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테니스는 서로 마주 본다. 건너편 코트를 상대 코트라고 하고 그 코트에서 나를 상대하는 선수를 상대 선수라고 한다. 기록경기가 아니라 공을 갖고 하는 스포츠는 상대 팀, 상대편과 누가 이기는지를 겨룬다. 배구도 그렇고 탁구도 그렇다. 축구와 농구는 상대 골대에 골을 많이 넣는 팀이 이긴다. 골대는 두 개, 누군가는 공격하고 또 누군가는 그 공격을 막는다.
골프는 모든 플레이어가 같은 홀을 쓴다. 누가 많이 넣느냐의 게임이 아니라, 누가 최소 타수로 홀에 넣느냐를 경쟁한다. 그런 면에서 공을 갖고 하는 스포츠는 참 많지만 골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독특하다. 골프가 다른 스포츠와 다른 것 중 하나가 경쟁자를 ‘동반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오직 골프만 그렇게 부른다. 냉혹하고 치열한 스포츠 세계에서 동반자가 웬말인가. 아무리 주말 골퍼들끼리의 명랑 골프라고 하더라도 은근히 승부욕이 생기는 것이 또 골프지 않는가. 골프를 근사하게 표현할 때 ‘골프는 자기와의 싸움이고 자연과의 싸움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말한들 결국 내 옆에 있는 골퍼와의 싸움임을 우리는 너무 잘 안다.
그럼에도 특히 주말 골퍼들끼리의 골프에서 경쟁상대를 동반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골프는 서로 경쟁하지만, 때론 서로 ‘협력’해야 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볼을 애매한 곳으로 보냈을 때 골퍼들은 그 볼을 같이 찾아주러 간다. 내 볼이 아닌 상대편의 볼을 찾아주러가는 것 역시 이 우주에서 골프뿐이지 않을까.
페널티구역으로 들어간 볼의 비구선을 얘기해주기도 하고, 순서가 아니더라도 준비가 된 플레이어는 양해를 구하고 먼저 플레이를 한다. 벙커플레이를 하고 그 자리를 정리하는 것도 그린 위의 피치마크를 수리하는 것도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이자 협력이다.
동반자가 잘 치면 나이스샷이라고 환호하고, 엄청난 슈퍼 울트라 펏에 엄지를 세우고, 환상적인 벙커샷에 호들갑스러워 보일 만큼 과장된 리액션을 하는 것이 골프다. 축구에서 상대편의 환상적인 중거리슛이 골로 연결될 때 그 골을 못 막은 골키퍼가 엄지를 세우는 일은 없다. 오직 골프에서만 경쟁자끼리 인정하고 협력하고 배려한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우리는 배우자를 ‘인생의 동반자’라고 부른다. 결혼식 축사에서도 듣고 또 듣는 표현이 바로 ‘동반자’다. 부부가 백년해로한다고 하면 대략 50년 이상의 인생을 함께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작 네다섯 시간 잔디 위에서 함께한 사람을 동반자라고 부르는 것은 그 다섯 시간이 다른 다섯 시간과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라운드 전이나 후에 밥까지 먹으면 다섯 시간은 예닐곱 시간이 되고, 카풀을 하거나 아쉬움이 남아 스크린골프라도 한 게임 더해지면 한나절을 함께 보내기도 한다. 몇 시간 동안 회식을 해도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가물가물하고 애써 떠올리려 하지도 않지만 골프 라운드는 다르다.
골린이를 거쳐 소위 구력이란 게 쌓이면 그 사람이 어떤 옷을 입고 왔는지, 오고가는 차 안에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그 사람의 샷은 어땠는지, 그 사람이 라운드 중 어떤 매너 있는 행동을 했는지, 혹은 반대로 진상짓을 했는지, 골프만큼 선연하게 기억되는 시간은 드물다. 비록 다섯 시간의 동반자지만, 그 기억은 내 머릿속에 오래도록 동반된다.
골프는 거칠고 치열한 승부욕을 매너와 에티켓이라는 정돈된 태도와 행동에 숨기는 스포츠다. 그렇다고 매너와 에티켓이 허례허식이나 겉치레라는 뜻은 아니다. 그것조차 골프의 본질이다. 협력하고 배려하고 아껴주고 서로 축하해주는 것도 집중하고 몰입하고 성취하는 것만큼 골프의 본질이란 뜻이다.
골프는 마주 보고 눈을 부라리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같은 곳을 보고 같은 홀로 걸어가는 운동이다. 가끔 나란히 잔디를 밟으며 걸어가는 두 골퍼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때가 있다. 그 사진을 보고 있으면 왜 이들을 ‘동반자’라고 부르는지가 보인다. 다섯 시간 인생의 동반자다. 동행자다.
필자 강찬욱은?
광고인이자 작가.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현재는 영상 프로덕션 ‘시대의 시선’ 대표를 맡고 있다. 골프를 좋아해 USGTF 티칭프로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글쓰기에 대한 애정으로 골프에 관한 책 ‘골프의 기쁨’, ‘나쁜골프’, ‘진심골프’, ‘골프생각, 생각골프’를 펴냈다. 유튜브 채널 ‘나쁜골프’를 운영하며, 골프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을 독자 및 시청자와 나누고 있다.
강찬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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