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오늘도 건설 현장에 출근한 노동자가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건설업은 우리나라 전체 산업 가운데 사망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현장이다. 우리 사회는 안전이나 보건 의무를 다하지 않아 노동자가 죽는 안타까운 사고를 막기 위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어 2022년 1월 본격 시행했다. 하지만 한 해 건설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노동자는 여전히 세 자릿수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 사회는 건설 현장 사망 사고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건축 현장 안전과 부실공사를 점검하는 지역건축안전센터가 도입 8년을 맞는 현재까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는 것으로 비즈한국 취재 결과 확인됐다. 지역건축안전센터를 설치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 140곳 중 13곳은 아직 센터를 설치조차 하지 않았고, 절반가량은 법이 정하는 필수적인 전문 인력을 갖추지 못했다. 건설 현장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행정기관의 전문성을 보완하는 지역건축안전센터가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역건축안전센터는 지역 건축 안전을 점검하는 지자체 산하 전문 기관이다. 건축 전문 인력이 지역 인허가 관련 기술 검토와 공사 현장 안전 관리 업무 등을 수행한다. 국회는 행정기관 전문성 부족으로 발생하는 안전 관리 공백을 막고자 2017년 건축법을 개정해 지역건축안전센터를 도입했다. 광역지자체와 인구 50만 명 이상 기초지자체, 건축허가 면적이나 노후건축물 비율이 상위 30% 이내인 기초지자체는 관할 지역에 지역건축안전센터를 설치해야 한다.
비즈한국이 국토교통부와 전국 17개 광역지자체에 정보공개 청구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지역건축안전센터 의무 설치 대상 지자체 140곳 중 13곳(9%)이 관할 지역에 지역건축안전센터를 설치하지 않았다. 지역건축안전센터 미설치 지자체는 충남 부여군, 전남 나주시·보성군·장흥군·진도군, 경북 경주시·의성군·예천군·봉화군·울진군, 경남 고성군·남해군 거창군 등이다.
지자체가 설치한 지역건축안전센터는 제대로 운영되고 있을까. 건축법령에 따라 지역건축안전센터에는 전문 인력으로 건축사를 1명 이상, 건축구조기술사 또는 건축시공기술사를 1명 이상 배치해야 한다. 지역 건축 안전을 돌보는 전문 인력이 최소 2명은 필요한 셈이다. 이마저도 갖추지 못했다면 사실상 센터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현행 지역건축안전센터 절반은 실제로 유명무실한 상태다. 지자체가 건축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설립한 지역건축안전센터 127곳 가운데 61곳(48%)이 필수 전문 인력을 갖추지 못했다. 34곳은 전문 인력을 단 한 명도 배치하지 않았고, 27곳은 필수 전문 인력을 1명만 배치했다. 센터를 설치하지 않은 13곳과, 필수 인력이 부족한 61곳을 합하면, 전체 의무 설치 대상 지자체 140곳 중 절반이 넘는 74곳(53%)이 지역건축안전센터 필수 전문 인력을 갖추지 못한 셈이다.
지역건축안전센터가 필수 전문 인력을 갖추지 못한 사유로는 부족한 인력 자원과 낮은 처우가 꼽힌다. 국내 전문 인력 자원 자체가 적은 데다 통상 민간 기업보다 처우가 낮은 지역건축안전센터에서는 법정 인력을 채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토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건축사는 1만 9738명, 건축구조기술사와 건축시공기술사는 각각 1329명, 1만 164명이다. 현재 지역건축안전센터 전문 인력은 6급 상당의 임기제공무원 대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광역지자체 관계자는 “기초지자체에서 꾸준히 전문 인력 채용 공고를 내지만 지원자를 찾기 어렵다. 지역 내 전문 인력 풀(자원)이 적은데, 민간에 미치지 못하는 급여로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광역지자체 관계자도 “기초지자체 다수가 인력풀 부족으로 필수 전문 인력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다. 건축사는 어느 정도 수급이 가능하지만 건축구조기술사 등 나머지 전문 인력을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낮은 처우도 원인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지역건축안전센터 필수 인력 확보를 지원하기에 앞서 제도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건축안전과 관계자는 “전문인력 처우 문제 등은 단기간에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일단 인력난으로 필수 전문 인력을 맞추지 못한 지자체의 필수 전문 인력 기준을 2명에서 1명으로 줄이려고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일단 위법 상태를 해소하고 추후에 권장 인력을 채용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신영철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은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와 시공 품질 문제는 인허가권을 쥔 지방자치단체의 관리 소홀도 큰 역할을 한다. 인허가 과정에서 건설 현장 위험 요소와 안전관리 계획을 꼼꼼히 따지고 공사 현장에서도 이를 점검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실제는 전문성 부족 등으로 형식적인 관리에 그친다. 행정기관 전문성을 보완하고 지역 건축 안전을 점검하고자 마련된 지역건축안전센터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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