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24년 4월, 감사원이 발표한 ‘주요 국가 통계 작성 및 활용 실태’ 감사 결과는 대한민국 부동산 정책 역사에 있어 충격적인 장면을 남겼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와 국토교통부가 한국부동산원에 집값 통계를 무려 102차례 조작하도록 압박했고, 이 과정에서 통계법 위반, 직권남용, 조직·예산을 앞세운 협박성 지시 등이 동반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통계는 누구를 위해 쓰여야 하는가.
#통계란 무엇인가…정책의 나침반이 조작되다
국가가 운영되는 근간은 데이터다. 그 중에서도 ‘공식 통계’는 정부 정책의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방향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경제, 고용, 물가, 그리고 부동산까지. 모든 주요 정책은 수치로 말하고, 수치로 움직인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뉴스에서 발표되는 집값 변동률을 보고 매수냐, 대기냐를 판단한다. 통계는 곧 신뢰의 언어이고, 방향의 나침반이다.
하지만 이번 감사 결과는 그 신뢰의 근본을 뿌리째 흔든 사건이다. 그것도 단순 실수가 아닌, 정치적 목적에 따라 통계를 조직적으로 조작하고 왜곡한 전대미문의 사태였다.
#102차례 통계 조작의 실상
감사원의 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부동산 관련 통계를 사전에 제공 받았으며, 원하는 방향과 다르면 수치 수정을 지시했다. 특히 2018년 8월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이 0.67%로 조사되자, 청와대는 ‘정부 대책 효과를 반영하라’며 두 차례나 하향 지시했고, 최종 수치는 0.45%로 발표되었다.
2019년 6월, 31주간 이어지던 하락세가 보합으로 전환되자 국토부는 “절대 보합은 안 된다”며 부동산원에 압박했고, 결국 -0.01%로 조정돼 발표됐다. 부동산원 내부 단체 채팅방에서는 “얘들아, 국토부에서 낮추란다. 낮추자”라는 메시지까지 오갔다.
2020년 7월, ‘임대차 3법’ 발표 직후 상승세가 확인되자 국토부는 “0.12%는 너무 높다”며 변동률을 0.09% 이하로 맞출 것을 지시했고, 부동산원은 직접 표본 가격을 149회나 수정해 이를 맞췄다.
이러한 조작은 특정 시점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대책 발표 직후, 선거 직전, 야당과 시민단체의 비판이 이어질 때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부동산 정책 효과, 사실상 허상?
이번 감사 결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인 ‘부동산 안정화’ 전략이다. 당시 정부는 다주택자 규제, 보유세 강화, 대출 규제, 공급 대책 등 연달아 정책을 쏟아냈지만, 시장은 오히려 들끓었다. 실거래가는 급등하고, 민간 통계는 연일 상승세를 보였지만, 정부는 “통계상 안정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에 밝혀진 통계 조작은 이러한 정부의 설명이 정책 실패를 감추기 위한 ‘가공된 현실’에 불과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민은 조작된 수치를 믿고 의사결정을 했고,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잘못된 투자, 잘못된 기대, 잘못된 전략으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집값이 안정됐다는 말은 통계의 결과이지, 현실의 반영이 아니었다.
#통계 조작의 파장…국민의 피해
이번 사건이 국민에게 끼친 피해는 단순히 신뢰 상실에 그치지 않는다. 왜곡된 통계는 재건축 부담금, 보유세 산정, 공시가격 기준 등 실제 세금과 정책 혜택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컨대, 상승률이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됨으로써 실제보다 더 큰 부담이 재건축 단지에 돌아갈 수 있다.
또한 주택을 구입하거나 처분하려는 이들은 조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수억 원 단위의 손해를 본 사례도 적지 않다. 이 사건은 곧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한 행위이며, 정책의 정당성을 무너뜨린 범죄라고 볼 수 있다.
#문책과 사법처리…끝이 아니라 시작
현재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김상조·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주요 인사들은 직권남용 및 통계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으며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몇몇 개인에 대한 처벌로 끝날 일이 아니다.
정치적 목적이 있든 없든, 그 어떤 이유로도 국가 통계를 권력의 홍보 도구로 삼는 일은 절대 용납돼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은 시스템의 실패이자, 제도적 감시의 부재를 증명한 사례다.
#다시 세워야 할 국가 통계의 신뢰
이제 중요한 것은 재발 방지책이다. 우선 통계 작성 주체인 통계청과 부동산원 등은 청와대나 정부 부처로부터 독립된 조직으로 개편돼야 한다. 현재처럼 국토부 산하에 있는 상태로는 동일한 문제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또한 통계 작성과 검증 과정에서 외부 민간 전문가와 시민 감시기구의 참여를 제도화해야 한다. 통계 자료는 정권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다. 그 접근성과 투명성이 국민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 통계’에 대한 감사를 벌이는 구조는 지양돼야 한다. 감시는 상시적이고 독립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감사원이 이번처럼 사건이 다 벌어진 뒤 감사하는 구조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통계공화국 대한민국의 복원, 지금이 마지막 기회
“통계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는 통계를 쓴다.”
이 말은 지금 이 시대, 대한민국에 던져진 경고다.
국가의 정보는 신뢰로 설계돼야 한다. 통계가 흔들리면 정책이 흔들리고, 정책이 흔들리면 국민이 흔들린다. 이번 사건은 단지 ‘전 정권의 실정’으로 처리해서는 안 되는 문제다. 이는 대한민국 행정의 투명성과 윤리 수준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의미다.
앞으로 누가 정권을 잡든, 국가 통계를 ‘권력의 도구’가 아닌 ‘국민의 자산’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가. 그것이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자, 무너진 통계공화국을 복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필명 빠숑으로 유명한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부동산조사본부 팀장을 역임했다. 네이버 블로그 ‘빠숑의 세상 답사기’와 유튜브 ‘스튜TV’를 운영·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경기도 부동산의 힘(2024)’ ‘서울 부동산 절대원칙(2023)’ ‘인천 부동산의 미래(2022)’ ‘김학렬의 부동산 투자 절대원칙(2022)’ ‘대한민국 부동산 미래지도(2021)’ ‘이제부터는 오를 곳만 오른다(2020)’ ‘대한민국 부동산 사용설명서(2020)’ 등이 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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