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계(碧溪), 잘 지냈는가?”“예당(禮堂), 수고가 많소!”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출판기념회장. 60대 후반의 백발이 성성한 대학 동문들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이런 인사들이 오갔다. 비디오가 아니라 오디오라면 역사극의 한 장면으로 들렸을 지도 모른다. 서로의 이름이 아니라 아호(雅號)를 부르면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따뜻해 보이기도 했다.
이날 출판기념회의 주인공은 고려대 65학번 출신인 심의섭 명지대 명예교수와 지지옥션 창립자인 강명주 회장이었다. 때문인지 고려대 65학번 동기생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 학번 동문들은 지난해부터 ‘아호 만들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당시 동기회장을 맡고 있던 우언(友彦) 정태헌 전 LA(미국 로스앤젤레스)한국교육원장이 제안하고 예당(禮堂) 백승진 동기회 사무총장이 나서 동기회 행사로 정착시켰다.
현재 60여 명의 동기생들이 아호를 갖고 있는데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정 박사는 “한창 사회활동을 할 때는 직함이 있어서 호칭에 별 문제가 없었으나 대부분이 은퇴한 지금에는 호칭이나 이름을 부르기도 우습고 ‘야’, ‘자’하기도 촌스러워서 아호를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아름답고 우아한 호칭을 지어 부르던 역사가 있으므로 각자가 아호를 하나씩 지어 갖고 만날 때마다 불러주는 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과거에는 양반 사회를 중심으로 성인이 되면 본명과 함께 자(字)를 갖는 전통이 있었다. 특히 학자나 문인, 예술가들은 본명과 자 외에 부르기 편한 아호가 있었다.
도헌(陶軒) 구능회 전 KBS 충주방송국장은 ‘아호 전도사’로 불린다. 지난해 4월 ‘수필시대’에 실은 ‘아호이야기’에서 “젊은 세대들이 주고받는 호칭들은 가관이다. 문화의 저질화나 천박화를 부추기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게 한다”면서 “이제는 우리의 젊은이들도 아름답고 좋은 뜻을 내포한 아호를 사용해 서로 간에 배려와 존중하는 풍토를 가꾸고, 우리 사회를 더욱 품격 있역사학자인 정 박사에 따르면 아호는 아호를 갖는 사람의 고향과 같은 지명, 개인의 신체적 특징, 의지, 가풍 등 다양한 요소들을 소재로 지어진다.
이이(李珥) 선생의 아호인 율곡(栗谷)을 보면 그가 밤골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호 후광(後廣)은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서, 김성수(金性洙) 선생의 아호인 인촌(仁村)은 전북 고창군 인촌리에서 각각 따온 것이다.동곡(東谷), 남곡(南谷), 약전(藥田) 같은 아호 역시 고향 등의 지명을 뜻하고 있다.
또 성격을 나타내는 아호도 많이 쓰인다. 우보(牛步)는 소걸음처럼 느리지만 순박하고 우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평보(平步)는 불편한 다리이지만 정상인처럼 반듯하게 걷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자신의 장단점을 보완해 주는 아호도 있다. 똑똑하고 말 잘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낮춰서 우재(愚齋)라 부르기도 하고 말을 더듬는 사람이란 의미로 눌재(訥齋)라 하기도 한다.
김정희(金正喜) 선생 같은 분은 완당(阮堂), 추사(秋史), 예당(禮堂), 시암(詩庵) 등 여러 개의 아호를 갖기도 했는데 발음하기에 부드럽고 거부감이 없는 아호가 좋다고 한다.
호는 스승이나 동료, 선후배가 지어 주는 경우가 많지만 본인이 직접 지어 갖는 경우도 있다.
호암(湖巖·이병철·삼성), 아산(峨山·정주영·현대), 연암(蓮庵·구인회·LG)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 창업주들이 가졌던 아호는 사후에도 이어져 문화재단, 병원, 미술관, 장학회 이름 등으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