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 138억 년 전 빅뱅으로 우주가 시작된 이래 지금껏 이어지는 우주의 현실이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주가 그래서 얼마나 빠르게, 어떻게 팽창하고 있는지는 아직 정답을 모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우주를 파헤칠수록 문제가 더 복잡해져 가고 있다.
오늘날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약 70억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팽창이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고 추정한다. 이러한 우주의 가속 팽창을 설명하기 위해 우주 전역에 암흑 에너지라는 미지의 에너지가 가득 채워져 있다고 추정할 뿐이다.
아직 누구도 암흑 에너지의 정체를 알지 못하지만 20년 가까이 동의해온 중요한 전제가 있다. 태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암흑 에너지의 밀도가 항상 일정했다는 것이다. 우주가 팽창하고 부피가 늘어나면서 밀도가 빠르게 줄어드는 암흑 물질과 빛과 달리 암흑 에너지는 항상 밀도를 고르게 유지해왔다고 추정했다. 마치 부피가 늘어나면 그만큼 암흑 에너지의 총량이 늘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야만 점점 더 빨라지기만 하는 우주의 가속 팽창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그 믿음마저 흔들리고 있다. 어쩌면 암흑 에너지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차 줄어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때 강하게 팽창의 가속 페달을 밟던 우주가 서서히 페달에서 발을 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가속 페달을 밟고 있기 때문에 팽창이 가속되고 있는 건 맞다. 다만 그 가속되는 정도가 서서히 느려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어쩌면 우주의 ‘시간’은 시간에 따라 달리 흘러왔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암흑 에너지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개념인 것처럼 착각한다. 1998년 초신성 관측으로 인해 존재하지 않았던 우주 가속 팽창과 암흑 에너지라는 새로운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명백한 오해다. 우주에 중력을 거스르는 음의 압력과 같은 에너지가 추가로 작동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 오래전부터 있었다.
일찍이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방정식이 자체 중력에 의해 스스로 붕괴해야 하는 우주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불편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우주가 붕괴하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중력에 저항하는 새로운 항을 임의로 추가했다. 따지고 보면 물리학적 근거는 없는, 단지 개인적 취향으로 추가된 항이었다. 이것을 우주 상수, 람다(Λ)라고 부른다. 우주 ‘상수’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력에 저항하는 이 존재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항상 값이 일정할 거라 생각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활용한 우주론적 시뮬레이션이 가능해지기 시작하면서 아인슈타인의 미봉책이 매우 적절한 조치였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의 우주 상수, 람다를 적용하지 않으면 시뮬레이션 속 우주는 스스로의 중력을 버티지 못하고 빠르게 붕괴해버렸다.
초신성 관측 결과가 발표되기 직전이었던 1995년 천문학자 제러마이어 오스트라이커는 ‘네이처’ 논문을 통해, 우주 상수가 0이 아닌 우주 모델을 정립하며 실제 우주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미지의 람다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처럼 이미 이론천체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람다의 필요성이 강하게 요구되었다. 마침 얼마 지나지 않아 관측천문학자들의 초신성 관측을 통해 람다가 실제 우주에 작동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고작 40개 남짓한 초신성 관측을 바탕으로 하기에 오차가 매우 큰데도 이 발견이 빠르게 받아들여진 것은 모두가 기다렸던 존재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암흑 에너지, 람다라는 개념은 이처럼 하루아침에 아무 근거 없이 ‘갑툭튀’한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모두가 기다리다 드디어 우주로부터 받은 답이 우주의 가속 팽창, 암흑 에너지라는 발견이었다.
암흑 에너지, 람다, 그리고 중력에만 반응하는 차가운 암흑 물질로 구성된 우주를 이야기하는 현재의 표준 우주론을 ΛCDM(람다시디엠) 모델이라고 한다. 매우 훌륭하게 우주를 설명하지만, 아직 람다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암흑 에너지의 비밀을 더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서, 천문학자들은 오직 암흑 에너지만을 위한 새로운 관측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름부터 암흑 에너지가 들어간 ‘암흑 에너지 분광 장치(Dark Energy Spectroscopic Instrument)’다. 미국 애리조나 킷피크 천문대에 위치한 4미터 망원경으로 우주 전역의 은하들의 지도를 그린다.
최근 DESI 팀은 그동안 관측한 1870만 개에 달하는 천체에 대한 이미지와 스펙트럼 데이터를 공개했다. 그 중에서 우리 은하수를 채운 별은 400만 개뿐이다. 그 외에 우리 은하를 아예 벗어난 외부은하 1300만 개, 심지어 우주 끝자락에서 밝은 섬광을 토해내고는 퀘이사 160만 개가 포함되었다. 이것은 앞으로 완성될 DESI 관측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앞으로 더 방대한 데이터가 쏟아질 예정이다.

우주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 같은 세기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면 먼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주의 팽창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아주 멀리 떨어진 은하까지의 거리를 정확히 재야 한다. 보통 변광성이나 초신성을 활용하지만 이건 DESI와 같은 대규모 관측에서는 유용하지 못하다. 변광성은 어쨌든 평범한 별이기 때문에 거리가 조금만 멀어져도 하나하나 분간하기 어렵다. 초신성은 밝기는 하지만 언제 어디에서 터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순전히 ‘운빨 게임’이다. 그래서 DESI는 조금 낯설 수 있는 또 다른 거리 척도 측정 도구를 활용한다.
태초의 우주는 고온의 플라즈마 상태였다. 빛과 입자들이 모두 뒤섞여 있었다. 빼곡하게 길을 가로막는 고밀도 입자들의 스프 속에서 빛은 자유롭지 못했다. 한편 이 시기에 우주는 양자역학의 지배를 받았다. 곳곳에서 무작위로 에너지가 더 높고 낮게 밀도 요동이 들끓었다. 밀도가 높은 영역은 조금 더 강한 중력으로 주변 물질을 끌어모았고, 동시에 온도가 높아지면서 빛의 압력으로 물질을 밀어냈다. 이러한 중력과 빛의 압력이 힘겨루기를 하는 과정에서 마치 소리와 같은 압력파가 형성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우주 곳곳에 밀도가 살짝 높았던, 밀도 요동의 봉우리를 중심으로 이러한 일종의 우주 음파가 퍼져나간 것이다.
우주가 점차 팽창하면서 우주의 온도가 식었고, 뜨겁게 들끓던 입자들은 전자, 원자로 재결합하면서 우주가 맑게 갰다. 빛은 입자들의 틈을 비집고 자유롭게 퍼졌고, 더 이상 빛의 압력이 입자들에 파문을 남기지 않게 되었다. 바로 그 순간까지 퍼져 있던 초기 밀도 요동의 음파가 우주에 고스란히 각인되었다. 이때 형성된 태초의 진동은 초기 우주의 물질 분포 속에 흔적으로 남았고, 그렇게 둥글게 퍼져 형성된 좀 더 밀도가 높은 영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은하들이 만들어졌다.
태초의 진동은 크기가 특정된다. 현재까지 팽창한 우주의 규모를 생각하면, 진동은 대략 반경 4억 9000만 광년으로 퍼졌어야 한다. 놀랍게도 오늘날 실제 우주에 분포하는 은하들의 지도를 그려보면, 은하들이 아무렇게나 퍼졌을 거라 가정했을 때보다 은하 두 개가 서로 4억 9000만 광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경우가 통계적으로 더 흔하게 발견된다. 이것은 태초에 빛과 물질이 엉겨 붙었고, 특정 시점에 분리되면서 우주에 특정한 크기의 각인이 남았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렇게 초기 우주에 음파처럼 퍼지고 남은 진동의 흔적을 바리온 음향 진동(BAO, Baryon acoustic oscillation)이라고 한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BAO는 딱 특정한 스케일로 특정된다. 정확한 거리를 알고 있는 일종의 표준 잣대가 된다. 먼 우주에 분포하는 은하들을 대상으로 각 은하의 거리 간격을 통계적으로 비교하면 그곳에서의 BAO 스케일을 잴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실제 BAO의 스케일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비교하면 은하들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나아가 그들의 거리,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속도를 비교하면 먼 과거의 우주 팽창률을 자연스럽게 구할 수 있다.
하나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DESI 팀은 여기에 우주의 진화를 반영한 여러 제약을 추가했다. 예를 들어 초기 우주에서 만들어진 원소들의 비율을 보여주는 빅뱅 핵융합 같은 조건을 함께 적용했다. 이를 통해 DESI 팀은 우주의 팽창률을 보여주는 허블 상수를 68.5±6 정도로 추정했다. 이것은 우주 전역에 퍼진 빅뱅의 잔열, 우주배경복사를 바탕으로 추정한 67.4±0.5와 매우 근접하다. 지금껏 은하들의 후퇴 현상과 우주배경복사, 두 가지 방식으로 추정한 허블 상수가 너무 다르게 나와서 천문학자들을 괴롭게 한 허블 텐션의 난제가 비로소 해결될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후부터 시작된다. DESI의 데이터에 더 다양한 제약 조건을 함께 적용할수록 기존의 ΛCDM 모델을 점점 더 벗어난다. 결국 천문학자들은 과감한 시도를 하기에 이르렀다. CPL(Chevallier–Polarski–Linder) 모델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적용한 것.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는 람다, 우주 상수 대신 시간에 따라 진화하는 암흑 에너지를 집어넣었다. 우주의 상태 방정식에서 적용되는 암흑 에너지의 변수 w가 -1로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라 변화율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기존의 표준 모델이 맞고 암흑 에너지가 항상 일정하다면 w는 -1, 그 변화율 wₐ=0이어야 한다. 그런데 DESI 데이터에 우주배경복사, 초신성을 활용한 표준 촛불 데이터를 종합해서 적용하면 w가 -0.75에 수렴한다. 통계적으로 이 결과는 최대 4.2시그마에 이른다. 이 말은 이번 결과가 단순한 통계적 우연일 가능성이 0.1% 남짓이라는 뜻이다. 보통 과학에서는 3시그마를 넘으면 주목할 필요가 있는 유의미한 신호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과학에서 말하는 ‘확실한 증거’의 기준이 되는 5시그마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분명 우리 우주와 우리의 우주관에 변화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최근 일부 천문학자들은 람다를 상수로 고정한 기존의 ΛCDM 모델을 버리고, 새로운 모델로 갈아탈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 모델은 일명 w₀wₐ-CDM 모델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w₀는 현재의 w를 말하고, wₐ는 그 변화율을 말한다. 즉 과거 특정 시점의 w를 말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지금의 w와 같을 거라 가정할 수 없고, 그간의 변화율을 곱해서 과거에는 w가 얼마나 더 크거나 작았을지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DESI 팀의 새로운 결과는 우리 우주의 결말을 근본적으로 틀어버린다. 암흑 에너지가 꾸준히 유지될 거라 생각한 기존 모델에 따르면 우주의 가속 팽창은 점차 걷잡을 수 없이 빨라져 결국 모든 것이 원자 단위로 흩어지고 파괴되는 빅 립에 이르게 된다. 모든 빛도, 열기도 사라진 열적 죽음에 이른다. 그런데 만약 이번 결과대로 암흑 에너지가 있지만 점차 줄어든다고 보면 우주 팽창의 가속도는 점차 0에 가까워지고 우주가 서서히 차갑게 식어가는 빅 프리즈에 이를 수 있다. 우주가 이러한 운명을 따라간다면 은하단과 초은하단 등 우주의 거대 구조는 더 오랫동안 살아남을 것이다.
좀 더 극단적인 상상도 해볼 수 있다. 우주가 팽창의 가속 페달에서 천천히 발을 뗄 뿐만 아니라 발을 옆에 있는 브레이크로 옮겨가고 있다면? 그렇다면 언젠가 우주의 팽창은 멈추고 다시 중력 붕괴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우주가 빅뱅 직후의 상태로 회귀하는 빅 크런치의 운명을 걸을 수도 있다. 물론 우리가 모두 사라지고 한참 뒤의 이야기지만, 헤아릴 수 없는 먼 미래를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실제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참 흥미롭지 않은가.
참고
https://ui.adsabs.harvard.edu/abs/2025arXiv250314738D/abstract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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