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청호나이스 설치·수리 엔지니어들의 파업이 약 20일째 계속되고 있다. 이번 파업은 2019년 총파업 이후 6년 만이다. 청호나이스의 자회사 나이스엔지니어링 소속 기사들은 차량 지급과 기본급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노사 갈등의 골은 깊다. 노조는 2018년 자회사 정규직 전환이 실질적인 처우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사측은 자회사 소관이라고 맞선다. 역대 최대 실적에도 청호나이스가 나이스엔지니어링에 지급하는 노무비 등은 7년간 한 번도 인상하지 않았다. 노사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파업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차량 운용비 월 14만 원, 기름값도 안 돼
“초임 기본급 209만 원, 무늬만 ‘정규직’이다.” 나이스엔지니어링 소속 엔지니어들은 ‘자차(개인차량)’로 움직인다. 제품을 싣고 운반하다가 차가 고장이 나도 사비로 충당한다. 2년간 주행거리 12만km를 넘길 만큼 설치장소로 분주하게 이동하지만 회사가 차량 사용 보상 명목으로 제공하는 돈은 월 14만 원이다.
엔지니어들은 회사가 업무에 필수적인 차량 운용비용을 직원들에게 전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엔지니어는 “회사가 업무용으로 요구하는 차량은 4000만 원대 카니발급인데 유류비나 정비비용, 보험료, 감가상각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라며 “경비에서 매달 수십만 원씩 손해가 나서 연봉이 사실상 3000만 원도 안 되는 직원도 많다”고 토로했다. 차량 감가상각연수 상한이 6년임을 고려하면 단순 계산 시 4000만 원의 차량에 월 55만 원가량의 감가가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설치 건수에 따라 별도 수당을 받지만 지역 등 기준에 따라 다르다. 1호봉 209만 원을 받는 직원의 경우 한 달에 220건 내외로 업무를 처리하면 수당이 40만 원 정도 붙는다. 160~180건까지는 의무적으로 소화해야 하고, 그 이후부터 추가 수당이 적용된다.
‘업무용 차량 미지급’은 한때 가전 렌털 업계에서 흔한 관행이었지만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경쟁사로 꼽히는 코웨이와 SK매직, LG전자 등은 업무용 차량을 지급한다. SK매직은 2018년, 코웨이는 2022년 임금·단체협약을 통해 차량 지급에 합의했다.
나이스엔지니어링 소속 엔지니어 200여 명은 지난달 31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주요 요구 사항은 △차량 지급 계획안 마련 △기본급 인상 △인력충원 등이다. 기사 초임 기본급은 209만 원. 업계 평균을 밑도는 임금 체계를 기본급 일괄 18만 원 인상을 통해 개선하자는 주장이지만 사측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파업 이후 처음 진행된 16일 교섭에서 나이스엔지니어링 측은 기본급 및 차량 지원금 동결안을 내놨다.

지난 4일까지 한시적으로 시작한 파업은 장기전 국면에 들어섰다. 공백 상태가 된 현장에는 본사가 운영하는 40여 명 규모 자체 설치팀이 투입됐다. 노조는 서울 서초구 청호나이스 본사와 전국 사업소 인근에서 선전전 등 단체행동을 이어간다. 양준모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조 청호나이스지부 수석부지부장은 “경비를 빼면 업무용 차량 지급 혹은 실질 비용을 반영한 사용료 책정, 임금 인상 모두 사측에서 거부하고 있다”며 4월 말까지 파업 유지 계획을 밝혔다.
#‘적자’ 나이스엔지니어링, 협상력도 없이 고용만 떠안았다
청호나이스 본사와 엔지니어의 갈등은 벌써 8년째 반복되고 있다. 2018년 정규직 추진 당시부터 ‘최장 2년 평가 조건부 전환’을 두고 반발이 일었고 ‘예전 근무기간에 대해서는 퇴직금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합의서 제출 강요 의혹으로 잡음도 겪었다.
이는 정규직 전환 비율을 낮추기 위한 회사의 ‘꼼수’라는 지적이 나왔다. 당초 회사가 개인 희망에 따라 자회사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엔지니어 수는 1700여 명이었으나 현재 나이스엔지니어링에서 일하는 기사는 정규직 500명과 인턴 50명 등 총 550여 명 규모다. 저임금, 동종 업계 대비 낮은 처우로 전환 과정과 그 이후에 회사를 아예 떠난 직원이 많아서다. 업계에 따르면 SK매직 등 타사로 이직한 사례도 다수다.

이 같은 구조가 운영상의 문제가 아니라 자회사를 통한 ‘비용 통제’의 결과라는 점도 지적된다. 청호나이스와 나이스엔지니어링의 서비스 계약 단가는 7년째 그대로인 것으로 파악된다. 나이스엔지니어링의 매출 구조는 정수기 설치 및 유지보수에 집중되는 용역매출(약 594억 원)이 전체의 약 99.87%(2024년 말 기준)를 차지한다. 사실상 매출 대부분이 엔지니어들의 서비스에서 발생하는데도 청호나이스의 매출 정책과 원가 책정, 서비스 구조에 의존하면서 수익 확대나 직원 처우 개선은 뒷전이었던 셈이다.
각 사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청호나이스 별도 기준 매출은 전년 대비 4.4% 증가한 4730억 원이었다. 5년째 상승세로 영업이익도 △2022년 399억 원 △2023년 450억 원 △2024년 670억 원을 냈다. 반면 나이스엔지니어링은 △2023년 -14억 원 △2024년 -7억 원 등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나이스엔지니어링 측은 서비스 단가와 관련해 “계열사 간 거래 측면에서 합리적인 계약 단가 산정 역시 중요하다. 계약은 세무·회계적 검증을 거쳐 책정됐다”고 강조했다.
나이스엔지니어링은 합의를 위해 노조와의 대화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다만 청호나이스 측은 엔지니어의 고용 주체가 자회사라는 이유로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나이스엔지니어링 관계자는 “각 사마다 규모·처우 차이가 존재하고 손익·매출 관계가 다르다. 현재는 노조안이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이라고 본다. 현실성 있는 요구안을 제시한다면 합리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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