분야의 비중은 27%에 불과하다. 건축이 24%, 토목이 22%, 파이프라인 14%, 도로와 교량이 14%, 수처리가 4% 등으로 사업 다각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다.
틈새시장을 찾아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더불어 한국 업체가 대형 플랜트 프로젝트를 싹쓸이 수주하는 일이 발생했다. 더구나, 인도와 중국의 업체들도 적극적 공세를 가하고 있었다. 특히 한국건설업체의 무차별적인 저가 공세는 CCC를 위축시켰으며 위기로 다가왔다.
철저하게 중동지역의 변화를 읽고 있는 CCC는 치열해만 가는 경쟁 속에서도 틈새시장과 새로운 지역을 찾아 성장 동력을 만들어 냈다. 작지만 고품질을 요구하는 플랜트 보수공사와 O&M, 초대형 토목공사, 그리고 오지로의 진출에 눈을 돌리고 전략에 반영했다.
플랜트 분야에 전문인 CCC에게 기존설비를 증설하는 브라운필드 공사와 O&M사업이 틈새시장의 첫 번째 아이템 됐다. 중동에는 20-25년 정도의 오래된 수많은 플랜트들이 있으며 개선, 업그레이드, 디보틀네킹, 유지보수 등을 필요로 한다. 작은 규모지만 이익률이 높은 시장이다. 이 브라운필드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CCC는 일본의 치요다와 합작했으며, O&M사업을 위해서는 미국의 우드그룹과 합작회사를 만들었다.
두 번째는 어느 날 갑자기 중동에 유행처럼 퍼진 공항, 항만, 메트로 등의 대형 토목공사가 타겟이 됐다. CCC는 능력이 크게 신장된 현지건설업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10억달러 이상의 공항, 항만, 메트로 프로젝트에 집중하면서 협력, 동맹, 제휴라는 전략을 구사했다.
공항 건설에 참여하기 위해 CCC는 터키의 TAV와 동맹을 맺었다. 이로 말미암아 리비아의 트리폴리 국제공항을 필두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메디나공항, 오만의 무스카트 국제공항, 카타르의 하마드 국제공항 그리고 UAE역사상 가장 큰 프로젝트로 불리는 아부다비의 미드필드 터미널을 수주하면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항만건설 분야에서는 터키의 STFA, 벨기에의 JDN 및 식스코 등과 제휴하여 오만의 두쿰항구, 카타르의 라스라판 항구, 신도하 컨테이너 터미널 공사에 참여하였다. 공항이나 항만과는 또 다른 게임인 메트로 분야에서 CCC는 과거 스승이었던 벡텔 컨소시엄의 일원이 되어 리야드 메트로를 건설하고 있다.
세 번째의 틈새시장은 오지에서 공사를 하는 것이다. CCC에게 돈을 벌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찾아 이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직원들은 문명과는 멀리 떨어진 오지에서 캠프를 짓고 생활하는 것을 기꺼이 감당해왔다. CCC는 중동 외의 세군데 지역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첫 번째 지역은 아프리카로 이미 30년전부터 진출하여 오일과 가스, 그리고 광산 분야에서 공사를 해왔다. 두 번째는 중앙아시아로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에서 오일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그리고 세 번째는 호주다. 중동에서의 파이프라인과 LNG건설 경험을 바탕으로 2010년부터 호주의 QCLNG와 APLNG의 2개 프로젝트에 맥코넬도웰과 컨소시엄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무리 먼 오지라도 LNG프로젝트가 있다면, 당연히 CCC는 가야만 했다.
또 다른 차별화 전략, 현지인 훈련
CCC가 다른 회사와 또 다른 차별화 전략 중 하나는 현지인에 대한 교육 훈련이다. 대부분의 발주처들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설업체가 현지인력을 훈련시키고 개발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특히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실업률이 정치, 사회적으로 커다란 문제가 된다. 이제는 비자 쿼터를 맞추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현지 인력을 훈련시켜 회사나 국가를 위해 필요 조직에서 일할 수 있도록 고용 기회를 창출시켜야 한다. CCC에겐 일종의 재투자다. 이러한 현지 인력이 훈련이나 교육을 받게 되면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는 곳으로 이동시킨다. 아랍인들은 인생이란 때때로 희생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60여 년전에 야망을 가진 팔레스타인 젊은이 3명이 만든 CCC라는 이니셜 속에는, 지구상의 모든 인종으로 이루어진 13만 명 CCC직원들의 욕망과 기대가 들어있다. 지금도 그들은 5개 대륙, 40개 국가의 현장에서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건설 공사에 도전하고 있다.
전근대적인 경영방식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가족경영이 갖는 장점만을 최대한 활용하여 중동 제1의 건설회사로 올려놓았다. 그들은 아랍의 전통과 문화로 뭉쳤으며 아랍 발주처와 끈끈한 인간적인 관계를 오랫동안 맺어왔다. 그들에게 협력, 동맹, 제휴는 생존을 위한 단어였다. 중동 건설시장에서는 CCC만큼 발 빠르게 진화하는 회사는 없었다.
위기와 기회는 수없이 도전하게 한다. 가장 분명한 첫 번째의 도전은 경쟁력이다. 치열해만 가는 수주 전쟁터에서 CCC는 수주산업의 기본인 가격 경쟁력에 집중하면서 틈새시장을 찾고 오지를 뚫어 성장 동력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어느 지역, 나라에서나 정착하여 건설하는 현대의 유목민이다.
CCC는 모든 것을 아웃소싱에 의존하는 한국건설업체에게 앞으로 나가야 할 전략과 시사점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시장에, 정말로 위험을 받아들이고 들어갈 수 있을까?
<프로필>
쿠웨이트 SHBC그룹 사업개발 담당임원
“조성환의 쿠웨이트 이야기” 블로거
전 SK건설 중동 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