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전 세계적으로 한참 부동산 경기가 좋았던 때 미국에서 일한 적이 있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부동산 투자 바람이 미국까지 불어와 한창 허드슨 강변을 따라 새로 지어지던 그야말로 ‘팬시한’ 새 아파트를 구입하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았다. 그 이후 한동안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어 미국 부동산 투자가 뜸해 지더니, 미국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자 다시 미국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투자라는 것이 수익성을 쫓아가는 것인지라, 미국 부동산 경기가 완전 호황 단계에 접어들지 않은 상황에서, 그 대안으로 필리핀, 말레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 국가 부동산에 투자를 하려는 사람도 많다. 특히 동남아 국가 부동산 투자는 임대 및 가치 상승에 따른 수익 기대뿐만 아니라, ‘휴양지에 별장 같은 아파트’를 소유한다는 ‘낭만성’까지 더해 매력적인 부동산 투자처로 여겨지고 있다.
몇 달 전 필자가 일하는 사무실에 동남아 국가 중 한 곳에 부동산 투자를 했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해약을 하길 원하는 손님이 찾아 왔다. 어떤 투자든 자금 사정이 안 좋다면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는 일이니, 계약서에 따라 위약금과 기타 비용을 물고 투자금을 회수하면 된다. 의뢰인의 이야기를 듣고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계약서를 살펴보니 생각대로 중도 투자 포기 시점과 기투자금액에 따라 투자금액의 몇 프로를 돌려받을 수 있는가 하는 내용이 있었다. 따라서 이미 계약금, 중도금 등 명목으로 2억 가까이 지불된 금액 중 상당한 부분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곳에 복병이 있었다. 보통 ‘모기지’라 하는 은행과의 부동산 매입 자금 대출 계약이 있었던 것이다. 100% 현금결제로 부동산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외국의 경우대부분 부동산 가격의 일부(10-30%)만 현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 장기(약30년)로 갚아 나가는 방식을 취한다.
의뢰인은 그저 한국에서 하듯이 부동산 계약 하나만 존재하는 것으로 막연히 생각하고, 은행과의 모기지 계약이 따로 존재하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은행과의 모기지 계약에 따라 다달이 지불해야 했던 이자가 지불되지 않아 이자가 계속 불어나는 상황이었고, 급기야 은행은 그 부동산을 이미 경매에 붙여 다른 사람 손에 넘긴 상태였다.
따라서 의뢰인이 이해하고 있던 것과 달리, 부동산 해약 과정을 밟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과의 모기지 계약을 불이행으로 소유권이 넘어간 부동산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었다. 즉, 부동산 매매 계약은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이미 완성되었고, 은행과의 모기지 계약에 따라 정해진 날짜에 이자를 지급하지 못해 경매로 넘어간 부동산을 포기한 채 남은 잔금을 청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떤 사람은 계약 내용과 그 과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그 손님의 무모함을 탓할 수도 있다.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투자자 자신에게 있다. 하지만 해외 부동산 투자는 개인이 직접 해외에 있는 부동산을 찾아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한국 내 해외 부동산 투자 유치 업체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업체들을 통해 해외 부동산 투자를 하는 투자자들은 그런 업체들을 믿고 의지하게 된다. 사실상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영어로 된 부동산 매매 계약서나 모기기 계약서를 꼼꼼히 읽고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그냥 그업체들을 믿고 시키는 대로 투자금만 보내는 방식으로 투자를 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 업체들이 투자자들의 신뢰만큼 성실하게 계약 내용을 투자자들에게 설명해 주고 투자 과정을 끝까지 도와주지 않았다는 데 있다. 보통 그런 업체들은 일정정도 투자자들을 모아 계약을 성사시키면, 회사 자체를 폐업시켜 버린다. 뿐만 아니라 투자자와 그 업체들 간의 의무, 권리, 책임 등을 명시한 계약서도 존재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러한 업체들이 성실히 도움을 주지 않아 발생한 문제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여유자금이 있다면 해외 부동산에 투자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해외부동산 투자를 하려면, 계약부터 계약완성(클로징)까지의 과정을 잘 이해하고 영문 계약서 등 서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도움을, 처음부터 받는 것이 현명하다. 필자를 찾아 온 손님의 경우도 처음부터 계약 내용이나 그 과정을 잘 이해했더라면, 투자를 중도에 포기할 수 밖에 없던 상황은 어쩔 수 없었더라도, 금전적 손실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채권추심전문변호사사무소
이상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